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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몽골, 쉼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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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작가 Feb 13. 2024

홉스골에서의 하루

몽골 홉스골 호 남서쪽 핫갈에서

‘어머니의 푸른 바다’, ‘몽골의 알프스’, ‘몽골의 푸른 진주’로 불리는 홉스골에 도착했어.

친구야 ‘쿠브스굴’, ‘홉스골’, ‘후브스굴’, ‘호브스골’ 중에서 내가 ‘홉스골’이라고 표현하고 있어. ‘Хөвсгөл’를 한글로 어떻게 표기하는 것이 정확한지 모르겠어. 


홉스골 호수의 최대 길이는 136km, 최대 너비는 36.5km, 최대 수심은 267m, 평균 수심은 138m래. 러시아 국경과 가깝고 바이칼 호와 홉스골 호를 묶어서 ‘자매 호수’라고 불러. 홉스골 호는 겨울에 호수 전체가 얼어서 자동차로 달릴 수도 있대. 

    

커다란 호수를 상상하다 보니 바다를 꿈꾸고 있었나 봐. 막상 홉스골의 남서쪽 호수에 도착했을 때 좀 심심해. 멋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인적 드문 북한강 어딘가에 서 있는 느낌이랄까. 크고 넓고 아득한 뭔가를 꿈꾸다 한 대 맞은 느낌이랄까.


내가 도착한 홉스골 남서쪽에서 호수의 좁은 부분을 만남

 

상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을 좁혀준 건 숙소로 짐을 옮기려는데 우리가 예약한 숙소가 이미 다른 손님들로 다 찼으니 10만 투그릭을 더 내라고 해서야. 여행자에게 돈을 더 내라고 할 때는 뭔가 긴장감이 들면서 현재 상황에 집중하게 돼. 10만 투그릭이 한국 돈으로 얼마인지 계산해 보니 당시 환율로 5만 원 정도였어. 발코니와 전기난로가 있고 게르 자체도 깨끗해서 우리는 추가 비용을 냈어. 처음에 추가 비용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긴장했지만 결정하고 나니 별거 아니더라고.   

   

   

Хөвсгөл Эко тур жуулчны бааз Khuvsgul Eco Tour Tourist Camp 앞을 지나는 야크


결정하고 나면 자유로워져. 더 이상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궁리하지 않으니까 휴식하게 돼. 그리고 장점을 보게 돼. 넷이 하룻밤 자면서 추가되는 비용이라 크게 부담스럽지 않고,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고, 밤하늘의 별을 보기 좋은 의자가 놓여 있고, 화장실과 샤워실도 깨끗해. 제일 좋은 건 전기난로가 있다는 사실이야. 우리가 잠시 망설일 때 사장님이 작은 스토브도 더 제공해 주겠다고 했어. 게르에 설치되어 있는 난로는 온도가 낮게 설정되어 있어서 이 작은 스토브가 아주 요긴했단다.  

   

게르 앞쪽으로 호수가 보이는데 야크가 지나가. 게르 뒤쪽은 숲이야. 몽골에서 오랜만에 숲길을 걷는 호젓함.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 웃음. 금세 어두워질까 봐 숲 입구를 걸으면서 좋다. 


Хөвсгөл Эко тур жуулчны бааз Khuvsgul Eco Tour Tourist Camp 뒤쪽 숲


해가 지기 시작하니까 선선하다기보다 추위가 느껴져. 게르 발코니에서 돼지고기에 김치를 넣어 끓이고 즉석밥을 데워서 먹어. 담요까지 뒤집어쓰고 먹는 뜨끈한 국물이 좋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추위 강도가 세져서 서둘러 게르 안으로 들어가. 밤에는 우리의 가이드 막내(애칭)와 함께 한국 민속놀이 민화투를 하기로 했어. 어렸을 때 해 보고 처음이라 비약ㆍ초약ㆍ풍약, 청단ㆍ홍단ㆍ초단 따위가 헷갈려. 그런데 우리 막내는 이해력이 너무 좋아. 놀이 규칙을 정확하게 파악해. 고스톱도 이내 해내더라고. 내기하면 도박이지만 이렇게 잠시 친목 도모하는 게임은 사람을 웃게 하는 것 같아. 이번에 몽골 여행하면서 여러 사람이 모여 이런저런 게임할 때 많이 웃었어.     


8월 말의 몽골 밤은 추워. 전기난로가 추위를 녹여줘. 친구야 내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다가와. 옆에 있어도 그리워지는 몽골의 별을 보느라 새벽에 잠시 일어났어. 영롱한 별빛이 한기를 아랑곳하지 않게 해.   

  

   

새벽 밤하늘


누군가와 시공간을 함께하다 보면 친절해져. 

아침에 일어나서 우리가 브런치 먹고 싶다고 했어. 브런치 카페를 찾아 무작정 시내 쪽으로 출발했는데 가이드 막내가 운전하다 다른 차량 운전자에게 뭘 묻더니 전화도 해. 우리에게 가정식 브런치를 먹으러 가도 괜찮냬. 우리는 모두 ‘Yes’를 외쳐. 해외 여행하며 현지인의 집을 방문하기는 쉽지 않잖아.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지.    

  

30년 동안 살았다는 라오카의 2층 집. 내가 들어가 본 1층은 원룸형 구조야. 집 안에는 결혼할 때 해왔다는 장롱이 있는데 못질 안 한 원목이고, 부부가 사용하는 침대가 있고, 난로 겸 주방 요리 기구가 가운데 놓여 있어. 가이드 막내가 집 안에서는 라오카를 위해 사진을 찍지 말라고 센스 있게 알려 줘.  

    

 

라오카네 집


햇살 좋은 오전에 현지인 라오카네 마당에서 먹는 식사. 난 버터의 신선한 맛을 처음 알았어. 야크 버터라는데 직접 만든 거래. 게르 모양의 빵에 야크 버터와 베리잼을 덧바르고 꽃냄새 나는 홍차와 하트 모양의 계란프라이까지 곁들여 먹는데 맛있어서 행복해. 우리가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 좋은지 라오카도 와서 함께 사진도 찍고 자신의 이름이 몽골어로 ‘수요일’을 뜻한다는 말도 해줘. 큰딸은 울란바토르에 살고 있고 둘째는 무릉에 산다는 이야기, 남편이 음악 선생님이라는 이야기, 자신의 집에 3년 동안 찾아와 와인을 연구하던 한국 사람 이야기 등. 여행지에서 현지인의 마당에 앉아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며 흡족하고 편안해. 추억으로 쌓일 걸 아는 특별한 경험이기 때문인가 봐. 아직 홉스골 호수를 조망할 수 있는 곳에 가지 않았고 하룻밤 더 묵을 숙소를 찾지 못했어도 이대로 만족스러워. 

라오카와 함께
라오카네 개 밤부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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