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브런치 작가에 선정되었을 때 눈물이 났다.
내심 기대는 했지만 처음 도전이라서 안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선정 소식을 들으니 기쁘면서도 울컥했다.
근래 들어서 좋은 소식을 빠르게 받은 것은 드물었다.
내가 원한 선물을 빠른 배송으로 받은 듯 기뻤다.
5월은 상담 박사 3학기 과정이었는데 얻은 것도 있지만 실망도 많아서 마음이 무거웠었다.
박사 과정은 상담사로서 전문성을 벼리는 목적이 우선이었지만 내심 도반을 기대했었다.
성향과 지향은 달라도 상담에 대한 열정, 공부에 대한 열정으로 함께 계속 공부하는 친구를 만나고 싶었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지만 애써 만족하려고 했다.
그런데 브런치 작가 선정 소식을 듣고는 내가 상처받지 않으려고 노력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원하는 대로 브런치 작가는 되었는데 그토록 원하던 도반은 만나지 못했구나 싶었다.
그 아쉬움이 한 번에 몰려왔다.
아쉬움을 채우려고 열심히 공부한 내가 슬펐다.
박사 과정을 하면서 틈틈이 상담 수련을 계속했다.
상담 수퍼비전을 받았을 때 수퍼바이저에게 도반이 없는 외로움을 말했다.
홀로 공부할 때 문득 내가 잘 가고 있는 것인지 걱정되고 외롭다고.
혼자 아득한 길을 걷고 있는 기분처럼 쓸쓸하고 불안하다고.
수퍼바이저는 따뜻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내 앞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을 때는 잘 가고 있는 거예요.”
그 말이 참 고마웠다.
그런데 내 앞에 아무도 없는 것이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쵸감 트룽파는 『두려움을 넘어 미소 짓기까지』에서 다음처럼 말했다.
“샴발라 전사의 전통에서는 천 년에 한 번 적을 죽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적은 고집스러운 자아를 의인화한 루드라(인도 폭풍의 신. 아집과 아상에 가득 차 고집스러운 자아를 뜻함)입니다. … 샴발라 전통에 따르면 천 년에 한 번은 꼭 이 적을 제거해야 합니다.”
샴발라 전사란 수행자를 말한다.
종교적 의미로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상담적 관점에서 본다.
상담사의 수련은 수행과 비슷하다.
상담 수련은 수행처럼 성실하고 진실해야 하며 용기가 필요하다.
상담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겉으로만 그럴싸하게 자신에 대해 성찰한 것처럼 꾸밀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 수련은 상담이란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쵸감 트룽파는 수행자를 전사로 비유했다.
아집과 아상에 사로잡힌 고집스러운 자아를 수행을 통해 제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서 “천 년에 한 번”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사처럼 용기를 내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은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사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은 드물다.
전사가 가는 길은 깨달음의 길이다.
좋은 것, 내가 원하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을 포함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수행이며 수련이다.
전사가 향하는 깨달음의 길은 그래서 외롭다.
전사들은 각자의 길을, 깨달음의 길을 묵묵히 갈 뿐이다.
전사는 수행자이며 상담사는 수행하듯 수련을 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좌우충돌 동분서주했던 것 같다.
모가 나고 고집이 세고 질문이 많고 분노도 많았다.
내가 선택한 길을 후회한 적은 없었지만 대부분은 외로웠다.
군상담관을 할 때 동료 상담관이 내게 한 말은 수퍼바이저가 한 말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선생님은 무소의 뿔 같아요.”
상담자로서 신념을 지키려는 나를 보고 한 말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무소의 뿔처럼 들이받으며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나 자신은 혼란스럽고 아팠다.
작은 자극에도 상처가 생겼지만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룰지 몰라서 괜찮은 척했던 것 같다.
내가 울어봤자 누가 날 돌봐주지 않을 것 같아서.
외로움을 부정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기차를 잡아타고 도망쳤었다.
이제 박사 과정도 몇 주면 끝이 난다.
논문 학기가 남았지만 공식적인 과정은 종료다.
박사 공부에서 내게 남은 것은 외로움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외로움을 받아들이니 완전히 평화롭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씁쓸하고 약간 허전하다.
마치 단풍이 든 나무가 조금씩 나뭇잎을 떨어뜨릴 때와 비슷하다.
그래도 마음이 조금은 조용해졌다.
비 오는 날 따뜻한 커피를 마실 때처럼.
나는 카푸치노를 좋아하는데 동네에 카푸치노가 맛있는 카페가 있다.
상담 일정이 여유가 있을 때 산책하듯 걸어서 혼자 카페에 간다.
시나몬 가루가 뿌려진 거품이 넘칠 듯 가득하다.
티스푼으로 거품을 조심스럽게 떠서 먹고 있는데 다른 테이블에 독특한 차림의 중년 아저씨도 카푸치노를 주문한다.
작은 카페에 카푸치노를 마시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점심시간이 지나 한가로운 작은 카페에 혼자 카푸치노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나를 의아하게 바라볼까 싶기도 했다.
카페 주인장은 마치 배경 같은 사람이어서 손님을 불편하게 하지 않았으나 과거 불편했던 다른 경험들로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그런데 상관없는 누군가도 나와 비슷하게 시간을 음미하는 것을 보니 작은 안심이 생겼다.
내가 도반을 바랐던 것도 이런 안심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상대도 나도 각자 길을 가지만 서로를 인식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것.
내가 바라는 상담 도반의 느낌이 이렇다면 주변에 많지는 않지만 있었다.
학생보다 열심히 공부하는 교수와 이제 막 상담 공부를 시작한 남편, 상담 석사를 졸업하고 수련 중인 아들과 딸,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가 있다.
박사 과정을 함께 하는 사람 중에 도반이 있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몇몇을 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도반 중에 수퍼바이저 겸 교수님은 자체로도 도움과 위로가 된다.
석사 때 주임교수를 깃발로 여기며 공부했었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크게 실망하고 난 뒤 이정표 역할을 해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박사 과정에서 힘차게 휘날리는 깃발 같은 교수님을 만나서 다시 이정표를 세우게 되었다.
과거나 현재나 스승은 내 상담 공부의 깃발인데 지금은 의미가 약간 달라졌다.
현재 깃발로서 스승은 절대적이지 않다.
비바람이 치면 깃발은 내려지고 바람이 불지 않으면 깃발은 휘날리지 않는다.
깃발을 드높여야 할 때는 다시 깃발을 올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깃발은 방향을 알려주려 휘날린다.
과거에는 깃발인 스승은 상황에 상관없이 꼿꼿하게 휘날리기를 바랐다.
지금은 깃발 역할을 해주시는 교수님은 스승이었다가 도반이 될 수 있다.
내 마음에 공백이 생겨서 깃발은 다양한 의미가 되었다.
다음 도반으로는 남편인데 내가 연재하고 있는 「어쩌다 심리상담사」에 보면 잠깐씩 남편이 등장한다.
글에 등장하는 남편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도와주지 않는 정말 남의 편으로 그려졌다.
그랬던 남편이 올해 상담대학원에 진학해 상담 공부를 하고 있다.
아들과 딸도 상담대학원을 졸업하고 심리상담사가 되려고 하지만 남편이 상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는 마음이 복잡했다.
상담사가 되려면 상담이론, 발달심리, 이상심리, 심리검사 등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남편은 머리가 좋아서 공부는 잘할 것 같았지만 상담은 공부만으로 가능하지는 않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 과정에서 공부를 하고 공인된 상담 자격을 획득하고 상담 현장 경험이 있어야 한다.
학력, 자격증, 경력이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자신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쌓인 내면의 고통을 줄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신의 고통을 알아야 하는데 인간은 고통은 피하고 즐거움은 얻고자 해서 어렵다.
상담은 상담사가 자신을 아는 만큼 상담할 수 있다고 한다.
상담사가 자신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상담사가 자신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으면, 자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상담에서 역전이에 빠진다.
마크 엡스타인은 전이를 이렇게 말한다.
“자신의 마음 상태라는 프리즘을 통해 자기 체험에 색을 입히는 것이다.”
마음 상태에 따라 체험이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전이란 상담에서 상담사가 경험하는 전이인 것이다.
자신의 역전이를 알고 관리해야 온전히 내담자 고통에 반응할 수 있다.
상담자는 상담에서 내담자의 거울이 되어야 하는데 상담사가 역전이에 빠지면 거울 역할을 못 한다.
상담사란 거울에 고통이란 얼룩이 너무 많아서 내담자가 거울에 자신을 비춰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담사들은 수련이란 과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고통을 줄여나가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역전이를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상담사가 되기 위해 학력, 자격증, 경력이 필요하지만 수련을 통한 자신에 대한 이해와 고통 해소는 더 중요하다.
경력을 쌓으려면 자격증이 필요하고 자격증을 따려고 하면 학력이 필요한데 자격증을 따거나 경력을 쌓으려면 수련을 통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학력, 자격증, 경력이 있다고 해서 수련을 게을리하면 역전이에 빠질 가능성이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상담사에게 제일 필요한 능력이라고 한다면 수련을 열심히 해서 자신을 이해하려는 공부를 지속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남편은 회피적인 면이 있어서 염려가 되었다.
남편은 어렵게 삶의 두 번째 직업으로 심리상담사가 되려고 마음먹었는데 부인인 내가 애매한 태도를 보이니 서운해했다.
나는 남편이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편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데 심리상담사가 되어도 편안함에 이르는 것도 쉽지 않지만 경제적인 안락함까지 보장되지 않는다.
둘 다를 누릴 수 있으면 참 좋겠지만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심리적 안정감, 편안함이길 바랐다.
남편은 상담사인 나와 살면서 상담에 대해 풍월은 있었지만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내가 고민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힘들게 상담대학원 진학한 남편은 석사 2학기를 마무리하고 있다.
해가 바뀌면 3학기인데 시간은 참 빨리 가는 것 같다.
상담 공부를 1년 하고 나서 남편이 달라졌다.
회피하던 경향이 많이 줄었고 현재와 관계를 바라보는 폭도 넓어졌다.
내 염려가 무색할 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남편을 보니 내 아들도 아닌데 대견하다.
상담사로는 내가 남편에게 선배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열심히 상담 공부를 하는 사람은 내 도반이기 때문에 남편은 내 도반이 되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상담 공부를 통해 도반이 되었다.
브런치 스토리 자가로 선정된 뒤 무엇을 어떻게 쓸까 생각했다.
과거 청소년소설을 처음 쓸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청소년소설을 쓸 때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이 글을 쓸 때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고 들었지만 나는 싫었다.
싫은 이유를 생각해 보면 딱히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냥 싫었다.
그냥을 상담에서는 무의식이라고 부른다.
내 무의식에서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내면을 보면 다름이란 고통, 외로움이란 고통, 충분히 사랑받지 못한 고통을 만나게 될까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15년을 상담사로 공부하고 상담하면서 나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에 브런치 스토리에 처음 쓸 글은 나에 대한 이야기로 정했다.
상담사가 된 내 이야기는 단순히 직업으로 상담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불편함, 슬픔, 고통을 풀어나가는 과정이었다.
올 5월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면서 마무리하는 날이 까마득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지금 쓰는 글이 연재 마지막 글이다.
전국민마음투자지원사업 센터로 지정된 뒤 상담이 많아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
너무 바빠서 브런치에 글을 늦게 올리기도 했다.
한 주를 건너뛰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내 연재를 기다리는 분이 있을 수 있어 힘을 냈다.
독자와 약속이 연재 마지막을 무사히 맞이하게 해 준 것이다.
「어쩌다 심리상담사」는 상담사로 쓴 일기이며 오래전 내가 걷다가 멈춘 글쓰기 길을 다시 걷게 해 준 글이다.
덕분에 올해 연말은 「어쩌다 심리상담사」연재 완주와 상담 박사 수료라는 성과를 얻게 되었다.
마음이 따뜻한, 마음에 햇볕이 가득한 겨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