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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햇볕 Jun 07. 2024

공짜 밥 주는 직장




이 학교는 참 독특하다. 

우선 나를 뽑은 것만 봐도 그렇다. 

내가 근무하게 된 이유는 어부지리, 당시 상담은 도긴개긴 하다는 선입견의 결과이다.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학교가 뽑고자 한 사람이 학교 위치를 착각해서 엉뚱한 곳에 가는 바람에 내가 선택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학교는 점찍었던 사람을 무조건 뽑으려고 했기에 나 포함 둘만 면접 대상이었다. 

학교가 뽑으려고 했던 상담사는 당시에는 드물게 상담 관련 학력과 이력이 높았다고 한다. 

그 상담사는 이 학교가 아니어도 취업 선택지가 많아서인지 다시 면접을 보려고 하지 않은 것 같다. 

학교 입장에서 예상하지 못하게 일이 틀어졌으나 재공고 할 시간이 없어 결국 나를 뽑게 된 것이다.  


얼결에 상담사가 된 것이 내게 좋은 일일까? 

학생들에게는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이 학교는 상담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좋고 나쁨이 섞여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섞여 있는 듯 나눠져 있었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아이와 힘든 아이, 공부 시간에 깨어 있는 아이와 자는 아이, 깨어 있지만 의식이 있는 아이와 유체이탈 한 아이. 같은 시간과 공간에 함께 있지만 다르다. 




   



대상관계 상담이론에 좋고 나쁨이 분열된 편집분열자리와 좋고 나쁨이 통합된 우울자리가 있다. 

생후 3, 4개월 유아는 나쁜 것을 소화하지 못하기도 하고 좋은 것을 보호하기 위해서 나쁜 것을 외부로 투사하는 심리 양상을 보이는데 이를 편집분열자리라고 부른다. 

뒤이어 2세까지 중요 대상에게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우울자리가 있다. 

즉 좋기만 한 엄마에서 좋고 나쁨이 함께 있는 현실의 엄마를 받아들이는 단계이다. 

좋기만 한 상태에서 나쁜 것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니 우울해질 수밖에. 

내가 상담사로 근무하게 된 최초의 학교는 우울자리에 해당되는 것 같았다. 

차가운 현실에 익숙한 아이들을 상담에서 만났다. 

아이들의 삶은 좋고 나쁨이 뒤섞여 있었는데 나쁨이 전반적으로 우세했다. 

그럼에도 몇몇은 마치 나쁨이 새치처럼 간혹 있다고 우겨댔다. 

내가 보기에 아이의 머리카락은 온통 백발이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담자의 말을 따라가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상담은 내담자 뒤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쫓아가는 것이라고 했으니. 

어쩌다가 십 대 나이에 심리적인 백발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내담자 학생이 매우 죄송해하면서 말을 꺼냈다. 

  

“저희 집은 방향제로 향을 피워요. 꼭 담배 냄새 같죠?”

   

너희 집, 절이니? 

그 학생에게서 담배 쩐 냄새와 화장실 방향제 냄새가 뒤섞인, 멀미를 일으키는 냄새가 났다.  

 

 “그렇구나. 그런데 아직도 여름처럼 덥지?”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창문을 열었다. 

내담자 학생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담자와 나는 공모했다. 

상담에서 공모란 내담자와 상담자가 솔직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척” 하는 것이다. 

안 좋은 부분에서 꿍짝이 맞는 것을 말한다. 

내담자 학생은 자퇴를 고려 중인데 부모가 운영하는 가게를 물려받으면 되기 때문에 굳이 학교를 다닐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잠만 자는데 차라리 집에서 편하게 자고 가게에서 일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음, 그럴 수 있다. 

설득적인 내담자다. 

그래도 상담자니 다른 측면을 살펴본다. 

그러면 학교는 취업 때문에 다니는 걸까? 

내담자가 자퇴를 고려하는 이유가 더 있을 것 같았다. 

또래 관계는 어떤지 물어봤더니 내담자가 픽 웃으며 

 

 “어린아이들과 어떻게 어울려요? 유치하게.”

  

그런데 순간 내담자 눈동자가 흔들렸다. 

“어떻게 어울려요?”라는 문장이 어울리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의미로 마음에 남는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는데 창 너머로 보이는 내담자는 작고 외롭다. 

그래서 담배를 폈나 보다. 

김해원의 『열일곱 살의 털』에서 나온 문장이 생각난다. 

자신을 태우다가 더 태울 수 없을 때 피우는 것이 담배라고. 

   

내담자 학생이 상담실을 나갔지만 담배 냄새는 상담실에 둥둥 떠다녔다. 

내담자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떠올라 가슴이 답답했다.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크게 숨을 쉬었다. 

언덕에 집들이 소라게처럼 붙어있다. 정상으로 갈수록 고급주택이다. 

학교는 언덕 중간쯤 있었는데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과장을 조금 보탠다면 겨울이면 등반하듯이 끈을 잡고 올라와야 한다. 

내가 제설을 걱정하니 인성부장 선생님이 말하기를 눈이 오면 제일 먼저 정상부터 제설을 한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제설에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창문 밖으로 선생님들이 한 명 두 명 보였다. 

유령 도시에서 음식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 같다. 

학교는 학생과 선생님 식당이 나눠져 있었고 시간이 되는 선생님들은 점심시간 전 4교시쯤 미리 식사를 했다. 

교사식당이 작기도 했고 점심에 다른 업무를 봐야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나도 상담실을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교실 복도를 지나가는데 교실에서 아주 신난 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간혹 “하하하.” 웃음소리도 들렸다. 

멈춰서 교실 창문으로 교실을 들여다보는데 깜짝 놀랐다. 

교사가 혼자 질문하고 대답하고 있었다. 

마치 뮤지컬 공연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2명만 상체를 일으키고 앉아 있었고 나머지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윗몸을 일으키고 앉은 아이 중 한 명은 초점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교사는 마치 아이들과 소통하듯 신나게 수업을 하고 있었다. 

기이하게 보였다. 

교사는 아랑곳없이 자신만의 수업을 이어나갔다. 

문득 저러다가 미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이미 미쳤는지도 모른다. 

4교시가 끝나는 종이 치자 아이들이 갑자기 깨어나 복도로 쏟아졌다. 

교실에 혼자 남은 교사는 허공에 인사하면서 수업을 마무리했다. 

교실 문을 열고 나온 교사는 명랑함을 잃고 시들어 있었다. 


나는 식당으로 서둘러 갔다. 

그 교사를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식당에 도착하니 교사들이 줄을 서서 뭔가 적고 있었다. 

나도 반사적으로 줄을 섰고 그 교사도 내 뒤에 섰다. 

이 학교는 식사 명부에 사인을 해야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구조였다. 

식사 명부를 확인해 식사비를 월 단위로 결제한다고 했다. 

계약직 상담사 월급이 적었기에 나는 순간 망설였지만 굶을 수도 없어서 사인을 하려는 찰나, 어디선가 교감 선생님이 나타나서 동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상담 선생님은 그냥 드셔도 됩니다.” 


내 뒤에 선 교사가 시든 머리를 들어 나를 봤다. 

여러 의미가 뒤섞인 눈빛이었는데 ‘당신이 상담사였어?’와 ‘너는 왜 그냥 먹는데?’로 추정되었다. 

나는 문득, 그 교사가 상담을 신청할까 두려웠다. 

나는 교감 선생님께 괜찮다고, 감사하다고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애매한 미소로 어정쩡하게 고개를 까닥하고는 식판을 들었다. 

뮤지컬을 시연했던 교사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그 교사는 싸인을 참 느리게 해서 뒤에 선 다른 교사들이 구시렁거렸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반찬을 담는데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젖과 꿀이 흐를 정도는 아니지만 당시 갈치가 잡히지 않아서 매우 비쌌는데 갈치구이가 쌓여 있었다. 

갈치 한 토막을 집어 식판에 올리며 새삼 교감 선생님이 내게 점심 값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했을까 싶었다. 식당을 둘러보니 모두들 열심히 밥을 먹고 있었다. 

생기 없는 교실에 비해 이곳은 지나친 활기가 돌았다. 

내가 앉은 테이블 대각선에 앉은 중년의 여교사는 옆에 앉은 금발의 젊은 남자 원어민 교사를 너무 노골적으로 훑어보았다. 

그리고는 원어민 교사의 팔에 난 풍성한 금색 털을 보고 혼자 얼굴을 붉히며 

“어머, 어머. 털이 이렇게 많아요?” 라며 원어민 교사의 팔을 강아지 쓰다듬듯 했다. 

원어민 교사는 서툰 한국말로 “네, 네. 털 많아요.”라며 다른 의미로 얼굴을 붉혔다. 

   

고등학교 교사 식당에서 퇴폐미를 느낀 내가 이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밥맛이 떨어졌다. 

교감 선생님이 내가 공짜로 점심을 먹게 해 주신 것은 배려였겠지만 돈을 내고 싶어졌다. 

밥값을 내지 않으면 나쁜 짓에 동참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내가 원어민 교사 팔을 쓰다듬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교실과 너무 다른 식당의 여러 가지 활력은 이질감이 느껴졌다. 

밥을 먹고 나가면서 식사 명부에 사인을 했다. 

내 밥값을 내지 않으면 정말 밥값을 못하는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상담사로서 밥값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밥을 먹었지만 속이 쓰렸다. 

거저먹는 상담사가 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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