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햇볕 May 24. 2024

소설 같은 자기소개서



학교상담사 교육 마지막 날 교육장 가는 엘리베이터에서 강사를 만났다. 

강사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선생님이 쓰신 자기소개서를 오늘 교육에서 샘플로 사용해도 될까요?”


내 자기소개서를? 

순간 얼떨떨했지만 기뻤다. 

역시 문예창작 전공자에 몇 년 간 소설 습작한 노력이 아주 헛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교육장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으며 조금 찝찝했다. 



내가 작성한 자기소개서는 취업용으로 보기에는 너무 미래지향적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상담 관련 과거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쓸 것도 없었다. 

그렇다고 호구조사같이 누구의 몇 번째 딸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어땠고 이렇게 쓰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에는(꽤 오래전 같지만 대략 15년 전이다.) 자기소개서 첫 소절을 대부분 호구조사로 썼다. 

취업을 할 때 왜 내 가족을 오픈해야 할까? 

그때도,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지원했고 어떤 역량이 있으며 그 역량을 이곳에서 펼칠 경우 회사와 내 삶에 어떤 영향이 있을 것이다. 

라고 작성하는 것이 취업용 자기소개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과감히 호구조사를 뺐고 결혼 전 기자였던 기억을 되살려 헤드라인을 적고 기사처럼 두 단락으로 자기소개서를 썼다. 

내용은 상담에 대한 나의 생각과 앞으로 상담을 한다면 진솔한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적었다. 

지금 돌아보면 상담에 대해 거의 몰랐지만 상담에 대한 직감은 있었던 것 같다. 

그때는 상담에 기법이 있다는 것과 저항, 방어가 있다는 것도 몰라서 자기소개서에 쓰지 못했지만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았던 것이다. 

진솔한 상담사는 상담에서 신뢰를 이루는 조건이며 내담자를 존중하는 기초이기 때문이다. 

상담사는 귀에만 달콤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담자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상담사가 알게 되거나 느낀 것을 내담자를 위해 솔직하게 전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내가 쓴 자기소개서가 마음에 들었지만 객관적으로 본다면 포부만 있을 뿐이어서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소설에 가까웠다. 

이런 자기소개서를 교육에서 샘플로 사용한다니 기대가 되었다. 

강사가 자기소개서의 새로운 양식에 호기심이 생겼구나 했다. 

그런데 내 기대는 무참히 쓰러졌다. 

강사는 교육에서 내 자기소개서를 화면에 띄워놓고 


“여러분, 자기소개서에 가족 소개도 없이 이런 식으로 작성하시면 안 됩니다.”


라고 했다. 

내 이름은 뺐지만 누가 봐도 내 자기소개서다. 

왜냐면 같이 교육받은 교육생 중에 이렇게 “심하게” 이상하게 쓴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다고 강사가 말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쓸 게 없어도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도 했다. 

내 이력서 역시 아무것도 없다. 

학력만 적고 경력이 없다. 

경력이 없으니까. 

강사가 내게 다가와서 아주 친절하게,


  “선생님, 아셨죠? 잘 수정해 보세요.”


뭘? 

나는 화가 나고 창피하고 슬펐다. 

공개적으로 평가받고 웃음거리가 된 것 같았다. 

강사가 엘리베이터에서 내 자기소개서를 어떤 의미로 소개할 것인지 솔직히 말하지 않은 것이 화가 났다. 

속은 기분이 들었다. 

부정적 샘플로 소개할 거라고 말했더라면 내가 싫다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사용하지 않으면 된다. 

내 자기소개서를 교육에 활용하거나 말거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강사가 내게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내가 자기소개서를 색다르게 쓴 이유에 대해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내 자기소개서에 대한 강사의 입장, 생각을 얘기하고 서로 이해할 기회가 되었을 텐데. 

  


그날 나는 수정하지 않은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로 상담사를 구하는 학교에 지원했다. 

1곳만 지원을 했는데 이유는 교육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해서 의기소침했고 또 현실적으로 취업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감정은 감정이고 현실은 현실이니까. 

내가 지원한 곳은 남학생만 있는 고등학교였다. 

지원한 학교에서 내가 보낸 자기소개서와 이력서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지만 나는 알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 면접 기회가 올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으니까. 



그런데 세상일은 정말 알 수 없다.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이전 02화 위장 입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