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중, 여고 출신이어서 때때로 남중, 남고가 궁금했다.
청소년 때는 다른 성에 대한 호기심이었다면 청소년소설을 쓰면서는 정보 차원에서 궁금했다.
그래서 학교상담사 구인 공고를 낸 남자고등학교에 지원을 했다.
상담 관련 이력이 없는 내가 면접까지 볼 거란 기대는 매우 낮았지만 말이다.
면접 연락을 받고 나서 어리둥절했지만 신이 났다.
남고는 어떤 분위기인지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많던 나는 학교를 돌아볼 예정으로 면접 시간보다 1시간 일찍 학교에 도착했다.
남학교는 여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학교란 건물과 운동장, 매점으로 이뤄진 곳일 뿐.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학교란 공간이 우울증에 걸린 듯했다.
운동장 구석 벤치에 앉아서 늦여름의 열기를 피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학생부장 선생님이거나 교감 선생님일 법한 목소리의 선생님이 지금 어디세요?라고 물었다.
학교라고 하니 약간 놀란 듯하면서 반가워하는 목소리였다.
바로 면접이 가능하냐고 해서 면접을 당겨서 보게 되었다.
어차피 내가 준비한 면접 대답은
“열심히 하겠습니다.”
밖에 없었기 때문에 면접을 미리 본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교감실에서 면접을 보는데 교감선생님이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선생님을 면접 보려는 이유를 아세요?”
응? 내가 어찌 알까.
이 질문은 내게 답을 기대한 것이 아니라 본격 식사 전 목을 축이는 물 한 모금과 비슷한 포문이었다.
내가 모른다고 하니 교감 선생님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몸을 고쳐 앉으며 말했다.
나를 채용할 생각으로 부른 것은 아니었다고.
그럼 왜?
면접이 점점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면접 대상으로 나와 다른 한 분이 있는데 그 한 분을 뽑을 작정이었다고 했다.
이 학교, 마음에 든다.
이렇게 진솔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를 면접 대상으로 지목한 것은 내가 낸 자기소개서가 교무실에 불러온 혼란 때문이었다고 했다. 자기소개서의 전반적 서술은 잘 읽히는데 상담 관련 과거 경험은 없고 상담에 대한 포부는 커서
“애는 뭐야?”
라는 생각들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 자기소개서로 교무실은 두 부류로 나눠졌다고 한다.
상담 무경험자라서 쓸 게 없어서 설을 푼 것이란 입장과 전문가라서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즉 내가 상담의 높은 경지에 올라 있어 구차하게 구구절절 안 쓴 것이란 의견이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신비주의 작전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글발이 좋았던 것은 맞았던 것 같다.
이런 착각을 일으킬 정도니까 말이다.
의견이 둘로 나뉘자 교무실 선생님들은 확인을 하고 싶어 졌고 그래서 솔로몬 같은 어떤 선생님이
“불러서 물어보자.”
라는 의견을 내서 결국,
내가 면접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드라마에서 얼토당토않은 장면을 보면
“너무 드라마야.”
라고 한다.
현실에서 일어나기에는 너무 엉뚱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처음 상담사 면접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현실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이기 때문이었다.
내 답을 듣기 위한 교감 선생님의 진지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상담 무경험자인지, 전문가인지 어떤 쪽이세요?”
교감 선생님 옆에 앉은 인성부장 선생님도 침을 삼키며 허리를 폈다.
나는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이 되었다.
긴장이 흐르는 공기를 들이마시고 잠시 멈췄다가 입을 뗐다.
“상담 무경험자입니다.”
인성부장 선생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교감 선생님은 실망한 표정이다.
두 분이 다른 입장이었던 것 같다.
내 자기소개서로 인한 작은 혼란은 끝이 났다.
교감 선생님은 실망한 표정과 다른 말을 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근무하시죠.”
인과가 다른 결론이었지만 나는 얼떨결에 알겠다고 대답을 했다.
교감 선생님이 나가시고 인성부장 선생님이 잠깐 시간이 있냐고 물었다.
함께 갈 곳이 있다고 했다.
인성부장 선생님이 학교 건물과 건물 사이 좁은 길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도 잰걸음으로 따라갔다.
약간 숨이 찼다.
동시에 앞으로 숨 찰 일이 많을 것 같다는 예감이 올라왔다.
인성부장 선생님은 학교 뒷문을 지나서 산비탈로 접어들었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의문을 느끼기에는 운동부족이었던 내 몸은 등산만으로도 벅찼다.
급경사 옆으로 고급 주택들이 눈에 들어왔다.
낮은 담장 너머 푸른 잔디가 깔려 있고 차고에는 고급 외제 차 2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영화 기생충의 집과 비슷하면서도 더 고급진 느낌이랄까.
정상에 다다라서 인성부장 선생님이 멈췄다.
선생님이 힐끗 나를 돌아봤다.
내가 숨을 고르는 동안 선생님은 마치 독립투사처럼 허리에 손을 얹고 아련한 눈빛으로 먼 곳을 응시했다.
“앞으로 상담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는 침을 꼴깍 삼켜 호흡을 진정시켰다.
“배우는 자세로, 배우면서 열심히 하겠습니다.”
선생님은 허공에 알 수 없는 미소를 보냈다.
나를 뽑은 이유는 뭘까?
나,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