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햇볕 May 17. 2024

위장 입학



상담사 수련을 받을 때 들었던 수퍼바이저의 말이 생각나는 하루다. 

상담에서 상담자는 늘 홈런을 칠 수 없고 때로 안타도 치고 파울도 한다고 했다. 

상담에서 늘 홈런을 쳐야 한다는 압박감이 강한 상담자는 자기애적일 수 있다는 해석도 함께 기억이 난다. 

내담자가 상담실을 나가고 나서 내가 느끼는 찝찝함을 돌아보니 오늘 상담은 파울이다. 

내담자가 나를 평가절하했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피학적인가? 

그런데 이런 복잡한 심정조차도 경력자의 특권같이 느껴진다. 

아, 내가 상담 전문가구나 싶다. 초심 상담자도 아니었던 그때가 생각난다. 

  


세헤라자데가 되려면 다양한 이야기를 알아야 했다. 

상담이란 것이 진행되는 곳에 가면  들을 수 있다고 했고 마침 지역 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학교상담사 교육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학교상담사의 시작이었다.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해서 학교상담사 교육에 신청을 했지만 탈락했다. 

왜냐하면 그 교육은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대상으로 교육 후 취업까지 연결하는 것이라서 취업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우선 대상이었다. 

나는 유사 분야 경험도 자격증도 없었기 때문에 참여 순위가 밀렸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도 절실하게 상담 사례를 들어야 했기 때문에 담당자를 졸랐고 한 자리가 우연히 남아서 겨우 교육에 합류하게 되었다. 

20명쯤 되는 교육생과 3개월 정도 학교 다니듯 교육을 받았다. 

오랜만에 학생이 된 듯 해 즐거웠다. 

소설 창작에 도움이 될 것이란 생각에 신도 났다. 

다양한 사례들을 접하면서 사연은 다르지만 대부분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었다. 

사례는 고통을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이야기였다. 

상담은 주로 말로 진행되지만 잘 듣는 것, 

말하는 사람의 감정까지 들어야 경청이 된다는 것도 배웠다. 

상담사는 사회적 문제에 주관을 가질 수 있으나 편협하면 안 되며 가치중립적이어야 함을 알았다. 

다른 교육생과 함께 재밌게 공부하면서 나도 세헤라자데가 되어 꽃길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겉으로는 학교상담사로 취업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지만 나도 주변 사람도 기대가 없었다. 왜냐면 내 목표는 세헤라자데였고 주변이 보기에 상담 관련 경험이 전무 한 내가 취업까지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취업이란 부담이 없어서인지 상담 관련 이론과 실제들이 참 흥미로웠다. 

나는 교육에서 가장 열성적인 교육생이었다. 

오래전 대학생들이 노동자의 삶을 경험하고자 위장 취업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대학생들처럼 나는 위장 입학한 것이다. 

시간이 흘러서 교육 끝 무렵 학교상담사 취업 실전이 왔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상담사를 뽑는 학교에 지원하는 것인데 이 모든 것이 교육에 포함되어 있어서 나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다. 

  


그런데 뭘 적어야 하나? 

이제 진짜 창작의 시간이 온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