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여니 5월 햇살이 잔잔하게 퍼진다.
커피머신에서 갓 내린 커피를 들고 상담실로 들어간다.
한 모금 마시니 뇌가 기지개를 켜는 것 같다.
기분 좋은 각성을 느끼며 오늘 진행할 상담 일정을 확인한다.
문득 내가 심리상담사임을 알아챈다.
상담사로 일한 지 14년쯤 되었는데 새삼 내가 상담사라는 것이 놀랍다.
상담사 동료들이 상담사가 되는 과정을 보면 나와 다른 것 같았다.
상담에 열망을 갖고 있었거나 상담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회복지, 코칭 등 관련 직업이거나 상담 봉사 경험이 있었다.
아니면 관련 자격증이 있거나 관련 학과를 졸업했거나.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상담에 대한 열망은커녕 하루하루 살기 바빴다.
상담사가 되기 전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전업주부는 생존 전략이었다.
그런데 전업주부란 말은 묘하게 기분이 안 좋다.
주부라는 운명에 걸려들어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또는 “주부”도 “직업”이라고 억지로 인정해 주는 척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전업회사원, 전업상담사, 전업교사라고 부르지 않으면서 주부란 단어에는 “전업”을 붙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경력이 결혼과 출산으로 그야말로 두 동강이가 난 뒤라서 취업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경제적 관점에서 좀 더 나은 선택이었다.
낫다는 것이지 여유는 없어서 마치 주린 배를 벨트로 꽉 조이고 사는 것 같았다.
현실의 삶은 궁핍까지는 아니었으나 마음은 궁핍했다.
이러저러한 궁핍을 탈출하고자 아이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문예창작 전공을 살려서 작가가 되고자 했다.
당시 부업으로 독서 논술 지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투 잡은 청소년소설 쓰기였다.
제법 적극적이었기에 문학 단체의 청소년소설 창작 모임에서 몇 년 간 습작을 했다.
내 습작에 대해 평론가는 좋은 평가를 했지만 등단은 쉽지 않았다.
어쩌면 등단이 어려웠던 것은 당연했는지 모른다.
왜냐면 당시 나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열망도, 쓰고 싶은 주제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투 잡”일뿐이었다.
나는 한 마디로 “생계형 세헤라자데”였다.
세헤라자데는 천일야화에 나오는 여자다. 천일야화는 아라비안 나이트라고도 한다.
이야기에서 페르시아 대왕은 왕비를 믿지 못해 하룻밤을 보낸 뒤 왕비를 처형하는데 세헤라자데는 왕비가 되어 천일 동안 대왕에게 이야기를 들려줘서 살아남는 인물이다.
세헤라자데는 이야기로 잘 먹고 잘 살았던 여자이다.
나도 세헤라자데처럼 이야기로 살아남고 싶었다. 세헤라자데처럼 목숨을 안 걸어서 그런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설은 잘 되지 않았다.
나의 헝그리가 덜 한가? 무엇이 문제일까?
문득 내가 알고 있는 세계가 좁아서 좋은 글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세계를 어떻게 넓히나?
그러던 중 창작 모임 동료가 “상담”이란 것을 알려줬다.
상담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이 있다고 했다.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을 상담하는 사례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심리상담이란 용어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사실, 관심도 없었다. 아무려면 어떤가.
내가 이번 기회에 진짜 세헤라자데가 될 수 있다면.
상담센터 벨이 울린다. 내담자가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다. 알 수 없는 한숨이 나왔다.
세헤라자데가 아니어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으로.
혹은 소설 창작에 대한 아쉬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