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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Feb 25. 2024

사회생활 부적격자의 사회생활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경제 사정으로 대학도 겨우 졸업해 무작정 사회에 내 던져졌다. 대학 생활이라고 기억나는 것은 아르바이트뿐인 2년제 대학 졸업장으로, 취업 준비는 고사하고 뭐 하나 번듯한 스펙 한 줄 갖추지 못한 채 무작정 돈을 벌어야 했다. 스물두 살부터 시작된 사회생활은 뭇 청춘들처럼 비포장 길에서 뒹굴며 신발과 옷을 망치기도 하고, 남루한 행색으로 걷다 멈춘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 비포장 흙길도 잘 정돈된 아스팔트 길로 이어질 법도 한데 여전히 개발도상국의 울퉁불퉁한 산길을 걸었다. 누군가는 밟고 올라서야 성과를 내는 회사의 조직 문화와 그 속에서 양면이 존재하는 인간 군상들 속에서 나는 사회생활 부적격자임을 깨달았다. 스트레스에 취약했고 소화불량, 두통, 순환 장애의 불편한 신체적 증상들은 나에게 경고를 날리고 있었지만 당장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과 엄마의 빚 문제가 주는 압박감은, 돈보다 건강이 우선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좁쌀만치의 효용가치도 없을 만큼 잔인했다. 회사에서 이뤄내는 성과나 승진, 연봉 인상 그 무엇에도 목적이 없고 오로지 매달 일정하게 들어오는 월급으로 대출금 상환액의 숫자를 줄여나가는 그 지난한 시간들로 나의 이십 대를 보내고 있었다.

 때가 되면 밝았다 어두워지는 하루하루가 짐이라고 느껴지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요가를 시작했다. 퇴근길 버스를 기다리다 마음이 답답해 고개를 들어 숨을 내쉬다 본, 길 건너 고층 건물의 복잡한 간판들 속에서 요가원 간판이 내 눈에 띈 것은, 정말 우연이었을까. 

 하루도 빠짐없이 퇴근 후 요가원에 들렀다. 요가 매트 위에 있는 시간만큼은 내가 숨을 쉬고 있었다. 뻣뻣한 몸을 열어내는 과정이 처음엔 너무 고통스럽고 아팠다. 몸이 찢어질 거 같은데 신기하게도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몸이 움직이고, 어느 날엔 더 이상 몸이 열리지 않을 거 같은 극한의 지점에서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무언가를 매트에 떨구기도 했다. 나는 신체의 고통 속에 희열을 느끼며 눈물을 땀으로 섞어 울면서 웃었다. 그 고통의 진짜 근원은 육체일까, 내면일까.

 대출금 상환액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는 인간관계의 환멸과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적당히 가져야 할 부조리를 거부한 나는 점점 도태되고 있었다. 타고난 기질인 탓도 있겠지만 예민함 때문에 외부의 자극들에 더 민감해졌다. 대출금 상환액이 ‘0’이 되고 일 년을 더해 엄마의 빚 문제까지 마무리를 지은 때, 신경성 위염이 심해져 장상피화생으로 위염의 단계가 진행됐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이대로 계속되면 위암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학자금 대출과 엄마의 빚이 아니었다면 단 하루도 더 이어가고 싶지 않은 사회생활을 지리멸렬한 상태로 십 년 가까이한 결과로 남은 것.

 대출금과 빚 상환, 텅 빈 통장, 위염 악화 그리고 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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