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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Mar 03. 2024

사회생활 부적격자의 무모한 결정

요가도 하고 돈도 벌고?

 “언니, 요가 지도자과정 기수 모집하는데 우리 같이 해 보는 거 어때?”

 요가원 첫 수업에 우연히 옆자리에 앉아 인사를 나눈 게 인연이 된 명희는 나만큼이나 요가에 진심이었다. 요가원이 휴무인 일요일을 빼면 우리는 매일 퇴근 후 요가원에서 만나 함께 수련했다. 내향적인 나와 달리 목소리 톤이 높고 밝은 명희는 상대를 유연하게 배려할 줄 알았고 적당한 선을 잘 지켰다. 그렇게 오 년째 되던 해에 연말을 앞두고 명희가 핸드폰 액정을 내 얼굴에 들이밀었다. 요가원 인스타그램 홍보 계정의 지도자과정 모집 공고 게시물이었다. 가능하다면 카톡 앱도 지우고 싶은 나는 sns를 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한 일정은 몰랐지만 매해 그 과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요가를 전문성 있게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던 터라 명희의 말이 귀에 꽂혔다. 그 뒷말이 더 대단했다.

 “나 오늘 회사 관뒀어!”

 고등학교만 졸업해 중소기업의 회계 일을 하던 명희는 경력자임에도 회사 내에서 대학 졸업자 신입과 학력, 연봉 차별을 겪었다. 사회는 냉정하다. 그게 자본주의 사회다.

 “그래! 하자!”

무언가를 결정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내가 단번에 말을 뱉었다. 입 안에서 머금고 있던 말이 밖으로 나갈 때를 기다렸다는 모양새였다. 6개월 과정에 400만 원, 매일 수련하면서 주말 이틀을 하루 8시간씩 통으로 투자해야 하는,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는 부담이 큰 도전이었다.

 더욱이 그때 나는 빚잔치를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통장 잔액은 500만 원, 오롯이 내 몫으로 겨우 모으기 시작한 돈이었다. 명희와 함께 요가 지도자과정을 등록하고 결제하면서 회사에서 조금 더 버티자 스스로 달랬다. 열정 없는 일의 성과가 좋을 리 만무하고 그렇다고 윗사람에게 붙임성 있는 성향도 아니었으므로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쳐 회사를 그만두고 좀 쉬자 마음먹었지만, 엄마의 경제력만으로는 집안 살림을 꾸려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 마냥 나만 생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 조금만 더 버텨보는 거야.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나한테 내가 힘을 실어주자.’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쉬기를 반복하면서 주먹을 꽉 쥐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꼭 요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때 나에게는 피폐해진 마음과 정신을 다잡을 무언가가 필요했던 거 같다. 요가 매트 위에서 수련에 집중하면 몸도, 마음도, 정신도 그 순간만큼은 깨끗해졌다. 그 감각이 내면에 쌓여 단숨에 결정을 내릴 수 있었으리라.     


 2주 뒤 주말부터 지도자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요가에 대한 철학부터 아사나(요가 동작)에 대한 이해와 연구, 해부학 등 이론부터 시작해 교수법 실습, 개인 수련 200시간 이상, 필기와 실제 수업 진행 실기시험까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과정이었다. 본업을 병행하면서 지도자과정을 이수하는 사람들이 다수였는데,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는 중도 포기자가 속출했다. 처음 시작한 인원의 절반밖에 남지 않았다. 회원으로서 접하는 요가와 지도자로서 접하는 요가는 괴리가 컸다. 아사나 수련까지 더해지므로 체력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것이다. 몸이 고단하니 불면증으로 고생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숙면했다. 늘 시끄럽고 복잡하던 생각도 무척 단순해졌다. 

 “지금까지 잘 버텨내셨어요.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셨습니다. 이 과정이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가 시작이고, 요가는 끊임없이 수련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마음의 평안과 존경의 의미를 담아, 나마스떼! 선생님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모든 과정이 끝이 났던 그날을 지금 생각하면, 다시 할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열정을 쏟아부었다. 이틀을 앓아누울 정도로 긴장하면서 보낸 시간이었다. 누군가를 정말 가르칠 수 있을까, 두렵기도 하면서 설렜다. 

 “언니, 나 다음 주 금요일에 요가원에서 현장 수업하는 거 신청했어. 언니도 들어보고 피드백 좀 해줘.”

 요가원에서는 지도자과정 수료자 중에서 실제 회원들을 대상으로 현장 수업 실습을 할 수 있도록 신청자를 받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병행했던 명희는 곧장 요가 지도자로 취업을 계획하고 있었다. 

 “한 타임 수업에 강사료가 3만 원이래. 일자리 구하는 게 관건이긴 한데 일단은 부딪혀 보려고. 추진력은 무슨, 나는 이제 선택지가 없어. 요가도 하고 돈도 벌고 그냥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앞만 보고 가는 거야. 경험도 쌓고 공부도 더 하면서 나중에는 요가원 차릴 거야.”

 내가 대단하다고 치켜세우자, 명희는 회사를 그만뒀을 때 이미 계획한 일이라고 했다. 회사로는 더 취업하지 않을 거라는 말도 덧붙이면서.

 “언니도 현장 수업 실습 신청해. 딱 한 번 할 수 있게 해 준대. 힘들게 했는데 그냥 묵히면 아깝잖아.”


 언젠가는 요가를 가르치는 일도 해 볼 수 있겠다고 막연히 생각만 했는데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시점도 중요하다. 행동하는 것이 진짜 영리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 그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는 잃게 되기 마련이다. 잃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스스로가 사회생활 부적격자로 생각하는 내가, 회사를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야말로 앞뒤 재지 않은 무모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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