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반 Mar 24. 2024

비바람 속에 우산 없이 서 있는다는 건

언제든 해고당할 준비

 친한 친구의 남편이 회사 근무 시간을 화두에 둔 말허리에 “그 요가하는 친구, 몇 시간만 일하고 쉬니까 정말 편하겠다.”라고 했다는 말을 친구에게 흘려들은 적이 있었는데 목구멍으로 떫고 쓴 침이 삼켜졌다. 요가 강사로 일하면, 짧게 일하고 시간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을 거라고 나도 막연히 생각했었다. 사람들의 생각과 시선이 대체로 친구 남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해서는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가본 길에 대해서는 결코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자녀가 직업을 선택할 때, 부모의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부의 경우로 말의 의미를 더해본다.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한 번씩은 입으로 뱉어 보았을 말, 남의 돈 먹기 쉽지 않다. 연예인들이 여행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돈도 많이 벌어서 좋겠다고 생각하는 의식의 흐름으로, 요가뿐 아니라 스포츠 강사들도 운동하면서 쉽게 돈을 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꽤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지긋지긋한 출퇴근의 반복과 업무에 대한 압박감, 하루 종일 회사에 목줄이 매여 있는 듯한 답답함, 시답지 않은 인간관계에서 벗어나 먹고 살 수 있는 경제활동의 수단. 남들은 소비하면서까지 운동을 하는데 소득을 일으키면서 운동도 하고 짧은 근무 시간과 자유시간이 여유로울 거 같은, 프리랜서 요가 강사라는 직업. 그렇게 시작한 나의 밥벌이는 앞선 글과 앞으로 나열될 이야기들에서 단단한 착각의 오류를 범했음을 충분히 설명하게 될 것이다.

 요가가 중심이 되는 생활을 하다 보면 삶이 꽤 단순해진다. 전임강사라면 센터 수업 시간에 맞춰 먹고 자는 삶의 패턴이 정해진다. 특히 요가는 공복 수련이 중요한데 식사 시간과 식사량을 조절해야 개인 수련과 수업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개인 수련과 아사나(요가 동작) 연구를 부차적으로 하지 않으면 수업의 질이 낮아지므로 요가 강사로서 연차가 쌓일수록 한계점을 느끼게 되고 더 공부하고 개인 수련에 시간을 많이 보낸다. 수업의 질은 회원들의 평가로 이어지며, 회원들의 평가는 센터장의 평가로, 센터장의 평가는 안정적인 수업과 고정적인 수입 또는 강사 교체 인한 해고로 이어진다. 남의 평가에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그저 나를 평가하는 대상이 직장 상사에서 내 수업을 듣는 회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특히, 아파트 커뮤니티 수업은 매달 등록 인원에 따라 수업 연장 여부가 갈린다. 등록 인원 미달이면 당장 다음 달 수업은 폐강이고, 다른 센터를 구할 시간도 없이 일자리도, 수입도 끊긴다. 이것이 프리랜서 요가 강사의 냉정한 자본주의 경제 사회법칙이다.

 직장인이 입사와 연봉 계약서에 사인을 할 때, 프리랜서는 용역 업무위탁 계약서에 사인한다. 그나마 계약서를 먼저 내미는 센터는 상급이다. 대부분은 위탁 계약서라는 형식적인 절차조차 없이 고용되었다 해고된다. 직장인은, 근로자로서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는다. 고용된 근로자를 사용자가 합당한 사유 없이 함부로 해고할 수 없다. 이래저래 정책상 말들은 많아도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게 아주 유리하게 적용된다. 4대 보험과 국민연금(회사에서 50% 지급), 퇴직금, 유급휴가 등등. 스포츠 강사 프리랜서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데―근로자가 아닌 노동자여서 인가? 그 차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물론, 직장인과 프리랜서의 소득 공제율이 다르고 엄밀하게 말하면 그에 따라 보호받는 권리의 범위가 정해질 것이므로 당연한 차등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 경제적인 정책들의 복잡한 미로를 보고 듣고 있노라면 머릿속이 매듭 꼬인 실타래와 같은 상태가 되므로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임을 덧붙인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고용불안정 해소를 목적으로 예술인 분야의 고용보험 가입이 추진은 되었지만, 다른 직종으로 도입은 계류 중이다.


 헬스장 GX 요가 오전 수업을 전임으로 맡아 3년간 수업을 지도하고 있었을 때의 일이다. 오전 수업을 끝내고 저녁 수업 전까지 개인 수련과 수업 준비로 오후 시간을 쪼개고 있는데 센터 팀장으로부터 전화가 수신되었다. 경영난으로, 센터가 다른 곳으로 인수되었으니 당장 다음 주부터 모든 수업이 폐강된다는 해고 통지의 내용이었다. 당시에는 분노, 불안, 허탈, 상실감 등이 한데 뒤섞여, 생전 처음 겪어보는 ‘해고’라는 단어가 나를 삼키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을 걷고 또 걸었다. 그때의 그 미묘한 감정은 아직도 내 눈 뒤에서 자리 잡고 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프리랜서는 내일 당장, 아니 오늘이라도,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음’에 익숙해져야 한다. 당연한 이치다. 다른 분야는 잘 모르겠고 적어도 내가 일하는 요가 강사의 세계는 수요(고용주)가 공급(강사)보다 적다. 나 아니어도 일할 사람은 많다. 프리랜서에 대한 단단한 착각의 오류를 인정하게 된 시점은, 회사 밖은 더한 생존 경쟁의 밀림이라는 것을 깨달은 때부터였다.

 “아, 진짜 엊그제는 팀장 목을 조르고 싶더라니까. 했던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되풀이하면서 들들 볶아대. 나도 회사 관두고 너처럼 자격증 따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어.”

 요가 강사 생활하면서 자리를 잡느라 친구들과의 만남의 횟수가 많이 줄었는데,―덕분에 쓸데없는 인간관계도 많이 정리되고 남을 사람만 남았다―수개월 만에 만난 친구는 직장 상사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입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거의 토악질하다시피 내뱉는 말 중의 몇 마디는 꽤 귀에 거슬렸지만―나도 그런 시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하고―대충 흘려보내며 듣다, 친구의 말이 누그러질 때를 기다렸다.

 “비가 보슬보슬 내려. 그러다 빗줄기가 굵어져. 장대비야. 거기다 세찬 바람도 더해져서 장대비가 바람의 방향대로 이리저리 흩날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서 우산을 써도 소용없어. 몸을 가누기도 힘든 태풍이라도 오면 속수무책이야. 그 속에서 맨몸으로 서 있는 거야.”

 갑자기 장황한 서사를 내뱉는 나를 향해 친구는 큰 눈을 끔뻑였다.

 “돌풍이 부는 비바람 속에서 우산도, 비옷도 없이 서 있는 게, 내가 지금 하는 일이야.”

 친구는 입술을 어정쩡하게 벌리며 ‘아’하는 외마디를 흘렸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고, 나는 혹시라도 나의 안색을 살필 친구를 향해 어떠한 감정의 근원도, 파고도 없는 진심으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였다.

이전 04화 요가강사는 몸이 스크류바 아이스크림이어야 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