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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Mar 31. 2024

괜찮은 것이 괜찮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 많아질 때

선택이 확신은 아니다

 요가 지도자과정을 함께 수료했던 명희는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던 선언을 깨고, 요가 강사 생활 2년 만에 다시 회사에 취직했다. 두 번의 임금체불과 불안정한 고용 형태, 강사라는 직업적 틀 안의 서비스직 개념에 고민하다 직장인으로 돌아 간 것이다. 명희는 고용노동부 노무관을 재판장으로 두고 고용주와 두 번의 아수라장을 겪으며 노동의 대가를 몇 달에 걸쳐 받아내야 했고 거기서 학을 뗐다. 개선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 소득 구조와 요가 강사로서 겪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명희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쪽으로 선택의 무게 추를 두게 했다. 아직 겪지 않았다고 해서, 내 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괜찮은 건 아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이치로 굴러가지 않을 때 삶의 이상과 현실은 괴리가 커진다.

 음식점 메뉴 가격도, 대중교통 요금도, 새우깡 한 봉지 가격도, 하물며 콩나물 가격도 물가에 따라 가격이 인상되는데, 요가 강사의 강사료는 중구난방이다. 물가가 오르니 센터 운영비도 증가할 것이고 그에 따라 회원들의 수강료는 인상되지만, 강사료에는 반영되지 않는 구조가 참 의문스럽다. 연차에 따른 강사료는 초보 강사와 천 원짜리 서너 장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전반적인 요가 강사료는 인상도, 인하도 없이 수십 년째 평균값으로 거의 변화가 없다. 명희는 다시 돌아간 회사 생활에 경력자답게 빠르게 제자리를 찾았고 퇴직 전과는 다르게 경제적인 면에서 안도감이 느껴져 훨씬 편안하다고 했다. 어긋난 톱니바퀴를 맞물리게 잘 돌아가도록 수리했다면, 잠시 잠깐의 일탈은 명희에게 최선이었을 것이다.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선택의 무게 추를 다시 둘 수 있는 상황이 내 앞에 있다면, 나는 어디에 두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요가를 지도하고 있다는 것으로 답을 대신해 본다. 그렇다면 그 선택에 확신은 있나. 그건 아니다. 내 눈앞에서 손가락으로 삿대질하며 목청을 높이는 비상식적인 회원을 마주하거나 하루, 이틀 수련을 게을리했다고 막대기처럼 굳는 내 몸을 열어내는 육체적인 고통을 마주할 때도 매번 끊임없이 갈대처럼 흔들린다. 물론,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으므로 사람 마음이 간사하니 비상식과 반대되는 인연과 상황에 불편한 마음과 생각이 중화되기도 한다. 먼 미래는 모르겠고, 당장 내 몸 하나 건사할 수 있는 밥벌이 정도만 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했던 것이, 괜찮은 것이 맞나 싶은 의구심이 생기면 동력을 잃고 굴레에 갇힌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누구나 열심히 최선을 다하지. 잘! 하는 게 중요하지.”

 직장 상사가 내 프로젝트 보고서에 시선을 두고 서류 한 장씩 탁탁 넘기며 했던 말이다. 잘하는 게 아니면 다 아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잘해도 최소한의 밥벌이로 괜찮지 않은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버틸 수 있을까.

 사회가 정해 놓은 틀과 기준의 흐름을 역행해 사는 삶의 과정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 기준은 도대체 누가 정한 것인가. 계속 되묻게 된다. 괜찮다는 게 그 기준에 맞추어 실뜨기하는 걸까, 아니면 그 반대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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