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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Apr 14. 2024

통장 잔액이 주는 무게

제 앞가림만 잘 하고 살자

 언젠가 사회에서 만난 지인들이 함께 모여 밥도 먹고 술도 먹는 자리에 동석한 남자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맴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말이야, 경제 능력이 곧 계급이야. 무슨 일을 하던 돈 잘 버는 놈이 피라미드 최상위에 있는 거라니까. 특히 남자는 돈으로 계급이 나뉜단 말이지.”

 요즘 시대에 그게 뭐 남자한테만 해당할 말이겠는가.

 막 초보 요가 강사로 밥벌이를 시작했을 때다. 주 5일 저녁 2타임 수업 전임강사로 일하고 있었는데, 강사료는 1시간에 3만 원, 하루 수입은 6만 원, 공휴일 없는 나의 한 달 수입은 총 120만 원이었다. 아, 물론 여기서 3.3% 세금 공제를 하면 실질적으로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그보다 좀 적다. 회사에 다닐 때 근무 시간과 월급에 비하면 일하는 시간도 적고 소득도 당연히, 적다. 처음 요가 지도자 과정을 시작할 때 1타임(50분~60분) 수업 강사료가 3만 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속으로 괜찮은데 했지만,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일대일 개인 수업을 원하는 수요가 있지 않는 한, 대체로 단체수업을 진행하는데 그 수업이 하루 종일 있는 게 아니라는 것. 평균적으로 오전에 2시간, 저녁에 2시간 또는 각 3시간 수업이 최대로 할 수 있는 정도이고, 오전에는 정규 강사 구직이 정말 어렵다. 최소 2시간씩, 오전과 저녁 수업을 해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데, 이런 면에서 요가 강사의 경제적인 부분은 1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오전에는 정규 강사 자리는 구하기가 힘들어 개인 수련과 공부에 시간을 보내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저녁 2타임 정규 수업이 수입의 전부였던 과거의 어느 날이었다. 그때는 그 정도만 벌어도 하루에 내가 누리는 마음의 평온이 더 절실했을 때라 나 스스로는 만족감이 높았다. 엄마가 출근 준비 중에 쿠션 퍼프를 얼굴에 두들기며 물었다.

 “너 그거 요가 가르치면 얼마 받아?”

 학자금 대출 상환과 엄마의 빚잔치를 끝내고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30만 원만 낼 테니 나머지는 엄마가 알아서 하라고 선언한 뒤 요가 강사 일을 한 지 1년쯤 지났을 때였을 것이다. 나는 엄마에게 약속한 생활비를 하루의 오차도 없이 매달 1일, 한 달도 빠짐없이 착실히 이체해 왔다. 나는 엄마의 질문이 품은 그 어떤 의도가 있을 거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고 읽던 책에 시선을 두고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한 시간에 3만 원 받아.”

 “가만있자, 그럼 한 달에 꼴랑 120만 원밖에 못 벌어? 하이고.”

 엄마의 말끝에 따라붙은 비아냥대는 한숨 소리와 ‘꼴랑’이라는 단어가 귀에 무척 거슬렸다. 말을 입 밖으로 내보내기 전에 단 한 번도 뇌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는, 상대가 아무리 자식이라도 내가 아닌 타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엄마의 말은 다듬어지지 않았고 날것 그대로 내 귀를 뚫고 들어왔다. 엄마는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단지 자식이 얼마를 버는지가 궁금한 거였다면 듣기에 따라 기분이 애매해지는 그 ‘꼴랑’이라는 단어를 붙여가며 빈정거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나는 보고 있던 책을 덮었다.

 “엄마. 그렇게 말하는 저의가 뭐야?”

 나는 차갑게 말했다. 엄마는 튕겨오르듯 놀라며 목소리를 높여 순식간에 나를 가해자로 만들었다.

 “뭐? 저의? 어머. 쟤 좀 봐. 저의는 무슨 저의!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별안간 엄마는 피해자가 되었다. 엄마의 말에 토를 달면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 되는 일은 돌연하게도 왕왕 있는 일이었다. 나 원 참, 기가 막혀서. 여태껏 그랬듯 엄마와의 평화를 위해서는 내가 입을 다무는 게 상책인 일이었다. 그때 입은 다물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도 엄마의 그 말이 귀에 생생하다.

 꼴랑 그거밖에 못 벌어?

 내가 그때 최소 회사에서 받던 월급만큼 버는 정도였다면 엄마가 그렇게 말했을까 싶다. 세상 참, 살벌하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경제 능력에 따라 피라미드 구조가 형성되는 것인가 싶어 씁쓸했다.      


 국내 거주자 18세 이상 60세 미만은 국민연금 의무가입 대상이기 때문에, 소득신고가 되는 프리랜서도 국민연금 납부 고지를 받는데 버는 금액이 시원찮다 보니 매달 몇만 원씩이라도 고정으로 들어가는 비용은 나중에 연금으로 돌려받는 돈이라 할지라도 부담된다. 미납되면 독촉장까지 받게 되니 미루다가도 결국엔 납부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 보험료가 계좌에서 자동이체 되고 있어, 우편물로 오는 고지서를 들여다보는 일이 없다가 얼마 전 고지서 뒷면에 연령대별 평균 소득수준에 대한 통계 자료 안내를 보게 되었다. 강사 시작 처음보다 지금은 수업도 더 많이 하고, 운이 좋게도 아직까진 임금체불을 겪지도 않았고, 다행스럽게도 경력과 수업을 인정받아 오래 일한 센터에서 인상된 강사료를 받고 있지만 그 안내된 자료에서의 나의 소득수준은 같은 연령대 또래들보다 절반 정도임을 친절히 알려 주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통계 자료이고 평균값이지만 그래도 잠시 잠깐은 마음자리가 어수선했었다. 지금은 피식 웃고 말 일이지만.

 나의 20대의 통장은 대출금과 엄마에게 물려받은 빚 탕감용으로 돈이 들어오기 바쁘게 스쳐 나가는 도구에 불과했고, 나의 30대 통장은 새로운 직업을 선택한 대가로 불안정한 생활을 해 나가느라 들어오는 금액이 야박해 마이너스가 나지 않으면 다행일 일이었다. 40대를 바라보는 통장에 적힌 예금 잔액의 단위가 너무 적어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한 방을 노릴만한 위인은 되지 못하니 그저 제 분수에 만족하며 남한테 민폐나 끼치지 말고 제 앞가림이나 잘하면서 살자, 생각했다. 너무 가벼운 통장 잔액이 불투명한 미래의 무게를 더해 마음이 묵직할 때도 솔직히, 많지만 말이다.

 나는 오늘 저녁 수업하러 가는 길에,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의 일주일짜리 행복 '로또'를 사면서 잠시 '당첨되면 어떡하지.'하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자각하며 한바탕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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