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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Mar 10. 2024

요가강사는 처음입니다만

요가로 먹고 살 수 있을까?

 “엄마, 나 오늘 회사 관뒀어. 앞으로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30만 원씩만 낼 테니까 다른 건 이제부터 엄마가 알아서 해.”

 요가원 현장 수업 실습을 일주일 앞두고 나는 7년 가까이 재직한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사직하겠다는 의사 전달과 사인한 종이 한 장 제출로 대출금 상환이 주된 목적이었던 나의 20대 사회생활은 간단히 정리됐다. 퇴직금과 얼마간 저축한 돈이 있으니 어떻게든 해 볼 생각이었다. 밥 먹다 말고 나의 사직 통보를 받은 엄마는 카드 대출금 고지서를 무작정 내밀며 부연 설명조차 하지 않았던 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첫 백수 생활은 시작되었고 요가 수련과 수업 실습 준비에 시간을 보냈다.


 “하, 완전 엉망진창이었지? 말을 너무 버벅거리지 않았어?”

 요가 지도자로 인생 첫 수업을 끝내고 명희는 울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가 동작을 시연하고 말로 설명하면서 한 시간 동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수업을 이끌어 가는 게 여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눈으로 볼 때는 쉬워 보여도 막상 해 보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체감된다. 회원으로 선생님들 수업을 들을 때는 말하면서 동작 몇 개 보여주고 하는 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별거 아닌 게 정말 아니었다. 당장 내일의 내 모습도 명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예상됐지만 이미 퇴로를 끊어버린 상태였으므로 돌아갈 곳이 없었다.     

 “두 손 모아 가슴 앞 합장, 함께 인사하고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나마스떼.”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가슴은 두방망이질을 쳤지만 괜찮은 척 담담한 표정으로, 떨리는 목소리를 간신히 부여잡고 초보 요가 강사로서 첫 수업을 끝냈다. 수업을 참관한 원장님으로부터 무난하게 잘 지도했다는 피드백을 받고, 나는 회사와는 또 다른 사회의 전장으로 출격을 앞둔 병사의 마음으로 요가 강사 구인 공고에 ‘요가 지도자과정 수료’ 뿐인 한 줄짜리 이력서를 간단한 자기소개와 함께 열심히 보냈다. 수업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초보 강사에게 정규 수업을 쉽게 내 줄 요가원이나 운동 센터는 없었다. 예상했지만 막상 겪으면 점점 움츠러든다. 나는 정규 수업보다 대강 수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짧게는 하루, 길게는 3개월 정도 잠깐 자리를 비우게 되는 선생님들의 수업을 대신 맡아서 하므로 심리적 부담은 덜면서 지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매번 강사 구인 사이트에 수시로 드나들며 대강 수업을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랐다. 수업을 구하지 못하면 그날의 수입은 없다. 공사 현장의 일용직 노동자와 다를 것 없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프리랜서 최하위 계급의 밥벌이 현장에 발을 디뎠다. 처음 1년 동안, 서울의 안 가본 지역구가 없을 정도로 뚜벅이, 보따리 대강 강사 생활을 이어갔다. 오전 수업은 정규 수업뿐 아니라 대강 수업도 구하기 어려웠고, 오후 수업은 직장인의 퇴근 이후 시간에 맞춰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여름밤 퇴근길은 그나마 나았다. 영하 주의보라도 떨어지는 겨울에는 롱패딩으로 온몸을 감싸도 칼바람이 소매 끝으로, 바지 끝단으로, 얼굴로 밀고 들어왔다. 그래도 그때는 마음이 힘든 것보다는 몸이 힘든 게 낫다는 생각을 위안으로 삼았다. 그리고 오전과 저녁 사이, 직장인들이 오후 업무에 시달리는 낮 시간대의 자유로움은 늘 긴장하며 생활했던 나에게는 꽤 괜찮은 장점이라고 느꼈다.     


 “선생님, 빈야사 수업 시간에 왜 계속 같은 동작만 반복해요? 다른 동작도 섞어서 하시면 좋을 거 같은데.”

 대강 강사로 1년 동안 수업을 하다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헬스장에서 요가 수업 전임강사로 일한 지 서너 달이 되었을 때의 일이었다. 경력 강사였다면 상황을 가볍게 정리하고 넘기는 노련미가 있었을 테지만, 매일 하는 수업인데도 매번 긴장하는 겨우 2년 차 초보 강사였다. 다른 회원들의 시선까지 한 번에 받은 나는, 상대를 대하는 무례한 태도와 말투에 적잖이 당황했다. 표정 관리에 애쓰며 수업 내용에 대해 강사로서 설명하고 마무리했지만, 그 타격감은 꽤 오래 이어졌다.

 동네 헬스장의 특성상 중년 아줌마들의 텃세가 있는데 강사가 마음에 들거나 하지 않으면 컴플레인은 물론이고 고용주가 강사를 해고하게 만들거나 자발적으로 그만두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무리가 있다. 아파트 커뮤니티 수업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파트는 입주민이 갑(甲)이다. 기(氣)가 센 고용주가 여럿이라는 느낌이랄까. 전문 요가원은 그나마 제일 근무 환경이 나은 편이다. 정말 요가를 수련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선생님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대우가 괜찮은 편이다. 물론 모두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대동소이 하다.

 인간관계가 힘들어 혼자 하는 일을 선택했는데 더 큰 인간사회에 발을 들였다는 건, 한참 뒤에나 깨달았다.

 “언니, 나 어제 노동부에 센터 사장 신고했어.”

 오랜만에 만난 명희는 6개월 정도 일한 오전 센터의 강사료 미지급 문제로 애를 끓이다 결국은 노동부에 신고했다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나는 아직 임금체불을 겪은 적은 없었지만, 프리랜서 운동 강사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다음 타자가 내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건 생계를 위협받는 일이다. 세상은 불공정, 불공평 그 자체라며 푸념 섞인 넋두리를 늘어놓는 명희를 보면서 문득 요가를 가르치는 일이 가뭇없이 느껴졌다.      

아침부터 잔뜩 웅크리고 있던 회색빛 하늘이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냈다. 갑자기 창밖으로 쏟아지는 둔중한 소낙비의 장막이 카페 안의 음악 소리와 뒤섞여 애수(哀愁)가 되었다. 요가 강사로 밥벌이하면서 살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나의 속마음을 대변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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