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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반 Mar 23. 2024

우울의 단면(3)

사는 게 숙제인 여자

 옆으로 웅크리고 있던 몸을 반듯이 해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웠다. 아직도 실처럼 가느다란 전율이 온몸을 타고 지나다녔다. 보통 이틀 정도면 증상이 머물다 사라지곤 했는데 이번엔 벌써 일주일째 이 모양이다. 멍하니 거실 천장에 시선을 두고 눈이 시릴 때쯤 한 번씩 눈꺼풀을 끔뻑거렸다. 윗집에서 물이 샜던 적이 있었는지 천장의 한 귀퉁이가 누렇게 얼룩덜룩했다. 연희와 함께 다니던 회사를 마지막으로 나는 모든 사회생활을 접었다. 아스팔트 바닥까지 녹일 듯한 한 여름의 태양과 맞서 걷다가 부지불식간에 모두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들었던 어느 날이었다. 어떤 일을 할 때 한 번도 단숨에 결정하는 일이 없던 내가, 앞도 뒤도 재지 않고 그 길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전화 목록의 관계들을 정리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내게서 정리됐다는 사실을 모르겠지만, 나는 혼자 안녕을 고했다. 그리고 방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냥 가만히 있었다. 집 밖을 나가지도, 잘 먹지도, 잠을 잘 자지도 않는 생활이 여러 달 계속되자―처음에는 걱정스러운 듯 내 눈치를 보기도 했지만―엄마는 인내심에 한계를 느꼈는지 이렇게 멋대로 살 거면 나가 살라고 소리쳤다. 엄마와 대립해 갈등할 여력조차 남지 않았기에 나는 몇 가지 짐만 꾸려 지은 지 50년 가까이 된 낡은 빌라에 세를 얻어 들어왔다. 그리고 이 집에서도 똑같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가란다고 진짜 나간 딸년이 괘씸하면서도 걱정스러운지 엄마는 간간이 전화를 걸어왔다. 하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잘 있다는 짧은 문자로 답을 대신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마음먹고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이 행위의 한 단면에는 엄마에 대해 얽혀있는 불편하고 혼란한 감정들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울의 단면 4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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