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반 Apr 28. 2024

You never know

삶에도 질량보존의 법칙이 있다.

 남의 말에 잘 흔들리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럴까? 자기 생각에 확신이 없으며 주관이 뚜렷하지 못한 사람이 그렇다. 상대방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볼 때, 그때 자의식이 결여되는 것이다. 육체는 성인으로 자라지만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난 한국 사람이라 외국 사람들은 어떤 가치관과 신념을 가지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특히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경쟁해야 살아가는 사회 구조도 한몫하지 않을까.


 무조건 성과를 내야 하고, 성과없는 과정은 효용가치조차 거론되지 않으며,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그런 사회다. 힘들면 잠시 쉬어 가는 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사람은 드물다.


 요가 지도를 하다 보면 회원들의 자세를 교정해 주기 위해 핸즈온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핸즈온을 하다 보면 상대의 육체적 긴장 상태가 손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정신적 긴장에서 육체적 긴장이 비롯되기 때문에 상대가 얼마나 많은 힘을 들이며 하루하루를 쌓고 있는지 짐작되면, 마음이 안쓰럽다. 긴장 상태가 만성화 되면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생활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신체적 통증으로 발현될 때까지 방치한다.

 나도 그랬다.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도태되는 거 같아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몰아붙이면서 그렇게 살았다. 그렇게 살아서 남은 게 위벽이 갈라지는 통증과 순환 장애, 관자놀이를 압박하는 편두통, 불안과 우울장애였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나는 나를 너무 혹독하게 대했던 거 같다. 남들한테는 그렇게 (가식적인 미소일지라도) 한없이 웃어 보이면서 정작 내가 나를 위해 웃어본 적이 있던가.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없다.     

 

 “요가 그거 나이 들어서 하기 좀 힘들지 않아?”

 “요즘 시대에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이라도 해서 너를 홍보해야지. 요즘 요가 강사들 유튜브 많이 하잖아.”

 “언제까지 그렇게 여기저기 다닐 수는 없잖아. 네 요가원 하나 차리는 게 낫지 않아?”     


 이 외에도 많지만, 나를 염려하는 지인들의 공통적인 대사의 맥락이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공중에 연기처럼 사라질 수도, 머릿속에 맴돌 수도 있는 말들이다. 솔직히 나보다 내 인생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 그런 말들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나는 요즘 멈추는 힘이 생겼다. 생각이건 행동이건 무조건 밀고 앞으로 나가기만 했던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다. 외부 자극을 줄이고 잠시 혼자 지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시르사아사나’(물구나무서기, 요가동작)를 한다. 제일 높게 위치해 있던 머리를 바닥에 두어, 몸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은 상태로 수 분간 부동한다. 그러면 나의 내면의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다. 불편하고 복잡하고 어지러운 생각들이 마음을 흔들면 몸도 같이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깊은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정돈된다. 몸도 마음도.


 삶에도 질량보존의 법칙이 있다.  살아가는 순간의 조각에 크기 차이가 있을 뿐, 전체적인 파이를 놓고 보면 누구에게 똑같은 크기의 파이가 주어지는 법이다. 지금 당신이 가진 조각이 크다고 해서 계속해서 큰 조각을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이다. 인생은 불행과 행복이 공존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꽉 찬 사람은 같은 크기의 행복도 더 넓게 본다. 마음이 비루한 사람은 같은 크기의 행복도 훨씬 작게 본다. 불행도 마찬가지다. 내가 내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 가는 그 길이 남들이 말하는 그 기준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나만의 중심을 세울 필요가 있다. 남이 누군가와 나를 비교하더라도 내가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거 같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

 모든 불행은 사람들의 시선에 나를 가두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나는 ‘나’로 오롯이 걸어가 보겠다.     

이전 09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하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