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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Dec 21. 2021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  『상상력 사전』에서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운두는 벼룩들이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는 높이다. 

그 다음에는 어항의 아가리를 막기 위해서 유리판을 올려놓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올라 유리판에 부딪친다. 그러다가 자꾸 부딪쳐서 아프니까 유리판 바로 밑까지만 올라가도록 도약을 조절한다. 한 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는다. 모두가 천장에 닿을락 말락 하는 높이까지만 튀어 오르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상상력 사전』, 열린책들, 2011, p108.




괄호




((((((괄호를 치며 걷는다 나의 사랑스런 감옥


그날, 새로 생긴 가족들 앞에서 엄마가 나를 어디에 앉혀야 할지 쩔쩔맬 때, 이상하게 발이 부끄러웠다 불필요하게 누군가를 닮아있구나


괄호는 도착하는 법을 잊어버린 지 오래


닫히지 않고 왼쪽으로만 자꾸 늘어나서 되돌아갈 수 없다 나는 걸어서 나이를 먹는다 한 살 두 살 스무 살


뒤쪽엔 기분이 너무나 많다


오늘 죄다 쏟아낼 것 같은 기분, 누구랑 할까 


숨을 쉬면 협상이 번식한다 도착지에서 무럭무럭 자라는 비밀, 원조와 원조 사이 당신들은 서 있고 목소리는 누워 있다


괄호가 닫히기 전에 

누군가 오래된 직립을 쓰러트리면 나는 기쁠까 슬플까


득실거리는 눈, 눈, 눈,……,……)     


- 김네잎, ≪열린시학》, 2019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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