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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네잎 Jan 04. 2022

책갈피에서 툭! 떨어진 시

-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에서

매일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주의깊게 관찰하지 않았던 그들은 눈앞에 벌어진 현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웬일이야. 치즈가 사라졌어.”

헴이 고함쳤다. 

“치즈가 없다고, 치즈가!”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지만 허망한 메아리만 되돌아올 뿐 치즈는 돌아오지 않았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마침내 그는 두 손을 허리에 얹고 시뻘게진 얼굴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어떻게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지!”     


- 스펜서 존슨,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주)진명출판사, 2001, p30. 


            



누란(累卵) 



              

나는 어둠을 포개 놓은 계단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내려간 사실이 있고

지하 토끼방*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칼잠을 잔 기억이 있는 것도 같은데

아무도 내 목소리를 호명하지 않아

나비를 품은 귓바퀴는 한참 난감해지고

생각의 안쪽에서부터 비굴함은 곪아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언제쯤 바깥을 향해 대답을 해야 하나?

상상 속엔 항상 토끼가 있지

오르막길도 고속으로 달려가고 싶은

그러나 나는 늘 정반대

창문조차 허락되지 않는 토굴 속에서

알을 서툴게 품고 있는 변종이지

옆방의 김 씨는 술만 먹으면 ‘미자야 미안하다’를 외치거든

늑대의 이빨이라도 내게 있었다면...

다행이야, 방에만 들어오면 초식동물이 될 수 있으니

주인의 발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것만 닮아있지

신불자만 아니면 300만 원까지 대출

한밤중, 문자 하나에 자존심이 곤두서지

신불자는 아니지만 신불자 같았던** 나에겐

내다 팔 간도 없는데

집요하게 허기를 붙잡는 풍경은 더디게 가고

면접용 양복은 유행이 한참 지나버렸는데

편의점 플라스틱 의자와 체온을 나누는 취미는 익숙해지고          



*창문도 없는 쪽방보다도 더 작은 방

**안현미의 「室內樂」 변용     

 

- 김네잎, 2020 인천 작가회의 시선집 『그리하여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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