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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Sep 08. 2024

11. 입학

            --- 디카페인 커피

  아이가 처음으로 학교에 가기 전날 밤. 어쩌면 아이보다 부모의 마음이 더 설레는지도 모르겠다. 아기를 낳던 날의 기억이 엊그제 같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이만큼 커서 학교에 가다니! 정말 감계무량하다. 나는 오후 2시 이후에 커피를 마시면 밤 12시까지 잠이 안 온다. 오후 늦게 마시면 마실수록 새벽을 넘어가는 시계를 보고도 눈이 말똥말똥해진다. 입학식 전날은 안 그래도 잠이 안 올 테니 커피를 꼭 디카페인으로 마셔줘야 한다.          


  어느 새 시간이 흘러,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이 되었다.

  ‘내일이면 나도 학부모가 된다니! 첫째가 언제 이렇게 커서 벌써 학교 갈 나이가 되었는지......아니, 내가 그만큼 나이를 먹은 건가?’ 내가 보기엔 아이가 초등학생이 아니라, 아직도 유치원생 같은데 말이다. 갑자기 어릴 적 찍어 두었던 사진들이 생각나서 사진첩을 꺼내 보았다.  첫째가 막 태어났을 때, 백일잔치 때, 돌잔치 때, 요렇게 작았던 아이가 훌쩍 커져서 학교에 간다. 마냥 즐겁게 놀던 어린 시절이 이제 끝나가는 것은 아닐까? 내일 아침, 유치원 다닐 때 보다 일찍 일어나서 가족 모두 꽃단장하고 입학하는 학교에 9시까지 가야하는데 잠이 안 온다.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 반 친구들은 몇 명이고, 아이들이 다 착하면 좋겠네. 내 아이는 키가 큰 편일까 작은 편일까?’

 모든 것이 하나하나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이가 학교에 간다는 것은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런 설레는 기분이구나! 어쩌면 막상 학교를 다닐 아이보다, 아이를 보내는 부모가 더 긴장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내 사진첩 속의 초등학교 입학식날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나도 그때의 내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비교적 쌀쌀한 바람이 살랑 부는 3월의 학교 운동장에서 가슴에 이름표를 달고 담임 선생님 뒤로 나란히 줄 서 있던 기억. 교실에 들어가서는 내 남자 짝꿍이 누가 될지 키대로 줄을 서면서 옆을 보고, 서로서로 눈치를 보았었지. 하이라이트는 반씩 나눠 쓰는 기다란 책상. 지금은 혼자씩 따로 앉는 작은 일인용 책상이지만, 내가 어렸을 적에는 기다란 책상을 둘이 같이 썼었다. 그런데 대부분이 남,녀 짝이었기 때문에 그 책상의 정 가운데에 금을 그어놓고 여긴 내 영역, 저긴 네 영역. 영역 표시를 하며 절대 넘어오지 말라고 눈을 흘기던 웃지 못할 이야기. 어느 날 지우개 하나라도 넘어 올라 치면 이건 이제 내 것이라면서 돌려주지 않고 놀리던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겨울이면 교실 한 가운데에 진짜 나무토막을 넣어 불을 지피는 난로도 있고, 그 위에 쥐포도 구워먹으며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양철 도시락의 밥을 따뜻하게 데우는 정이 넘치는 추억. 정말 옛날인가 싶지만, 나는 80년대생이다! 불과 30년전 이야기.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서른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내가 몇 살인지 까먹고 산다.    



 아무튼, 설레는 기분으로 밤에 남편과 학창시절 이야기를 나누면서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보통 오후 2시가 넘어서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잘 안 와서 오후에는 디카페인으로 한 잔 마셨는데, 그것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아까 3시에 내가 왜 커피를 마셨던가!

 드디어 입학식날 아침, 어제 늦게 잤는데도 다행히 일찍 눈이 떠졌다. 아이도 조금은 긴장한 모습이었다. 코트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선다. 입학식이라 가족들이 모두 총출동했다. 교문을 통과하고 학교 2층으로 올라갔다. 강당에서부터는 혼자 반을 찾아 가야한다. 

 “저기 너희 반 선생님이 팻말 들고 계신 거 보이지? 저기 가서 선생님께 인사하고 줄 서는 거야~” 했더니,

 아이는 엄마 손을 놓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아, 꼬맹이가 이제 1학년이라니! 차츰 손을 놓아 줄 때인 것이다. 뒤에서 보니 의젓하게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가 앉았다. 담임 선생님은 젊으신 여자 선생님이었다. 1년을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거라 기대가 되었다.     


  요즘에는 메신저가 상용화 되어서 담임 선생님과도 연락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알림장을 써 오기도 하지만, 1학년은 이 준비물이 왜 필요한지 물어봐도 모르기 때문에 메신저에 중요한 알림장이 올라오면 그걸 보고 댓글로 선생님과 소통하기도 한다. 또, 엄마들끼리 연락처도 주고받아서 반모임을 가지기도 한다. 학교가 끝나고 놀이터에서 반 친구들과 함께 놀다 보면 남자 아이들 엄마들이 자연스레 모이게 된다. 어제는 무슨 숙제가 있었는데 이걸 어떻게 했고, 받아쓰기나 일기는 어떻게 썼으며 학원은 어디를 다니고 등등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엄마들과 친해져서 나중에 아이들 학교가고 오전에 따로 만나 커피 한 잔을 한다. 여자들 특유의 친화성이 있지 않은가! 놀이터에서 1시간동안 실컷 얘기했으면서 자세한 얘기는 내일 커피 마시면서 하자고. 단, 하루에 2잔 이상 마실 때는 두 번째는 꼭 디카페인으로 마셔야 한다. 난 커피에 약해서 많이 마시면 잠이 안 오니까. 그래도 아이 친구 엄마와의 만남은 포기할 수 없다. 지난달에 이사를 와서 아는 사람 하나 없었는데 나에게도 동네 친구가 생기다니, 다 아이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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