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당라떼
여름이 오면 한 번쯤은 시원한 계곡이나 수영장에 가서 퐁당퐁당 뛰어 들고 싶어진다. 그런데 한참을 신나게 놀다보면 수영은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운동이라 금방 지쳐서 당 충전이 필요하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얼음이 퐁당퐁당 들어가 있는 달콤한 흑당라떼는 수영장에서 마시기에 아주 제격이다.
어렸을 때부터 첫째는 수영장을 좋아했다. 물만 있으면 호텔에 가서도 퐁당, 팬션에 가서도 퐁당, 아빠와 함께 물에 들어가면 지치지 않고 놀았다. 이렇게나 수영을 좋아 하길래, 이제 유치원에 가면서 수영을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우리 동네 수영장은 집과 좀 멀리 있어서 셔틀버스를 타야 했다. 첫째는 좀 예민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적응하는 데 공을 들여야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수영장에 등록도 할 겸 내가 차로 데리고 수영장에 갔다.
“여기 수영장이 좋대. 여기서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가르쳐 주실 거야. 수영을 배우면 나중에 튜브 없이도 아빠처럼 멋있게 수영할 수 있어. 오늘은 처음이니까 엄마랑 같이 왔고, 그 다음엔 셔틀버스를 타고 다니는 거야.”
엄마의 아주 친절한 설명과 함께 첫째는 수영장에 첫발을 딛었다. 선생님을 따라 옷을 갈아 입으러 탈의실로 들어가고, 엄마는 유리창 너머로 아이가 수영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요새는 아이들이 배우는 모습을 잘 볼 수 있게 시설이 잘 되어 있다. 우리 어렸을 때는 대체적으로 수영 선생님들이 목소리도 크고 좀 무서워서 정신 바짝 차리고 발차기를 열심히 하고 잠수도 경쟁적으로 하고 그랬었는데, 요즘에는 선생님들이 친절하고 수업 끄트머리에는 장난치고 놀기도해서 아이들이 좋아한다. 친절한 선생님들을 보고 있자니, 내가 어릴 적 수영을 배우던 시절이 잠시 생각났다.
나는 배우는 것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스타일이어서 수영을 배울 때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다. 물에 빠져도 살 수 있을 정도까지는 배워야지 생각해서 힘들어도 발차기를 열심히 하고 잠수도 오래 하려고 했다. 자유영을 배우고 있던 어느 날, 남자 선생님께서 수영 시합을 시킨다고 애들을 두 명씩 출발하게 했다. 나는 옆에 있던 여자 아이와 대결을 하게 되었는데, 열심히 잘 앞서가고 있던 나를 선생님이 갑자기 팔 자세가 그게 아니라면서 붙잡았다. 선생님께서 팔 자세를 다시 봐주고 있던 와중에 옆에 있던 여자 애는 골인을 하고, 그 애는 자기가 이겼다면서 좋아했다. 나는 너무도 억울했지만, 그 당시에는 소심하게 말도 못하는 어린애였기 때문에 나는 가만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아이는 엄마가 같이 와서 보고 있었고, 나는 엄마가 직장에 다니셔서 혼자 갔었다. 그때는 엄마 없이 혼자 다니는 게 싫었는데, 그 덕분에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다 스스로 모든 걸 알아서 해서 일찍 철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선생님이 시합이라면서 도중에 나를 잡은 것은 명백한 선생님이 잘못이며 반칙이고, 나는 시합이 끝나고서 억울함을 토로했어야 했다. 그래야 마음 속에 쌓인 응어리가 없을 텐데, 그때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는데 아직도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마음에 상처가 컸었나보다. 옆에 어른이 없어 혼자서 아무 말도 못하고 분을 삭힌 나를 이제라도 내가 위로해 줘야지.
첫째는 다행히 친절해 보이는 여자 선생님을 배정받아서 수영 수업을 시작했다. 첫날은 물에 적응하는 것이 목적이라서 배에 부력매트를 끼고 물놀이 같은 형식으로 재밌게 수영을 했다. 첫날 수업을 하고 아이에게 물어 보았다.
“수영 수업 어땠어? 배울만 해?”
“응, 재밌어!”
O.K! 첫날 수영 수업은 대성공!
마침 수영장에서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친구도 만나서 다음부터는 유치원 끝나고 바로 수영장에 가는 코스로 잡았다. 친구와 같이 버스를 타고 다니니 즐겁게 잘 다녔다. 그렇게 두 달쯤 다녔나? 부력 보조기구를 떼고 이제 자유영을 배워보려고 할 때였다. 첫째는 또래보다 키가 좀 작았는데 보조기구 없이 수영장에 발이 닿지 않자, 갑자기 무서움을 느꼈는지 더 이상 수영을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엄마가 가서 옆에서 봐줄게. 원래 처음에만 무섭지, 하다보면 금방 몸이 뜰 거야. 그러면 안 무서워.”
아이를 달래서 한 번 더 수영장에 갔다. 수영장에 가면 구경을 하면서 50분을 기다려야 한다. 아이가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서 나는 주차를 하고 가까운 커피숍에 먼저 들렀다. 무엇을 마실까 둘러보다가 눈에 들어 온 흑당라떼. 단 걸 먹으면 조금이나마 기분이 좋아지고 나를 위로해 주는 느낌이 든다. 시원한 커피를 쪽쪽 마시면서 아이가 내 쪽을 쳐다볼 때 마다 열심히 손을 흔들면서 눈인사를 해 주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선생님도 잘 잡아주니까 이대로 계속 다녀서 수영을 마스터 해야 하지 않겠니?’
하지만, 아이의 얼굴 표정은 점점 겁에 질린 표정이 되고, 자꾸만 옆에 수영장레일을 붙잡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에휴, 그렇게 물을 좋아하더니. 아직 수영은 무리인가. 더 크고 와야 하나?’
수업이 끝나고 발그레한 얼굴로 달려 나오는 아이.
“어때? 조금만 더 하면 자유영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다.
아쉽구나 아쉬워! 물을 좋아해서 금방 수영을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직 너무 이른가보다. 아이가 무언가에 적응을 하고 배워 나간다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구나 생각했다. 수영장을 나올 때 쯤에는 나의 달달한 흑당라떼는 얼음이 다 녹아 맹맹해 졌고, 그에 따라 내 마음도 맹해진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