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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정 Sep 08. 2024

8. 둘째

       --- 바닐라 라떼

  어느 해, 첫째가 어린이집에 적응해서 잘 다니고 이제 막 아가티를 벗어난다고 생각이 들 무렵, 둘째가 태어났다. 남자애 치고는 얌전한 스타일인 첫째와는 다르게 둘째는 완전 꾸러기였다. 엄마가 이거하자 그러면 저거하고, 자기주장이 뚜렷했다. 빨래를 개어 놓으면 첫째는 조심조심 피해 가는데, 둘째는 개어 놓은 빨래를 집어 사정없이 흔들어 버린다. ‘아이스라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싶게 만들지만, 귀여운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없이 달콤하고 부드러운 ‘바닐라 라떼’가 떠오른다. 


  첫째가 어느 정도 크고, 어린이집에도 적응하고 난 후, 우리 부부는 둘째를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첫째도 임신하기까지 1년이 걸렸는데 역시나 둘째도 바로 생기지 않았다. 이제 둘째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후 둘째를 임신하기까지 한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어느 날, 감사하게도 둘째가 찾아왔고 첫째 때에도 그랬듯 다시 입덧이 시작되었다. 김치냄새를 맡으면 헛구역질이 나서 냉장고에서 김치를 치우고, 음식을 먹기도 만들기도 어려워졌다. 첫째 때도 12주까지는 몇 주 동안 계속 잔치 국수만 먹었었는데, 둘째 때에는 그 때 만큼은 아니었지만, 첫째가 집에 있어서 마음껏 쉬지를 못하니 몸이 많이 힘들었다. 어떤 날은 너무 속이 안 좋아 정신을 차릴 수 없어 누워 있어야 할 거 같아서 첫째를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일주일쯤 요양을 하고 첫째를 부모님께서 돌봐 주셨다.     


  둘째는 첫째 때 보다 세세한 관심을 주지 못한 것이 많았다. 첫째 때에는 나 혼자 집에 있으면서 온 관심이 아기한테만 쏠려 있으니 태교를 아주 열심히 했었다. 태교를 잘 하면 총명한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말에 매일 열심히 소리내어 책을 읽고,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바느질을 했다. 태어날 아기가 어떤 모습일지 혼자 상상을 하면서 바느질로 배냇저고리, 속싸개와 손싸개, 발싸개 까지 종류별로 다 만들었다. 다 만들고도 시간이 남아서 이번엔 뜨개질로 아기 털모자도 만들었다. 평소에도 이것 저것 만드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었는데 시간이 주어지고 나니까 아주 하루 일과가 되었다. 그런데, 그런 기억으로 둘째도 해주려고 똑같이 바느질을 시도했지만, 첫째가 어린이집에 간 틈에 해야 했고, 집안일도 더 많아졌기 때문에, 몸이 천근만근이라서 등등의 이유로 배냇저고리 하나 완성하기도 무척 힘들었다. 첫째 때는 두 달이면 거뜬하게 완성했던 것을 대체 몇 개월째 지지부진한 건지, 배냇저고리 하나를 여섯 달쯤에 걸쳐 겨우 겨우 하나 완성하고, 태교로 해 준 것이라고는 첫째에게 읽어 준 그림책이 전부였다. 둘째도 같이 들었을 테니까 책은 많이 읽어 준 셈이다.

  둘째는 예정일이 11월 달이었지만, 첫째가 워낙 빨리 나와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뻔 했었기 때문에 한 달 전부터 병원에 빨리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준비를 해 두었다. 난 준비성이 철저한 편이라 출산가방 같은 건 미리미리 싸 두어야 안심이 되었다. 남편의 생일이 10월달인지라 남편 생일이 다가올 때 쯤, 

 “얘가 만약 아빠 생일날 나오면 아빠랑 생일이 똑같겠네?” 하고 농담으로 툭 말을 꺼냈다. 

 “정말, 그러면 좋을까? 나쁠까?”

 “아빠랑 생일이 같으면 좋지 않을까? 자기 생일만 따로 못 챙겨 안 좋을라나? 하지만, 같이 파티를 크게 할 수도 있잖아. 생일날 항상 함께 할 수도 있고!”

  그러던 중, 남편 생일 전날 밤에 잠을 자는데 새벽에 자꾸 배가 땡겨서 잠을 설쳤다. 배 뭉침이 있어서 아기가 커서 심하게 노나 싶었다. 배가 막 아픈 것은 아니어서 설마 출산은 아닐거라 생각했다. 아직 예정일 2주전쯤. 하지만, 뭔가 께름직한 느낌! 검사는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번 주에 원래 병원에 가는 주였는데 며칠 앞당겨서 가도 상관없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어머니께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십사 부탁을 하고, 남편과 함께 아침에 병원으로 향했다. 첫째에게 병원에 검사하러 다녀온다고 얘기하는데 엄마가 없다고 시무룩해 하던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병원에 도착하니 담당 선생님은 첫째 때와 마찬가지로 아직 출근 전이셨다! 같은 선생님이셨는데 말이다. 대신 다른 분이 배 뭉침 검사를 해주셨는데, 배가 규칙적으로 뭉치는 것 같다고 하셨다. ‘유도분만을 할까요?’ 하시길래, 아직 2주 남았고, 첫째가 워낙 작게 빨리 나온터라, 꼭 오늘 낳아야 하는 게 아니면 자연스럽게 기다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잠시 후, 담당 선생님께서 들어오시더니, 

 “오늘 나오겠는데? 자궁이 열렸어요! 오늘 낳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요?”

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면서

“오늘? 그럼 자기랑 같은 날 생일이야?”

 약간 어안이 벙벙 하면서도 기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나는 또 갑자기 출산 예정일을 2주 앞 둔 시점에서 병원에 간지 5시간만에 둘째를 출산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몸은 여리여리한데 순풍순풍 아이는 잘 낳는다고. 그건 내 복인데, 우리 엄마도 나와 내 동생을 빨리 낳았다고 한다. 집안 내력인가보다. 참 다행이다.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아직 첫째도 돌봐 줄 게 많은데, 거기에 한 명이 더 생기니 할 일이 배가 된 느낌이었다. 혹자는 아기를 한 번 낳기가 힘들지, 두 번째는 더 쉽게 생기기도 하고 한 번 키워 봤기 때문에 둘째는 키우기가 더 수월하다고...... 도대체 누가 그랬던가?! 내가 둘째를 낳아 보고 내린 결론은, ‘얘가 만약 첫째였다면 난 둘째를 낳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다. 첫째는 성격이 조용한 편이어서 말도 잘 듣고 그랬는데, 둘째는 처음엔 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자기주장이 세졌다. 그리고 ‘한 배에서 낳았어도 아롱이 다롱이’ 라고 아기들은 다 성격도 제각각이라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고, 새롭게 다 맞춰야만 했다.      

  모두가 잠든 이른 아침, 어제 너무 놀아서 피곤해하며 저녁 7시부터 뻗어 일찍 잠들었던 둘째가 새벽 6시에 눈을 번쩍 떴다. 

  “아빠 일어나! 벌써 6시 반이잖아~!” 

  어제 늦게까지 일하다 들어와 새벽 1시에 잠이 들었던 아빠는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게 무지 억울하지만, 어쩌겠는가? 오늘은 일요일이다.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는. 그래도 ‘까르르 깔깔깔, 하하하’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입꼬리가 절로 올라가고 행복해진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는 친절하게 부드럽게 잘 해주다가도, 아이가 부모 말을 듣지 않거나 말썽을 부릴 때는 화를 내기도 한다.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내 생각대로 잘 되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자신의 안전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므로 되도록 화를 참고 부드럽게 말하며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 좋다. 물론, 매일 요가와 명상을 하며 도를 닦아야 그게 된다는 건 알아 두시길. 아이가 어릴 때는 그저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 고맙다 말하고, 아이의 부름에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며 칭찬하고 놀아주며 함께 책을 읽는 것, 그것이 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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