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없는 부부 사이는 정말 구멍이 생길까

독서모임에서도 상처받을 수 있다.

by 고든밍지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 독서 모임을 시작하며 들었던 말이다. 혼자만 읽던 책을 좀 더 촘촘히 읽고 싶어 논제를 만드는 독서 모임 강의를 신청했다. 책을 분석하듯 읽어내는 일은 어려웠지만, 따라오는 성취감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어느덧 매주 만나는 것이 세 달이 넘어가고, 서로가 익숙해질 무렵이었다. 그날의 책은 편혜영 작가의 <홀>로 대화를 나눴다. 특히 결말 부분이 오랜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모임에 가기 전부터 어떤 생각들을 나누게 될지 들뜨기도 했다. 물론 상처를 받게 될 거라곤 예상치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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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오기(주인공) 부부는 시험관 시술을 몇 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시험관 시술을 중단하고, 아이 없이 살아간다. 뜻밖의 사고로 아내는 죽고, 오기는 간신히 목숨은 부지하지만, 몸을 움직이기 힘든 상태가 되어 아내의 엄마인 장모가 간병하게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모임 막바지에 오기는 왜 구덩이에 빠졌을까. 소설의 제목이 왜 <홀>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중이었다. 오기와 부인의 사이가 더는 돌이킬 수 없고, 구멍보다 더 깊은 홀처럼 멀어지게 된 것을 뜻하는 것 같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그리고, 한 참가자가 둘 사이에 '아이가 없어서 더 멀어졌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자리에 있던 나를 제외한 참가자 대다수가 이 말에 동의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모두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었다. 그 독서 모임은 사적인 대화나 개인적 교류가 없는 '책'만으로 이어진 모임이었기에 물론 시험관 시술을 하는 나의 상황을 알고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어 꽤 오래 입을 떼지 못했다. 부부가 아이 때문에 산다는 말은 너무나 익숙했다. 하다못해 친정엄마, 직장 동료, 친구에게서까지 들어본 말이었다. 아이가 아직 없는 우리 부부, 시험관 시술을 2년간 하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없는 상황이었다. 나에게 이 말은 유독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여러 사람들이 동의하고, 느낀 감정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말이지만, 악의 없이 무심코 던진 그 한마디는 내 상황과 결부되어 지독한 상상을 만들어 냈다. 끝내 아이가 생기지 않게 되면 우리 부부의 사이는 어떻게 될까. 사소한 말다툼이 산불처럼 번져 큰 싸움이 되고, 둘 사이를 이어주는 아이라는 매개체가 없으니 훗날 더 미련 없이 서로를 떠날 수 있을까.


여전히 시험관 시도를 하고 있지만, 기대보다는 체념의 단계에 이르고 있다. 요새 들어 부쩍 '아이가 안 생기면 세계 여행을 떠나자.' 등의 아이가 없는 결말에 대해 자주 얘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가 없더라도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딩크 부부들도 있다.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지만, 부정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악의 없이 던진 누군가의 말이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나도 당연하게 생각한 말을 익숙하게 내뱉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진 않았을까 하는 반성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누군가 아이 키우는 게 더 어렵다며 신세를 한탄할 때, 진정한 공감과 위로를 보내줄 수 없는 사람인데 별 것 아닌 말에 불편한 나는 프로불편러일까.


귀 닫고, 입 닫고, 무인도에 혼자 사는 것처럼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이다. 상처를 받아도 그저 덤덤히 나아갈 수밖에. 마음 어딘가 생긴 작은 틈으로 바람이 지나는 듯한 이 기분은 제법 선선해진 날씨 탓이려나. 그도 아니면 작은 균열의 시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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