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김장데뷔 #성공적
친정은 김장을 한다. 절임배추와 무를 사서 쓰는 것도 아니고, 배추와 무, 파 등 직접 농사지어 수확한 재료를 사용한다. 김치에 빠질 수 없는 고춧가루도 여름 내 땡볕에서 힘들게 따고, 말린 후 방앗간에서 빻아낸 것을 넣는다. 요새 집집마다 다 있는 김치냉장고에도 물론 보관하지만 마당을 깊숙이 파서 넣어놓은 항아리에 김치를 묻는다. 엄빠에게 왜 이렇게까지 김치에 진심이냐고 매년 묻지만, 대답은 한결같다.
"우리는 옛날 사람이라서 그래~"
초고령화 시대에 아직 60세도 되지 않은 젊은(?) 축에 속하는 부모님의 김치를 대하는 태도는 김치 명인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김장을 매년 도왔다. 아빠가 밭에서 무를 뽑아오면 어린아이가 목욕을 해도 될 것 같은 큰 통에 무채를 가득 갈았다.
마늘을 갈고, 배추와 무를 씻고, 무채를 썰고, 배추를 절이는 등 소위 말하는 전날에 하는 밑작업이 더 손이 많이 간다. 부모님은 밤잠을 설쳐가며, 꽁꽁 언 손으로 배추를 절이고, 뒤집기를 반복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김장 당일은 속 넣기를 제외하고는 크게 할 게 없다.(물론 전 날에 비해서다.) 김장의 모든 과정을 지켜봤기에 그 수고스러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느덧 결혼 3년 차, 이상하게 결혼을 하고 나서 친정에서 받아먹는 김치는 더 많아졌는데 김장을 하러 가지 않았었다. 시댁에서 김치를 가져오지 않아 시댁 김장도 가지 않았지만, 왠지 친정 김장만 가기가 눈치 보였던 것 같다. 남편과 같이 가기도, 혼자 가기도 애매했고, 11월은 직장에서 소위 말하는 피크 시즌이라 정신없이 일하기 바빴었다. 올해는 엄마에게 꼭 가겠노라 선언했지만, 엄마는 힘든데 뭐 하러 오냐며 한사코 만류했다.
드디어 김장 D-Day, 속도 넣고 옆에서 심부름이나 도와줄 생각으로 따뜻하지만 막 입어도 되는 전투복(?)으로 챙겨 입었다. 요새 퇴근도 늦고, 피곤해하는 남편이 안쓰러워 깨지 않게 조심히 나왔는데 남편이 귀신같이 일어나 따라간다며 서둘러 고양이 세수를 시작했다.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말은 보쌈 먹으러 가는 것이라고 했지만 표정은 왠지 비장했다.
엄빠는 막상 같이 온 우리를 보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일손에 도움이 되는 인력이라고 보기보다는 딸과 사위를 보니 마냥 기쁜 듯했다. 남편은 김장이 처음이라고 했다. 품앗이 나온 옆집 아줌마를 따라 하며 속을 넣는 손끝이 야무졌다. 모두가 놀랐다. 생각보다 빠르고, 꼼꼼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금세 김치통을 채워나갔다.
이에 반해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김장 N년차, 김장의 모든 과정을 마스터했지만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영 속도가 안 났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놀리듯 말했다.
"자~ 김장은 말이야. 이렇게 하는 거란다. 너는 별 도움이 안 될 것 같으니 저기 옆에서 쉬고 있을래?"
나는 어이가 없었다. 김장 경력자라며 큰소리쳤지만, 왠지 진듯한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남편의 활약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항아리로 배추를 나르는 일, 김치통을 옮기는 일 등 힘을 써야 하는 일도 잘했지만, 겉절이를 위해 배추를 써는 칼질이나 겉절이를 버무리는 일마저 잘했다. 다들 처음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었다. 졸지에 나는 김치통 주변을 닦고, 소금을 뿌리고, 양념 속을 가져다주는 등 다소 소소한(?) 일을 하는 심부름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장을 무사히 끝내고, 보쌈을 먹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진짜 김치공장 사장님 같았어! 당장 그쪽에서 일해도 될 것 같았다니까! 홍진경(김치사업을 하는 연예인)이 왔으면 놀랄 정도일걸~"
남편은 재밌었다며, 뿌듯한 듯 웃었다.
여러 번 해왔기에 당연히 내가 더 잘할 거라 생각했는데 처음 해봤다는 남편의 활약에 놀랐다. 역시 모든 일에는 재능이 있는 자를 이기지 못하는 것일까. 뜻밖의 발견한 남편의 김장 재능(?) 덕에 올해 김치는 유난히 더 맛있을 것 같다. 사실 남편의 재능은 김장뿐이 아닐지도 모른다. 10년을 만났고, 3년을 살았지만 아직도 몰랐던 모습이 보이는 양파 같은 남편의 매력(?)이 부디 끊이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