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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유 Aug 08. 2024

댄디한 똥쟁이 내 친구

하늘색 남방과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은 너

어떠한 기억은 마치 사진처럼, 혹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미지화되어 저장되곤 한다. 나의 기억 속 앨범에 스크랩되어있는 몇 장의 사진이 있는데, 제법 강렬하게 남아있는 한 순간이 있다.


초등학교(국민학교) 4학년 때였다.


한창 말썽부리고, 개구진 아이들이 잔뜩 모여있던 우리 반에서, 유독 얌전하고 어른스러웠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재화'. (이 친구는 내가 아직 본인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사실이 그닥 유쾌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수학 시험을 치던 도중, 어디선가 풍겨오는 찡한 냄새. 아이들은 하나 둘 코를 움켜지기 시작했고,


"야 누가 빵구 꼈어?!"
"쌤 빵구 냄새 나요~!!!"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시간이 조금씩 지날수록 확실해진 것은, 지금 이 냄새가 바로 방구 냄새가 아니라 '똥냄새'라는 것이었다.


당황한 선생님은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로 - 혹시 누가 실수했냐고 물어보셨고,(옳은 방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선생님이 어떻게 해야했을까?) 한참이 지난 다음, 내 앞에 앉아있던 재화가,


"제가요......."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항상 입던 하늘색 남방에 베이지색 면바지. 그야말로 모범생의 정석같은 재화의 옷이 의자에서 점점 멀어지던 순간, 내 눈에 들어 온 것은 베이지색이 아닌 찐한 황토색으로 변해버린 재화의 바지였다.


순간 싸하게 얼어붙은 학급의 분위기. 감히 그 친구를 놀릴 수조차 없는 아주 엄중한 분위기였다(급똥이라는 게 늘 그렇듯 남일 같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 사이에서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던 친구....


그 기억이 너무나 강렬한 나머지 이후에 처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조퇴를 하고 집으로 갔던 것 같은데 그 모습 그대로 집에 가진 않았을 테고... 이후에 재화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괜히 이래저래 상상만 해본다.


이후 한동안 '똥재화'라고 불리던 우리 반의 댄디가이 재화.


"그래그래~ 내가 똥 쌌어~"


하고 아이들의 놀림에, 차분히 달래듯 대답하던 착한 재화.


아이를 키우는 마흔이 된 지금도, 그 때 그 친구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전날 저녁 아니면 아침에 꼭 응가하고 등교하라고 하는 편.) 달라진 게 있다면 국민학교 시절 아주 웃긴 추억이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지금은 돌이킬수록 안쓰러운 기억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댄디한 똥쟁이가 되어버린 그 친구도, 몹시도 당황하셨던 선생님도, 그 꼴(!)로 집에 오는 아들을 맞이하셨을 친구의 어머니의 마음도 모두 이해가 되는 나이가 되었다.



하늘색 남방과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언제나 친구들에게 친절했던 친구.


이제 마흔이 된 그 친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그 친구에게는 그 날이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까? 


나에게도 똥쟁이보다는 참 댄디하고 착했던 친구라는 기억으로 더 남아있으니, 재화에게도 너무 괴로운 기억이기보다는 살아가며 한번씩 웃으며 안줏거리 삼을 수 있는 추억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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