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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유 Aug 22. 2024

하, 개학이다.

얘들아, 안녕!

학교 생활을 하면서 가장 출근하기 싫은 날은 바로 '개학일'이다.(아마 모든 교사들이 공감할 것이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의 2학기 개학은 그나마 1학기 개학일보다는 부담적인 측면에서 좀 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학일이 다가오는 것은 언제나 두렵다.


태국 여행을 마무리하고 몇 번의 출장을 다녀오고 나니 어느 새 개학이 일주일 남았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한 것이, 평소에 주어진 일주일의 휴가였다면 그렇게도 꿀맛 같았을 것인데 방학이 일주일 남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D-7, D-6, D-5.....

2학기 수업 준비를 하면서 점점 남은 날짜가 줄어들수록 숨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쯤되니 스스로가 한심해진다.

아니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막상 가면 또 즐겁게 생활할 거잖아?


괴로움에 몸부림치다가, 또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었다가를 반복하다보니 어느새 '그날'이 다가왔다.

막상 개학일이 되니 그간의 시간은 어디로 갔는지 마치 어제도 출근했던 것같은 익숙함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얘들아 안녕!


아이들이 성대모사를 하며 따라하기도 하는 나의 시그니처. 어질어질 아픈 날도, 기분이 바닥을 치는 날도 교실에 들어갈 때면 변함없는 높은 톤으로 하는 첫 인사다.


방학 때 뭘 했는지 (나처럼) 까맣게 타버린 아이, 맛있는 걸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볼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아이, 머리를 싹둑 자른 아이, 그새 조금 자란 아이...


하이톤으로 지르는 내 인사와 함께 조금씩 달라진 모습을 한 익숙한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른다.

 쌤! 개학은 진짜 싫었는데 쌤이 맨날 하시는 얘들아 안녕~이 그리웠어요!!


틈틈이 단톡을 이용해 안부차 연락은 했었지만 (솔직히) 크게 보고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직전의 일주일은 극심한 개학 공포증에 시달렸었는데 아이들의 그 한마디에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저연차 교사 시절, 쓰레기같은 교감(의외로 굉장히 많다)에게 지금 생각해도 말도 안되는 이유로 깨진 직후, 눈물을 닦자마자 수업에 들어가야했던 적이 있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수업을 마치고 나와보니 도착해 있는 동료쌤으로부터의 메시지.

좀 괜찮아? 수업 들어가는 걸 우연히 봤어~ 교실 앞에 멈춰 서서 크게 한숨을 푹 쉬고 목을 가다듬더니 웃으면서 얘들아 안녕! 하고 외치더라 진짜 대단하고 프로다웠어!


이날 정말 기분이 바닥을 치는 날이었는데 나도 의식하지 못했던 행동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면서 -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부쩍 올라가게 되어 오히려, 내 교직 생활의 기념비적인 날이 되었다.


그날 이후 더욱 의식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부정적인)감정을 교실에서 절대로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애쓰며 살아왔고, 시간이 흘러 어느새 그 인사는 나를 대표하는 시그니처로 자리잡았다.

개학일, 첫 수업에서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얘들아 안녕!이 듣고 싶었어요!'라는 말을 들으니 도대체 나는, 왜, 무엇 때문에, 개학을 그토록 두려워했었나 - 하는 실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매일 매 시간 즐거울 수만은 없는 학교 생활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학교를,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지.


이슬아의 서평집 '우리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에 '전태일 평전'을 읽고 쓴 서평이 있다.


전태일은 유서에서 남들을 이렇게 호명한다. '나를 모르는 나'라고. 또한 자신을 이렇게 호명한다.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라고. 한영 씨는 내게 당부했다. "누구를 만날 때 적당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것처럼 남을 만나야 돼. 최선을 다해야 해."


이 부분을 읽으며 노동자를 자신으로 생각했던 전태일을 떠올림과 동시에 - 그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겠지만 - 나의 삶을 떠올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얘기하고 싶어졌다. 힘들고, 지치고, 때로는 정말 아침에 눈을 뜨기 싫을 정도로 괴로워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지만 어찌되었든 매일, 매년 만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 나는 잘하고 있다고. 앞으로도 쭉 잘 부탁한다고.



개학한지 4일 째. 방학 동안의 게으른 삶은 어느 새 기억 저 편으로 넘어가버렸다. 아직 방학의 시간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잠을 깨우며 시작하는 수업이지만 그래도 부스스 일어나 미안한 표정으로 책을 펴고, 또 언제 졸았냐는 듯 웃으며 수업을 듣는 아이들과 함께 오늘의 시간도 즐겁게 보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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