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유 Aug 29. 2024

우리 학교에 안 오시면 안될까요?

1 : 0.8 황금비율의 비밀

이맘 때 쯤 학교에는 서늘한 기운이 돈다. 최고 온도가 여전히 30도를 육박하는 날들인데도 말이다.


소위 '관리자'라고 불리는 학교의 교장, 교감은 한 해에 두 번 인사 발령이 난다. 일반적인 교사들의 이동이 있는 2월 달과, 전문직과 관리직의 이동이 있는 8월. 그래서 새로운 관리자의 임기가 시작되는 3월 2일과 9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는 학교가 많다.


교장, 교감을 '관리자'로 일컫는 것은 말 그대로 학생과 교사가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학교 일의 전반적인 아웃라인을 파악하고 리더십을 발휘하여 학교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라는 이유일 텐데....

아쉽게도 나는 10년이 넘게 교직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관리자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내가 만난 관리자 대부분이 자신의 머리 위에 놓인 감투에 취해 알량한 권위 의식을 내세우기를 일삼았다.


내가 신규 때 발령 받았던 학교의 여자 교감은 이러했다. 당시 나는 사랑니로 인해 잇몸이 붓고 열도 펄펄 나는 지경이라 당장 발치도 하지 못하고 항생제를 먹고 부기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때문에 금요일 일과 후에 출발해서 토요일까지 이어지는 교직원 단합대회에 도저히 참석을 못하겠다고 말씀 드렸더니 교무실 한 중간에서 그야말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요지는 '어디 건방지게 2년 차가 감히 열 좀 난다고 단합대회를 빠지냐'였다.

민망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울며 겨자먹기로 경북 예천까지 따라갔다가 결국 밤에 고열이 나니 그제야 '알아서' 집으로 가라고 윤허하셨다.


그 다음 학교의 교장은 고등학교 때 나를 가르쳤던 사람이었다. 결혼한지 얼마 안되어 남편의 외조부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수업을 몰아서 하고 오후에 출발하여 차로 5시간 거리를 가야하는 상황이라 교장을 찾아가서 사정을 말하고 나오는데, 그는 마치 내가 유난을 떤다는 듯 내 뒤통수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근데 외할아버지면 뭐 남 아닌가?"


고등학교 시절, 교무실에서 학생이 있든 없든 다른 선생님들에게 언성을 높여서 소리지르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아, 그래 저정도밖에 안되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말이 굉장한 상처가 되어 오래도록 남았다.

몇 년이 지난 후 내가 근무하는 학교로 그 교장의 부고장이 날아들었는데, 나 역시 그리 대인배는 아닌 지라 '당신네 외손주는 남의 장례식이라 안 가도 되겠군요'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추모하는 마음 역시 눈꼽만큼도 들지 않았다.


이외에도, 교실에 들어가서 해당 반 담임 선생님의 험담을 하던 여자 교감, 와이프가 몸이 안좋고 아이들을 돌봐야 해서 수업이 없는 오전 시간에 육아시간을 쓰겠다고 하는 남선생님에게 '와이프는 뭐하러 돌보지도 못할 애를 둘 씩이나 낳았냐'고 개소리를 시전하던 남자 교장, 수학여행에 따라와서는 아이들 챙기느라 바쁜 담임 선생님들께 '왜 나를 챙기지 않느냐 내 사진은 찍어주지 않느냐'고 화를 낸 교감.....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기가 막히는 인간 군상들이 '관리자'라는 미명 아래 열심히 하는 선생님들의 사기를 꺾는다.


이번 인사 시즌이 지나고 남편과 나의 희비가 교차했다.


정기적인 이동이 잦은 학교에서는 '사람보다 소문이 먼저 온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보다 먼저 도착한 소문에 의하면 남편 학교에 새로 부임하는 교감은 자기 손으로 커피 한잔 타 먹지 않는 데다가 '드립 커피와 물의 비율을 1 : 0.8로 타오라'는 미친 요구를 하는 사람이란다. (수많은 사례 중 하나만 예로 들었을 뿐이다.)


다행(?)히 우리 학교는 교사의 A부터 Z까지 모든 것을 간섭하던 교장이 가고, 인격적이기로 소문난 교장선생님이 오신다고 한다. 자신의 외모와 기타 실력에 극도로 심취해있는 교감이 아직 남아있지만 말이다.


일련의 사건들을 십 수년간 겪어오며 느낀 것은 단 하나, '과연 누구를 위한 관리자인가?'


지난 학교에서 퇴직하시기 전 나와 함께 2년을 일했던 교감 선생님은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을 먼저 캐치해서 해결을 위해 노력하셨고, 학생을 위한 일이 교사의 어려움이 되지 않도록, 교사를 위한 일이 학생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많은 것을 신경쓰고 숙고하는 분이셨다. 나의 업무 특성 상 교감 선생님과 많은 일을 가까이서 함께 한, 그리고 ‘국어 교사'였기 때문에 퇴임식 때 퇴임 축사를 쓰고 읽을 기회가 왔다. 마이크를 잡고 축사를 하는데, 과연 내가 언제 이런 분과 또 함께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흘렀고, 의도치 않았지만 덕분에 매우 감동적인 퇴임식이 되었다. (교감 선생님께서 가장 만족하셨다)


결론적으로 내가 만난 관리자 중에 학생과 교사를 생각하고, 자신만의 리더십을 갖춘 진정한 관리자는 안타깝게도 이 한 분뿐이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나의 소문'이 다른 사람에게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준다는 사실을 본인들은 알고 있을까. 비록 이 집단이 아니더라도 요즘은 기본적인 인격을 갖춘 윗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아서 안타깝고 답답하다. 물론 위치가 아닌 사람이 문제이겠지만.


어느 집단이든 사람이,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대하고, 사람다운 인격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리고 드립커피와 물의 비율을 1:08로 맞추는 디테일한 취향은 제발 혼자만 알고 즐기기를 바랄 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