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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유 Aug 02. 2024

여행의 이유

끝이 있는 고통은 견딜 만하...ㄴ가?

8박 10일 간의 태국 여행을 마무리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제법 즐거운 일들이 많았다. 꼭 태국이어서라기보다는, 그저 생활 공간이 아닌 곳에서 오로지 행복만을 위해 소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분위기 그대로를 느낀다는 미명(!)하에(어쩌면 게으름 탓에) 정말 그대로의 일상을 즐기다 오곤 하는데 - 작년에 이은 두 번째 방문이라, 올해는 작년보다 조금 더 뭔가를 해보자는 마음으로 평소와 다르게 이런저런 활동들을 해보았는데 의외로 쏠쏠한 재미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태국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는 원데이 쿠킹 클래스. 아침 일찍부터 선생님을 따라 장을 보는 것부터가 시작인 프로그램인데 아이도 제법 컸고, 직접 태국의 음식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서 큰 고민 없이 신청했던 클래스였다.

아침부터 선생님을 따라 로컬 시장을 따라다니며 태국 식재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사주시는 시장 음식들을 먹어보기도 했다. 또 건물에 들어와 직접 장을 봐온 재료들을 장만하고, 맛을 보며 4가지에 이르는 음식들을 만들고 먹는 시간이 정말 재미있었다. 게다가 일본,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짧은 영어와 일본어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 여행을 좋아하고 다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모였다는 그 공통점 하나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절로 형성되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보면 타국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제법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고리가 바로 서로가 모두 여행자 신분일 때인데, 우리가 왜 이 나라에, 혹은 이 장소에 오고 싶었는지를 얘기하다보면 어느 새 깊은 연대감이 생겨있고 금세 정이 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이번의 쿠킹 클래스도 그러했다.

아침에 막 눈을 떴을 땐 클래스를 신청한 것을 살짝 후회했었는데 후회한 찰나가 무색할 만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두 번째는 죽어도 안할 것 같았던 패러세일링. 나이가 들어갈수록 액티비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줄어드는 것 같다. 참 나도 한때는(이런 말을 하게 되는 때가 오다니)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30m 번지점프도 하고, 스카이다이빙이 인생의 버킷리스트일 때가 있었는데, 요즘엔 경주월드의 드라켄 타는 것도 손발이 저리니 말이다.


나 혼자였으면 절대로 안할 액티비티였지만, 이번에도 역시나 - 어느새 부쩍 커버린 아이가 패러세일링 영상을 보고는 꼭!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는 바람에(그것도 가족 모두 같이) 울며 겨자먹기로 손을 떨며 예약을 했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10분 쯤 패러세일링장으로 들어가서 보호장치를 착용한 다음, 아들 - 나 - 남편의 순서로 마치 공장처럼 척!척!척! 하늘 높이 떠올랐다. 특유의 호들갑을 떨어대며 한참을 높이 올라갔는데, 그제서야 파타야 바다의 풍경과 수평선, 그리고 스카이라인이 한눈에 들어오면서 '우와 이거 진짜 재밌다!'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5분 남짓 될까하는 시간, 내가 평생 모를 뻔했던 순간의 기분. 그래 여행은 이런 맛이지.



하지만 진정 이번 여행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순간은 따로 있었으니....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날부터 몸이 뭔가 뻐근하니 좋지 않은 기미가 보였다.병원에 가기도 애매하고 내일이면 귀국이라는 생각에 가져온 비상약을 먹고 버텨보았다. 하지만 귀국날이 되니 몸은 더욱 안 좋아졌고...... 발열에 복통, 끝없는 화장실(ㅠㅠ), 온 몸을 두드려 맞은 듯한 근육통으로 서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 되었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정신승리(!)한 뒤 진통제와 해열제를 먹고 비행기에 올랐는데....... 내내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아파서, 정말이지 내 인생 최악의 비행이 되고 말았다.

아 아름다운 우리집

초인의 힘으로 어찌저찌 5시간을 버티고 공항에 내렸을 때, 공항 리무진을 타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가서 의사 선생님을 보았을 때, 링거를 주렁주렁 맞고 약을 타서 우리집 침대에 누웠을 때, 그때의 안도감.


이번에 유독 극적인 상황을 겪긴 했지만 매 여행마다 느끼는 것은, 여행의 끝은 귀국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가 아니라 집에 돌아와서 내 방 침대에 눕는 순간까지라는 것이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내 생활 공간이 이렇게나 소중했다니.

여행도 인생도 끝이 있어서 매 순간 아름답다. 도착해서 병원에 가면 이 고통도 끝이 날거야 라는 믿음이 없었으면 나는 비행기에서 5시간을 오롯이 버틸 수 없었을 거다.(ㅠㅠ)


먹는 족족 쏟아내고 식은땀을 흘리며 기절하듯 처져있던 나를 살게 해주신 의사 선생님, 하늘 위 과속으로 15분이나 일찍 랜딩해준 기장님, 수많은 의약품을 만들어내신 훌륭한 분들께 하루가 늦은 이번 글을 바친다.



동남아에선 자나깨나 음식을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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