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보셨어요?”
“봤지.”
“욕하며 지나가는 할아버지는 가끔 봤지만, 뻑큐를 날리는 할머니는 처음이에요.”
“더한 일도 많아. 멱살 안 잡힌 것만 해도 다행이지.”
“멱살까지 잡히고, 선배님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조금 전까지 선전전 하다가 출근한다고 가신 여성분 있지?”
“택배노조 조직국장님이요?”
“응. 그분이 나보다 두 살 많거든. 내가 20대 때 만났지. 그때부터 지금까지 결혼도 안 하고 30년 넘게 활동하고 계셔.”
후배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30년이라니. 한두 해도 아니고.
“왜 그렇게 오랫동안 활동하시는 걸까요?”
“직접 물어봐.”
“그럼, 선배님은 왜 30년 넘게 활동하셨어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충 어깨를 으쓱였다.
“처음에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지금은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보이기 위해서랄까?”
“그럼, 선배님은 우리가 하는 활동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하세요?”
“세상은 당연히 바뀌지. 단지 예전엔 금방 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아, 시간이 많이 필요하구나’라고 느낄 뿐이야. 내가 처음 진보 정당할 때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급식을 외쳤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실현됐잖아? 더디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어.”
후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님 덕분에 제가 혜택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오, 후배한테 감사 인사도 받고, 30년 활동이 헛되지 않았구나. 기분 좋네.”
나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후배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30년을 한결같이 활동하신 이유는 신념 때문이죠?”
“아니, 변절하기 귀찮아서.”
“아…”
순간 후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그래도 그 긴 시간을 끊임없이 하셨잖아요.”
나는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운동을 대충 하거든. 힘들지 않을 만큼만. 지치지 않을 만큼만. 그래서 너를 보면 불안해. 지쳐서 나가떨어질까 봐.”
“저는 괜찮아요. 선배님이 30년을 넘게 하셨는데, 따라잡으려면 저는 곱절로 뛰어야죠.”
“그럴 필요 없다니까. 지치지 않을 만큼만 해. 오늘도 봤잖아. 이념 양극화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 차라리 미국처럼 실용을 선택하는 투표라도 하면 이해하겠어. 그런데 대통령부터 실체도 없는 부정선거, 빨갱이 타령으로 국민을 나누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후배는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저녁에도 선전전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럴수록 우리가 더 목소리를 높여야죠. 선배님, 오늘 저녁 선전전도 하시죠?”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 나는 운동을 대충 한다고. 힘들지 않을 만큼만. 지치지 않을 만큼만 한다고. 아쉽게도 오늘 저녁은 선약이 있다.”
후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없잖아요. 제가 다 알아요.”
“… 그래, 없다. 없어. 솔직히 추워서 못 하겠다. 지금도 바지를 두 개나 입었는데도 추워 죽겠어.”
후배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태연한 척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웃음이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선배님은 진지하지 않아서 좋아요.”
“사는 게 귀찮아서 그렇다니까.”
“퇴근 선전전 빠지시면, 토요일 광화문 집회는 가실 거죠?”
“날씨 보고 결정할게.”
“그러는 게 어디 있어요. 무조건 가시는 거예요.”
“그래, 가자. 광화문 근처에 유명한 해장국집이 있거든. 든든하게 배 채우고 신나게 외치며 걸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