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거리 횡단보도 앞, 작은 커피집을 하고 있다. 커피집 이름은 ‘특별하지 않은 커피집’였다. take out 커피집이다. 물론 매장 안으로 들어와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가게는 작지만 바 테이블로 나름 공간 활용을 했다. 문제는 바 테이블에 앉으면 주방에 앉아 있는 나와 수시로 눈을 맞춰야만 했다. 서로 민망한 순간들이었다. 나는 주방 의자를 거리 쪽으로 돌려놓고 거리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서로 민망한 순간들이 사라졌다. 가게 이름이 특별하지 않은 커피로 정한 이유는 우리집 커피가 정말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는 커피전문점이라는 용어도 쓰지 않았다. 우리 가게는 전문점이라고 할 만큼 원두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다. 나는 오직 하나, 커피의 심리적, 신체적 위안과 중독성에 방점을 찍었다. 지친 일상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여유, 위안감, 즐거움, 행복감은 퇴근 후 집에서 쉬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효과를 느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집 커피는 바쁜 일상에서 잠깐의 쉼을 줄 뿐이다. 굳이 향과 맛이 좋은 비싼 커피보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가격이 착한 커피를 편한 의자에 앉아 잠시라도 쉴 수 있는 곳. 잠시라도 쉬지 못하는 바쁜 일상에서 들고 다니며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커피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 바로 ‘특별하지 않은 커피’였다.
나의 일상도 가게 이름처럼 특별하지 않았다. 순간의 일상뿐만이 아니라 마흔 살이 넘은 지금까지 특별함 없이 살아왔다. 사람들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묻어가며 살아왔다. 나의 삶이 만족스럽지도 않지만, 특별히 불만도 없었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창밖을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고, 낙이었다. 사람들은 변함이 없었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발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런데 요즘 내가 출, 퇴근 시간에 횡단보도를 주시하는 이유가 생겼다. 얼마 전부터 출, 퇴근 시간에 나타나는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할아버지는 횡단보도 신호가 보행자 신호로 바뀌면 길을 건너지 않고 주위를 서성였다. 그러다 보행자 신호 초읽기가 시작되면 그때야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횡단보도 중간쯤에서 보행자 신호가 꺼졌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도로를 천천히 횡단했다. 바쁜 출, 퇴근 시간에 차들은 경적을 울리고, 가끔은 할아버지 옆으로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차들도 있었다. 건너편에서 학생이 달려와 할아버지를 모시고 도로를 건너는 일도 있었다. 이해는 한다. 가끔 노인분들 중 걸음이 늦어 횡단보도 시간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할아버지를 주목했던 이유는 첫째, 횡단보도의 초읽기가 시작될 때 건넌다는 점과 둘째, 힘들게 도로를 건너간 할아버지가 잠시 후 같은 방법으로 다시 건너온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퇴근 시간쯤에 다시 나타나 횡단보도를 같은 방법으로 건너갔다 돌아왔다. 차량 통행이 가장 많은 출근 시간에 한 번, 퇴근 시간에 한 번. 할아버지는 횡단보도를 아주 천천히 걸었지만, 횡단보도가 아닌 도로를 걸을 때의 발걸음은 건장한 청년의 발걸음이었다.
나는 횡단보도 앞에 선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살아생전, 할아버지처럼 행동했다.
“할머니, 횡단보도를 그렇게 건너면 위험해요. 다칠 수도 있고,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어요. 다시는 그렇게 무단 횡단하지 마세요.”
“나도 위험하다는 거 알지.”
“그럼 일부러 그렇게 건너신 것에요?”
“약국집 할머니 알지? 그 할머니가 여기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일억을 받았어. 내가 너희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이것밖에 없다.”
할머니는 보험금으로 일억을 받으면 싸우지 말고, 서로 똑같이 나눠 쓰라고 유언장까지 만들었다.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해줬다는 기쁨에 감사해하며 유언장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마 할아버지도 우리 할머니와 같은 생각일 것이다. 그래서 횡단보도를 아주 천천히 건넜을 것이다. 퇴근 시간 무렵 할아버지는 횡단보도 앞에 나타났다. 나는 가게에서 나가 할아버지 뒤에 섰다. 이내 보행자 신호가 들어왔다. 잠시 후 보행자 신호 초읽기가 시작되자 할아버지는 도로에 내려섰다. 나는 도로에 내려간 할아버지를 뒤에서 잡았다. 움칫 놀란 할아버지는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나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게로 들어갔다. 할아버지에게 달곰한 커피를 타드렸다.
“달곰한 커피예요. 마시면 기운도 나고, 기분도 좋아지실 것에요.”
“고맙네.”
“제가 며칠을 쭉 지켜봤어요. 왜 그러셨어요?”
“미안하네. 사는데 재미가 없어서 그랬네.”
“할아버지, 저도 사는데 재미가 없어요. 그래도 그냥 살아요.”
할아버지는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고 나를 바라봤다. 생기 없던 할아버지의 얼굴에 갑자기 생기가 돌았다.
“자네도 사는데 재미가 없어?”
“그럼요. 이런 말 드리기 뭐하지만, 저도 죽지 못해서 그냥 살고 있어요.”
“그럼, 자네도 나처럼 해봐. 재미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