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 십 리 길을 걸어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우리 동네가 얼마나 깊은 두메산골이었는지 우리 할머니는 6.25 전쟁이 일어난 것도, 끝난 것도 몰랐다고 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으며, 버스는 중학교 때 들어왔다. 하지만 이제, 모든 것이 다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집 앞까지 말끔하게 도로가 생겼지만, 이제는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명절에도 안 내려오는, 아니 더 이상 내려올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 점점 늘었다. 오직 나와 영철만이 누구도 훔쳐 가지 않을 고향을 열심히 지키고 있었다. 사실 우리도 고향을 지키고 싶어서 지킨 것은 아니었다. 딱히 갈 곳도, 할 일도 없었기에 지금까지 고향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만약 영철이가 없었다면 나 역시 고향을 떠났을 것이다. 인적 드문 이곳에서 유일하게 말 들어주고, 같이 일하며, 술잔을 나눌 수 있는 친구 영철이가 있어 정말 고맙다. 그런데 문제는 술이었다. 그렇다고 심각한 주사가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술에 취하면 옛날이야기를 들먹이며 나보다 자기가 더 잘생겼다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나이 오십이 넘은 노총각끼리 누가 더 잘생겼냐로 서로 싸운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나는 억울했다. 그 억울한 옛날이야기를 지금부터 하려고 한다. 지금은 폐교가 된 학교지만 그래도 동창회만큼은 학교 운동장에서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고향에 내려올 이유가 사라진 친구들이 하나, 둘 서울에서 동창회를 하자고 이야기했다. 사실 영철이와 나는 고향에서 하는 동창회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랜만의 고향에 온 친구들이기에 우리는 온갖 잔 수발을 들어야만 했다. 그러기에 서울에서 동창회를 하자는 말에 우리는 두 손을 들고 환영했다. 그래서 이번 여름 동창회는 처음으로 서울에서 하기로 했다. 나와 영철이는 오랜만에 가는 서울 나들이가 조금은 설렜다. 아니, 많이 설렜다. 동창회 전날, 목욕에 이발까지 마친 우리는 더 이상 까무잡잡한 촌놈이 아니었다. 경조사 때만 꺼내 입었던 양복을 드라이클리닝까지 해서 잘 차려입었다. 마지막으로 영철의 형 고급 승용차까지 빌려 우리는 서울로 출발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휴게소에 들어갔다. 우동 한 그릇과 말로만 듣던 방망이 소시지도 하나씩 먹었다. 그리고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로 들어갔다. 주유원에게 ‘가득’을 외치고, 이쑤시개로 이빨 사이에 끼인 소시지를 빼고 있을 때였다. 짧은 반바지에 비키니 브라를 입은 아가씨가 우리 차로 다가왔다.
“유리창 닦아드릴게요. 비가 와도 빗물이 신기하게 또르르 흘러내리는 발수제예요. 우천 시 교통사고를 막기 위한 자동차용품으로 미국ㆍ유럽 등지에서 점차 인기를 얻다 이제 막 한국으로 수입된 제품입니다. 서비스로 닦아드리니 부담 갖지 마시고요.”
아가씨는 괜찮다는 나의 말을 단숨에 무시하고 유리창을 닦았다. 그런데 문제는 아가씨의 가슴이었다. 가슴이 커도, 커도 정말 컸다. 작은 비키니 브라는 아가씨의 가슴을 반도 가리지 못했다. 노총각이었던 영철이와 나는 입에 물고 있던 이쑤시개가 떨어졌는지도 모르고 아가씨의 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유리창을 닦던 아가씨는 우리를 바라보며 상큼한 미소를 날렸다. 그리고 쉬지 않고 유리창에 가슴을 비볐다. 그때 나는 영철의 짧고 강한 앓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아니 나의 소리였는지도 모르겠다. 유리창을 다 닦은 아가씨는 워셔액을 뿌려보라고 했다. 유리창 위로 뿌려진 워셔액은 아가씨의 말대로 물방울이 되어 또르르 흘러내렸다.
“비 올 때 창밖이 안 보여서 매우 불안하셨죠? 이제는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효과가 정말 확실해요. 지금 홍보 차원으로 이만 원에 드리겠습니다.”
“저…. 처음에 괜찮다고 말씀드렸고, 그리고 서비스로 닦아주신다고 했잖아요.”
나의 말을 들은 아가씨는 급변했다. 상냥한 태도는 이내 사라지고 들고 있던 걸레를 차 보닛에 던지고 허리에 손을 올렸다. 이내 어이없다는 듯이 나와 영철을 바라봤다.
“다 봤잖아.”
“뭘 봤다는 건지…?”
“그래, 유리창 닦은 것은 서비스다 해도 가슴 본 것은 어쩔 거야?”
“아니,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라 보여서 봤는데요.”
“그래서 볼 거 다 보고 이제 와서 안 사겠다는 거야?”
“이 차, 제 차도 아니고, 빌린 차예요.”
“그럼, 차 주인에게 선물하면 되겠네.”
“이만 원이면 하루 일당인데….”
“아, 십팔. 자꾸 욕 나오게 할래? 촌놈들이 볼 것 다 보고 오리발이네.”
십팔 소리에 영철이가 주섬주섬 지갑을 열어 이만 원을 아가씨에게 드렸다. 아가씨는 발수제를 영철에게 주며 윙크했다.
“오빠가 이 아저씨보다 훨씬 잘생기고, 매너도 좋다. 오빠 고마워.”
영철이는 얼굴을 붉히며 발수제를 품에 안았다. 영철이는 그때 사기당한 줄도 모르고 이십 년도 지난 지금도 그 이야기를 술만 마시면 한다. 그 아가씨가 자기가 나보다 잘생겼고, 매너가 좋다고 말했다며 오늘도 얼굴을 붉혀가며 말하고 있다. 나는 술잔을 던지며 소리쳤다.
“몇 번을 말하니? 우리가 촌놈이라고 그 아가씨가 사기 친 거야. 내 말이 어려워? 이해가 안 돼?”
“그 아가씨가 분명히 말했다. 내가 너보다 잘생겼고, 매너가 좋다고 나는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기억해.”
“돌아버리겠네. 그 말은 그냥 하는 말이었어. 만약에 내가 돈을 냈으면 나에게 했을 거야.”
“아니, 결코 그런 일은 없어. 내가 너보다 잘생긴 것은 사실이고, 팩트니까.”
“내가 너랑 술을 다시 먹으면 개다. 개.”
아마 내일 저녁에도 영철이는 20년이 더 지난 옛날이야기를 하며 자기가 나보다 더 잘생겼다며 나를 놀리고, 그럼 나는 막걸리 잔을 던져가며 싸우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하며 모두가 떠난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