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끔 사는 곳을 묻는다. 사는 곳을 안다면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는 동네란 지리적 영역을 이르지만 부동산값으로 구분하면 경제적 수준과 차이를 읽는 단서가 된다. 내가 살고있는 동네는 흔한 아파트 하나 없는 다가구와 연립들로 이루어진 오래된 동네였다. 동네에 한번 발을 들이면 쉽게 나갈 수 없는 동네, 버스 정류장에 내리면 등산하듯이 올라가야만 하는 동네, 노인들만 사는 동네, 자랑스럽게도 그런 동네에 나는 토박이였다. 조금 더 우리 동네를 소개한다면 보기보다 사건 사고가 없는 조용하고, 살기 좋은 동네였다.살기좋은 생활환경을 만드는 데는 노인분들의 바다와 같은 넓은 오지랖이 한몫했다. 그들의 탁월한 능력 중 하나는 동네의 작은 움직임, 소음에도 눈과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다. 노인정 또는 골목 평상에 모여 앉아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있었다. 가정폭력, 아동학대, 방화범을 잡아내는 능력은 능력도 아니었다. 내가 어릴 적 학교를 빼먹고 오락실에 간 횟수, 처음 담배를 피우던 나이와 장소까지 그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진정 그들은 동네의 소방관이며 보안관이었다. 가끔은 노인들의 시선이 불편했지만 나는 정이 넘치는 우리 동네를 사랑했다.
여름 감기로 몇일을 고생했던 나는 어쩔수없이 동네의원을 찾았다. 동네 의원은 한의원과 같은 로비를 사용하고 있어 항상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수시로 고개 인사를 하며 앉을자리를 찾았다. 마침 텔레비전 앞자리가 비어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텔레비전 앞에 앉았다. 커다란 텔레비전에서는 천안함 피격사건에 관하여 대통령의 추모 연설이 있었다. 로비에 모여있던 사람들은 숙연한 표정으로 연설을 듣고 있었다. 대통령은 희생자 46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며 눈가에 눈물이 비쳤다. 마지막으로 ‘조국은 여러분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대통령은 추모 연설을 마쳤다. 로비에서 이를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을 모두 혀를 차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설을 끝까지 지켜본 나를 싫어하는 앞집 할아버지가 말했다.
“빨갱이 놈들은 다 죽여야 해.”
그 옆에 앉아 있던 할머니의 친구이신 옆집 할머니도 맞장구를 치며 한마디 했다.
“빨갱이 놈들이 우리 식구들을 다 죽이더니 이제 우리 손자들까지 죽여 버렸네.”
나는 빨갱이라는 단어를 어디든지 거리낌 없이 갖다 붙이는 우리 동네가 싫었다. 동네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어도 빨갱이의 짓이며, 주차를 잘못해도 빨갱이가 되었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그들은 전쟁을 겪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으며, 배고픔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생각이나, 행동이 조금 다르다고 변명도 못 하게끔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했다. 사실 빨갱이라는 단어는 게릴라 유격대를 부르는 말인 파르티잔에서 유래했다. 파르티잔은 러시아어인데, 한글 표기법상으로 파르티잔이라고 부르지만, 실제 러시아어 발음상 빠르찌잔에 가깝다. 해방 이후 북한이 남한에 침투시킨 유격대원들을 빨치산이라 불렀다. 빨치산은 나중에 빨갱이로 바뀌었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에게 '빨갱이'란 도덕적으로 파탄이 난 비인간적 존재, 짐승만도 못한 존재, 국민과 민족을 배신한 존재였다. 회식 자리에서 다 같이 건배를 외칠 때 건배를 안 하면 빨갱이가 되었고, 모두 짜장면을 외칠 때 나는 짬뽕이라고 말하면 빨갱이가 되었다. 어느새 빨갱이라는 단어는 너와 나를 가르는 마타도어식 용어가 되었다.
천안함에서부터 시작된 이야기는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종북세력에 지역색까지 운운하며 대한민국을 남북으로, 동서로 나누고 있었다. 동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할아버지의 의견에 동조하는 뜻을 밝혔다. 할아버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더 문제라며 큰소리로 이야기했다.
“빨갱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종북 타령을 하는 젊은것들은 다 북으로 보내야 정신을 차리지. 아니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북에 가서 살면 되잖아.”
할아버지는 의견을 묻듯이 젊은이인 나를 쳐다봤다. 나는 못 들은 척 텔레비전만 쳐다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다시 한번 나를 툭 치며 눈으로 이야기했다. ‘너의 정체성은 뭐니?’라고 묻는 듯했다. 오가며 인사를 몇 번 빼먹었다고 나를 싹수없는 놈이라고 단정을 내렸던 앞집 할아버지였는데 이제는 나를 빨갱이로 몰아갈 준비를 하는 듯했다. 나는 할아버지의 눈을 피해 휴대전화를 쳐다봤다. 내 옆에 앉아 있던 옆집 할머니는 나를 툭 치며 할아버지가 원하는 답을 해주라는 말을 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사실 한미 합동 훈련 중인 곳에 잠수함을 타고 들어와 어뢰를 발사해 군함을 두 동강 내고, 들키지 않고 무사히 돌아갔다. 한미 합동 훈련 중이라 모든 군함의 레이다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가능할까? 군대를 다녀온 경험으로 나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천안함은 대한민국의 금기어다. 천안함 피격사건에 관하여 티끌만큼 의심스러운 점이 있다고 말한다면 이유도 묻지 않고 무조건 빨갱이, 주사파, 종북세력이 되었다. 내가 정치인도, 유명인도 아니니 빨갱이로 손가락질받는 것쯤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에게 북의 소행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용기도, 확실한 근거도 없었다. 나는 순간 망설였다. 옆집 할머니는 걱정이 된 듯 재차 옆구리를 찔렀다. 나는 할머니에게 윙크하며 실미도의 설경구처럼 말했다.
“저를 북에 보내주십시오. 김정일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겨주고 오겠습니다.”
옆집 할머니는 학창 시절의 나를 알기에 사뭇 걱정했나 보다. 나의 시원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다. 뒤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등을 토닥여주기까지 했다. 그때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정일 님, 2번 방으로 들어가세요.”
조금 전까지 종북, 빨갱이들은 다 죽여야 한다며 흥분했던 앞집 할아버지가 뒤통수를 긁으며 머쓱하게 일어났다. 손뼉까지 치며 좋아했던 할머니, 내 등을 토닥여주신 할아버지, 김정일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갈겨주겠다는 나, 그리고 이름이 김정일 할아버지까지 모두 민망해진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