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도 작성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보통 이력서 한 장 써놓고, 여기저기 다 제출하시죠? 그렇게 하니까 면접은커녕 서류에서부터 떨어지는 겁니다. 오늘 제 강의를 들으시면 적어도 서류는 통과됩니다. 면접까지는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차비 정도는 받을 수 있겠죠? 다들 취준생이니 이력서뿐만이 아니라 자기소개서, 경력자라면 경력 기술서까지 준비들 하셨죠? 제가 묻겠습니다. 그 이력서 언제 쓰셨나요? 자, 지금부터 손을 들어 보겠습니다. 나는 매번 이력서를 새로 쓴다. 손들어 보세요? 한 명도 없네요. 그러니까 안 되는 겁니다. 이력서는 매번 써야 합니다. 왜일까요? 내가 지원하는 회사, 그 회사가 원하는 이력서를 써야 하기 때문이죠. 정보통신 전문가를 뽑고 싶은 회사에 내는 이력서에 정보통신과 연관된 이력이나 자격증이 한 줄도 없다면 누가 뽑습니까? 내가 중심이 아니라 뽑는 입장에서 쓰는 이력서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이력서는 매번 새롭게 써야 하는 겁니다.”
강사는 오드리 헵번을 연상시키는 짧은 단발머리에 투피스 정장을 입었다. 강의 도중 또각 소리를 내며 허리를 곧게 펴고 아니 도도하게 걸었다. 본인은 사 학년이고, 명문대를 나왔으며, N 포탈회사에서 십 년을 근무했다며 본인의 이력서를 화면에 크게 띄우고 자랑 비슷하게 강의를 시작했다.
“보통 서류 심사는 누가 하죠? 대리급 이하 또는 인사팀 막내가 하지 않을까요? 그들은 보통 이십이나 삼십 초반이겠죠. 그들은 자기 또래라면 몇 년생인지 알지만, 만약 또래가 아니라면 생년월일만 보고 나이가 몇 살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생년월일을 적고, 그 옆에 나이를 적습니다. 이렇게요. (만45세) 그러면 서류 접수를 하는 사람이 보기가 쉽겠죠. 이렇게 사람을 뽑는 입장에서 이력서를 써야합니다. 또 하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통근 거리가 한 시간이 넘는 회사에 지원했다면 주소 옆에 이렇게 적습니다. (한 시간 이상 통근 가능) 그러면 뽑는 입장에서 ‘이 사람은 적극적이네!’라는 생각을 갖게 되죠. 이력서는 이렇게 써야 합니다. 자기소개서에 힘을 주는 사람들이 많죠? 다 쓸데없는 짓입니다. 여러분들도 아시죠? 자기소개서는 다 소설이라는 것을요. 자기소개서보다 이력서에 힘을 줘야 합니다. 거짓말을 쓰면 안 되지만, 화장한 얼굴이 더 예쁘듯이 조금 수정하면 보기 좋은 이력서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력을 쓰는 순서도 중요합니다. 정보통신 회사라면 정보통신과 관련이 없는 이력은 다 빼시고, 관련이 있는 이력을 제일 먼저 쓰는 겁니다. 아무리 짧은 이력서라도 뽑는 사람들은 맨 위 첫 줄만 읽습니다. 맨 위 첫 줄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합니다. 이력이 없다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만드세요. 회사와 연관된 이력이 제일 중요합니다. 잊지 마세요. 그리고 이력서 사진도 유행을 탄다는 사실 알고 있습니까? 요즘은 치아가 보이며 웃는 사진이 대세입니다. 다들 웃는 사진을 붙였는데 본인만 여권 사진처럼 긴장한 사진을 붙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뽑을까요? 사진 속 의상도 중요합니다. 사진을 여름 정장이나 겨울 정장을 입고 찍었다면 다시 찍으세요. 여름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은 겨울에 보면 추워 보이고, 없어 보여요. 반대로 겨울 정장을 입고 찍은 사진은 여름에 보면 둔해 보이고, 답답해 보입니다. 그래서 사진은 춘추 정장을 입고 찍어야 합니다. 이력서는 매번 새롭게 쓸 수 있지만 사진은 매번 찍을 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력서에 거짓말을 쓰면 안 되지만 거짓말을 써야 하는 항목이 있습니다. 퇴사 사유입니다. 뽑는 사람 관점에서 제일 궁금한 것이 퇴사 사유입니다. 왜 그만뒀는지, 무슨 문제가 있는지, 다른 무엇보다 궁금해합니다. 보통 우리는 개인 사유라고 적습니다. 그런데 요즘 포탈로 접수받는 곳은 구체적인 퇴직 사유를 적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계약 해지입니다. 하지만 계약 해지도 자주 쓰면 안 좋습니다. 그리고 이사를 했다면 도를 옮겨서 이사해야 인정합니다. 질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암 같은 질병은 완치가 되었다고 병원 서류를 제출해도 안 뽑습니다. 교통사고도 괜찮습니다. 요즘은 이력서보다 개성이 담긴 포트폴리오를 제출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내가 얼마나 이 회사에 맞춤형 사원인지, 실무에 바로 투입되어도 부족함이 없는 사원이며, 개성과 능력이 넘치는 사원인지를 보여주는 이력서를 써야 한다는 겁니다. 이해하셨죠?”
강의를 마칠 무렵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생각보다 한숨 소리가 컸는지 강사가 나를 지목하며 한숨의 의미를 물었다. 나는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굳이요? 방금 굳이라고 했습니까? 저 죄송하지만, 지금까지 이력서 몇 장이나 써 보셨나요? 열 장 정도 됩니까? 아니면 스무 장? 저는 백 장이 넘습니다. 백 장이 넘는 이력서를 쓰고, 연락을 기다리고, 그나마 문자라도 받으면 고맙죠. 연락도 없이 마음 졸여가며 기다렸던 시간을 선생님은 아세요?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N 포털에 입사했습니다. 거기서 결혼도 했습니다. 일은 많았지만 그만큼 보수도 좋았죠. 그러다 출산하고, 출산휴직과 육아휴직을 일 년 넘게 하다 보니 나중에 돌아갈 자리가 없더군요. 자연스럽게 경단녀가 되었죠. 몇 년을 육아에만 전념하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면서 직장을 찾았습니다. 그때 백 장이 넘는 이력서를 썼습니다. 그럼 저는 취직이 됐을까요? 아니요. 취직 못 했습니다. 그래서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따고 이렇게 강의를 하는 겁니다. 선생님, 제가 직업상담사 자격증만 땄을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자격증은 여덟 개, 운전면허증까지 하면 아홉 개입니다. 저는 지금 한 시간에 삼만 원짜리 강사가 되었습니다. 세금 떼면 그보다 훨씬 적겠죠. 그래도 저를 불러주신다면 서울에서 창원까지도 갔습니다. 차비와 식대 빼면 얼마 남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또 불러주신다면 갑니다. 저도 굳이 이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강사는 끝내 뒤를 돌아 눈물을 훔쳤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돌아선 강사는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하며 강의를 마쳤다. 나는 강사가 강의실을 떠날 때까지 앉은자리에서 한 발도 움직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