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감히

by 윤희웅

나는 지금 사십 년이 지난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보통 오래된 이야기는 굳이 안 쓰는 것이 좋다. 옛날이야기다 보니 시대감각이 많이 떨어진다. 꼰대의 잔소리 또는 하소연 정도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도 옛날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사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사십 년 전 고등학생이었다. 매번 상위권을 다투는 공부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나름 1/3쯤에서 선방하는 학생이었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중간고사는 거의 주관식으로 출제되었다. 수학 같은 경우는 5문제가 출제되었다. 다른 과목들도 비슷했다. 서술형으로 짧은 에세이를 쓰는 문제가 많았다. 그리고 중간고사를 마친 다음 수업 시간은 선생님이 들어와 시험문제를 풀어주고 점수를 확인시켜 줬다. 답은 틀렸지만 찾아가는 방법이 맞으면 그에 걸맞은 점수를 줬다. 사회 마지막 문제는 10점짜리 서술형 주관식 문제였다. 문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아마 사회 현상의 견해를 묻는 문제로 기억한다. 서술형 문제였기에 자기 생각을 에세이 형식으로 적으면 됐다. 오히려 교과서보다는 상식이나 신문을 많이 읽는 학생들에게 유리했다. 사회 선생님이 돌려준 시험지에 마지막 문제의 내 점수는 5점이었다. 옆자리 친구의 점수는 10점 만점이었다. 그런데 친구의 답이 나와 똑같았다. 글씨체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의 답에 친구는 10점을 주고, 나는 5점을 준 것이었다. 나는 손을 들고 선생님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선생님, 점수가 이상합니다. 같은 답을 적었는데 이 친구는 10점이고, 저는 5점입니다.”

“시험지 가져와 봐.”

선생님은 두 장의 시험지를 번갈아보며 답을 확인했다.

“선생님, 저도 10점 주세요.”

“10점을 달라고? 점수는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 주는 거야. 건방진 놈, 그리고 네가 지금 수업 시간에 손들고 앞으로 나와서 불만을 토로해?

“불만이 아니라 시정을 요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같은 답을 적었는데 한 놈은 10점이고, 한 놈은 5점이라 불만이다 이 말 아니야?”

“불만이 아니라 시정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네가 뭔데 나에게 시정하라, 말라야? 내가 실수라도 했다는 거야?”


선생님은 주머니에서 붉은 색연필을 꺼내 내 시험지가 아닌 친구 시험지 점수를 10점에서 5점으로 고쳤다.

“어디서 감히 학생이 건방지게 선생님이 실수했다고 공개적으로 이야기를 해?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야. 건방진 새끼.”

선생님은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 교탁 위에 올려놓고 나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뺨을 때렸다. 선생님은 나의 뺨을 서너 대 때리고 나서야 분이 풀렸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풀어놨던 시계를 다시 찼다.

“선생님은 실수 같은 것 안 하는 사람이야. 이 새끼처럼 답을 적었는데 10점 받은 놈들 다 나와. 5점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어서 나와.”

나는 부푼 뺨을 어루만지며 오점 짜리 두 장의 시험지를 들고 돌아가 앉았다. 나는 억울함과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떨구고 있을 때, 친구의 손이 나의 무릎을 만졌다. 그리고 이야기했다.

“나는 괜찮아. 고개 들어. 네가 고개 숙이고 있으면 저 새끼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몰라. 고개 빳빳이 들고 째려봐.”

나는 친구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들고 선생님을 째려봤다. 수업 마침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째려봤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가 사십 년 전의 일을 지금 쓰는 이유는 뉴스 때문이었다. 서울 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뉴스가 사십 년 전의 일을 기억나게 했다. 사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어디서 감히’가 씩씩하게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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