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여름휴가였다. 예전 같으면 휴가 전날은 회식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 회식은 점점 사라지다 코로나 이후 자취를 감쳤다. 회식 대신 모바일 상품권이 도착했다. 나는 모바일 상품권으로 치킨을 주문하고, 시원한 맥주를 준비했다. 현관문 노크 소리와 함께 전화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아홉 시가 넘었다. 전화 받기가 망설여졌다. 치킨을 들고 들어와 식탁에 앉았다. 계속 울리는 전화만 쳐다봤다.
전화 받았습니다.
윤 과장 지금 어디야?
집입니다.
정말 미안한데 지금 회사로 가야겠어.
이 시간에요?
미안해 그렇게 됐어. 납기가 걸린 문제라 어쩔 수가 없네.
부장님, 왜 하필 저예요?
우리 팀원 중에 지금 집에 있는 사람은 윤 과장밖에 없네.
저도 휴가 중이에요.
처음부터 전화 받기가 꺼려지는 이유가 분명 존재했다. 어제 퇴근 무렵 휴가로 들떠있던 팀원들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치킨을 뒤로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회사로 갔다. 일을 마무리하고 시계를 보니 열두 시가 넘었다. 집에는 치킨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가철 반월공단은 모처럼 모두가 잠들었다. 가로등도 군데군데 꺼져있는 공단은 좀비가 출몰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그때였다. 신호대기 중인 차 앞으로 사람이 불쑥 들어왔다.
사장님, 안산역까지 태워 주세요?
시커먼 외국인 노동자가 어눌한 한국어로 안산역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버스도 운행이 끝났고, 택시도 안 들어오는 이곳에서 안산역까지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처음 보는 시커먼 외국인을 태워 주기도 망설여졌다.
미안한데 나는 안산역 방향이 아니야. 반대 방향이야.
안산역 방향이 아니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외국인 혐오증도 없고, 오히려 타국에서 고생하는 그들에게 우호적인 사람이었다. 결코 무서워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외국인은 잠시 망설이다 인도로 올라갔다. 시계를 보니 한 시가 다 됐었다. 밤이라도 이 더위에 안산역까지 걷기는 무리였다. 나는 창문을 내려 그에게 소리쳤다.
타세요. 안산역까지 갑시다.
환한 미소와 함께 외국인이 달려왔다. 다만 혼자가 아니라 세 명이 더 있었다. 사실 네 명이라는 것을 먼저 알았다면 태워 줄 생각은 아예 안 했을 것이다. 거기다 한 명은 덩치가 프로 레슬러 같았다. 순간 등 뒤로 땀이 흘렀다. 수많은 사건 사고가 영화 필름처럼 눈앞으로 지나갔다. 안산역까지 십 분이면 충분하다. 긴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사뭇 애를 썼다. 덩치 큰 외국인이 자리가 좁은지 뒤에서 뒤척일 때마다 흠칫흠칫 놀란 것을 빼면 나름 자연스러웠다.
한국 남자들은 다 군대에 가요. 그런데 나는 특수부대 출신이에요. 해병대 알죠? 영어로 네이비 실, 내가 네이비 실 출신이에요.
차 안에서 그들은 조용히 가고 있는데, 나 혼자 뜬금없이 네이비 씰 운운하며 호탕하게 웃고 있었다. 핸들을 꼭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무섭지 않은데 왜 손은 떨고 있는 것일까? 불이 꺼진 안산역은 어두웠다. 안산역 건너편 외국인 거리만이 지금 시간에도 활기차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어두운 안산역 앞에 차를 세우고, 그들에게 선한 미소를 보였다. 그때였다. 뒤에 앉아있던 프로 레슬러 같은 외국인이 웃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나는 화들짝 놀라 크게 소리쳤다.
나, 네이비 실이라고.
프로 레슬러를 닮은 외국인은 깜짝 놀라며 멈칫했다. 나는 그 틈을 이용해서 차 밖으로 나왔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태권도쯤은 다 할 줄 안다. 나 역시 초등학교 때 검은 띠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겨루기 자세를 취하며 그들을 노려봤다. 프로 레슬러를 닮은 외국인인 웃옷에서 꺼낸 것은 지갑이었다. 그는 나에게 이만 원을 건네주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개 숙이며 인사를 했다. 나는 황급히 이만 원을 다시 건네줬다. 타국에 와서 돈도 없을 텐데 재미있게 놀라며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괜히 무릎을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십 분 운전이 피곤한 듯 몸을 풀었다. 지하도를 건너 외국인 거리를 향해 걸어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그들은 나의 행동을 이해 못 한 듯 보였지만 나는 참으로 부끄러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