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과 이별하는 중입니다.
2025.1 미안했어.
지난 12월, 폭풍 같은 한 해를 돌아보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제대로 봐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였다.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글은 그만큼 아프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한편 글을 쓰며 알게 된 것들은 시원하고 반갑기도 했다. 이것이 나의 역동이라는 것에 미안하고 후회스럽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글쓰기라는 것이 그 순간에는 표현하기 힘든 마음들을 구석구석 들여다 보고 천천히 표현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어 준다. 글로 쓰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마음들을 다시 살필 수 있게 되었고, 남겨졌던 마음들이 글로 표현될 때 다시 통증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라도 별똥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상 만물은 나름의 본성이 있다. 누구에게나 능력은 물론 한계도 있다. 한 예로, 도자기 만드는 일을 보자. 도자기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점토에게 무엇이 되어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 아니다. 점토는 도공의 손놀림에 따라 빚어지지만, 동시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도공에게 얘기하고 있다. 만약 도공이 점토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면 결과는 깨진 파편이나 보기 흉한 물건이 된다.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 파커 J. 파머. 한문화-
나를 위한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주인공은 나와 별똥별이었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이었던 별똥별에게 사과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에게 자꾸 무엇이 되라고 해서 미안하다"라고..
나의 기준은 더 옳은 것, 더 나은 것이었지만 그것이 사회적 가치에 합일하는 것이라고 해도 강요할 순 없는 일이다. 그 강요에 묻은 찌꺼기들이 지금의 별똥별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일년.. 아니 휠씬 오래된 시간 속에서 더 수용받는 분위기, 있는 그대로 존중받고 기다려주는 분위기였다면 고집으로 일관하는 태도를 만들어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도 우리의 최선이 있었지만 그 아이도 그 아이만의 최선이었다. 모든 문제행동은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가끔 아이들 사연을 들으면 '학교에 온 것만으로도 용하다'는 생각을 한다. 가출을 하고 심지어 성매매를 하는 아이의 행동도 가정환경을 듣고 나면 '네가 살아있는 게 최선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교무실에 자주 걸려있는 액자에는 '대추 한 알'이라는 장석주의 시가 있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낱
대추야
너는 세상과 통하였구나
-대추 한 알. 장석주-
내 삶에도 천둥과 벼락, 태풍이 있었던 것처럼 모든 아이들 삶에도 그랬을 텐데 그것을 터부시 했다. 점토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도공처럼, 아이들 말을 듣지 않은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미안하다. 나의 최선이었음에도 미안하다.
나는 도공임에도 본성을 모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몰랐던 것도 미안하다. 그래서 일어난 일들로 인해 상처를 준 것, 아픔을 느끼게 한 시간들에 대해서 나에게도 미안하다.
그럼에도 오늘 할 수 있는 것을 해서 다행이다.
지난 일 년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 했고, 할 수 없는 것에도 최선을 다해..ㅡ.ㅡ 다했다..
이제 나의 도공으로서 나의 본성에 맞게 나의 삶을 빚어보고 싶다.. 그 출발은 사과하는 것이다. 용서하는 것이다.
별똥별은 기분이 좋을 때는 눈빛만으로 다른 세상과 소통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 별에 있는 듯한.. 지구는 아닌 듯한... 여하튼 기분이 좋아보니 다행이다. 그런데 그 웃음 끝은 불안해 보인다. 내 마음이 투영되서 그런가..
나는 별똥별에게 다가가서 안부를 물었다.
오늘 기분이 어때?
1학기에 선생님이 시키는 것 하느라 힘들었지?
학교 생활하면서 그런 게 힘든 것 같더라.. 규칙을 지키는 거..
나도 그랬어.
별똥별은 당황했지만 반가운 듯 웃으며..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그래, 1학년 다니느라 수고 많았어.
며칠 있으면 방학인데 즐거운 시간 보내
'2학년 되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라는 말을 하려고 하다가.. 그건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나의 마음에서 지난 일 년을 흘려보내고 싶듯이, 별똥별과도 이제 헤어지려고 한다. 다 지난 일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