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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닫힐 때 다른 길이 열린다.

2025. 2 연재를 마치며

by 제롬

오늘은 종업식 날이다.

교사들은 어제까지도 방학인 걸 인지하지 못한다.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종업식, 졸업식을 마치고.. 그제야 부랴부랴 짐을 챙기며 방학을 느낀다.


나도 오늘에서야 짐을 정리하며 현실감이 느껴졌다.


다 끝났구나



어제는 고마운 사람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2학기에 복직을 해서 우리 반 담임이 된 선생님이다. 비담임으로 좀 더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 담임으로 배정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남자선생님이어서 그런지 큰 타격감 없이 잘 마무리하신 듯했다. 그리고 힘드셨겠다는 말도 해주었다. 자신도 그냥 넘어가지 못했던 순간이 많았다고..


나의 졸업식 업무는 사진촬영 현수막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여러 선생님들이 공예시간을 이용해서 꽃을 직접 만들었다. 현수막 위에 꽃을 양면테이프로 붙이며 다신 이런 거 하지 말자..라고 말하면서 웃었다. 그럼에도 다시 할 게 뻔한고 매년 수작업으로 업그레이드된 작품이 나온다.


교무실로 돌아오니 종이봉투 안에 손수 만든 약밥이 담겨 있었다. 실무사님이 주는 선물이었다. 감사하다. 평소에 빈시간에 찾아가 위로를 받았던 동년배 선생님의 교실을 지나며 인사를 했다. 잠시 앉아 어제 있었던 상담에서 느꼈던 것을 말하니 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리고 많이 힘들었겠어..라고 말한다. 나는 비껴가지 않고 눈을 보며 그 따뜻함을 느껴보았다. 고마웠다.


방학하면 만나자는 오랜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피부시술 부작용으로 대학병원을 가느라 약속을 취소해야 한다는 연락이었다. 한참 전부터 골치를 겪는 걸 알고 있어서 알겠다고 하며 너무 혼자 힘들어하지 말라는 의미로 문자를 했다. '7월부터 정신과약을 먹고 있고 트라우마치료를 주 1회 다니고 있어. 우리 잘 버텨보자.' 톡을 보내자 다시 만나자고 전화가 왔다. 피부가 중요한 친구가 피부대신 나를 선택했다.ㅎㅎ


이제 새로운 업무분장표를 받고 업무를 써내는 시간이 되었다. 올해 1학년을 담당하며 만난 샘들이 어느새 한 곳에 모였다. 진지하게 같은 학년으로 배정될 수 있길 바라며 업무를 겹치지 않게 쓰자며 머리를 맞댄다. 결전의 순간인 양 눈에 힘을 주고 업무분장을 살핀다. '마지막엔 변수가 너무 많아... 그래도 써봐.. 우선 겹치지 않게 써.. 중요한 작전회의를 하는 듯한 서로의 모습에 빵 터진다.


한편 나는 담임을 안 하면 부장을 해야 한다는 교감샘말에 수긍하며 업무분장을 써냈다. 휴직과 교과, 부장에서 고민을 했다. 일상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학교생활을 이어가기로 했고, 나이와 경력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오는 역할을 하는 게 나를 더 편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뭐가 되었든 작년과 다른 방식으로 선택하고 살아보자는 마음이다.


오늘 하루의 일상이 편안했다. 잔잔하게 따뜻했고 함께 나누는 마음이 느껴질 때 든든했다. 지금여기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더 없이 감사했다. 지금껏 나의 뿔로 살아왔다면 이제는 나의 무릎으로 살아가 보려고 한다. 나의 세계 너머의 세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염소의 힘 / 김호균


말뚝에 매인 줄을 버리고 혼자서 길을 가는 염소야


너의 앞무릎이

나무의 옹이처럼 박혀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아는 누군가가 무릎 꿇고서도

한사코 일어서는 그 몸부림을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팠다


이승에 식구도 하나 없이

사람들의 유원지를 질러가는 염소야


네가 버티는 힘은 무엇이냐


내가 생각하기로,

네가 살아 있는 힘은 들이받는 뿔이 아니라,

너의 그 앞무릎이었다, 생각한다


세상을 알려면 세상에 무릎을 대야 하고,

거기서 더 넘으려면 그 무릎 옹이가 무늬져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너의 성난 뿔을 들이받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오늘도, 동전만 한 너의 굳은살의 앞무릎이

길을 몰고 간다 꽃샘바람을 몰고 간다






지금까지 연재를 읽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연재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과 마무리하는 마음의 변화는 참 큽니다. 그것이 한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요. 글쓰기는 정말 치유의 힘이 있나 봅니다. 글을 쓰며 상처를 마주하고 함께 공감해 주신 마음을 낄 때 놀랍고 안전함을 느꼈어요..

마음을 내어 읽어주시고 댓글로 응원과 위로를 보내주신 분들이 빛과 소금이 되었어요.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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