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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롬 Dec 24. 2024

꿈을 꾸지 않은 밤

2024. 10월   

 



오랜만에 잘 잤다. 어제는 부서회식을 하고 술도 한잔했다. 여러 이야기들을 듣기도 하고 말하기도 하면서 에너지를 쓴 탓인지 깊은 잠에 들었다. 오랜만이었다. 꿈을 꾸지 않았다. 비슷한 연령대의 선생님과 대학시절 무전여행, 배낭여행 이야기부터 다양한 얘기들을 두서없이 했다. 세상이 모두 가능한 것들로 희망찼던 그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서 였는지 대학 때로 돌아간 듯 싱그러웠다.


몇 달간 학교에서 아이들이 버겁고 지쳤던 과정들은 꿈에 나타났었다. 현실보다 더 솔직하고 더 직설적이고 과장된 형태이다. 나는 꿈에서 여전히 아이를 찾아 헤매기도 하고, 아이가 또 잘못을 저지를까 노심초사하기도 하고 괴물로 나타난 적에게 도망치기도 했다. 


무엇이었든 현실보다 더 어렵고 난이도가 높았다. 나의 두려움과 불안은 꿈에서 주로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거나 나로 인해 문제가 생긴 상황을 해결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상황으로 나타났다. 그 상황에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고 가슴 졸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꿈에서 깬 후에도 명치의 아픔이 느껴졌다.     


프로이트의 꿈분석에서 말하는 그림자가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일 것 같다. 나는 아직 반가워하기보다 어처구니없이 솔직한 꿈에 늘 당혹스러워하며 깨어났다. 꿈에서 도망가거나 저항하거나 자책하는 스토리가 매번 반복되지만 매번 너무 생생했다. 꿈에서 깨도 움켜쥔 손이 잘 펴지지 않았다. 그림자가 없길 바랐다.     

 


우리 반 아이가 화장실에 가서 화장실 벽, 변기, 휴지걸이 등에 보이지 않게 똥을 묻혔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지금껏 노력했던 것들이 모두 아무 소용없던 짓이라는 무력감이 들었다. 꿈에서 화장실 칸칸을 열어보며 아이를 찾고 있었다. 찾아도 찾아도 없어서 애가 타고 전전긍긍하는 나는 아이가 똥을 화장실 벽에 묻히는 걸 허용할 수 없다. 그런 뭔가에 쫓기는 악몽을 몇 달간 꾸고 있었다. 꿈은 반복된 상황이 나오기도 하고 전혀 예상 못한 것이 등장하기도 했다.     


안정제를 먹은 후에도 꿈은 계속되었다. 오히려 내 꿈의 주인공이라도 된 양 더 안정적으로 나타나는 듯했다. 이제 등장해도 된다고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거의 매일 나타났다. 이제 나도 포기했다. 어느 순간 꿈에서라도 나타나 풀어낼 것이 있으면 풀어내길 바랐다. 뭐든 내 것일 테니까.     


이런 날들 속에서 오늘은 꿈을 꾸지 않고 일어났다. 하루 두 탕 뛰던 알바를 하지 않는 날에 느껴진 여유처럼 눈을 뜨고 여유로웠다. 지치지 않고 숙면을 하고 일어나니 기분이 새로웠다. 오랜만이었다.      


꿈은 우리에게 무의식의 세계를 말해준다고 하더니... 

잘해야 한다는 생각, 나는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나는 할 수 있다는 오만, 미묘해서 나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많은 신념들이 있다. 꿈속에서 생각이나 신념들은 형상화된다. 건물에서 나를 떨어뜨리거나 나를 쫓아오거나 나의 한계를 늘 느끼게 한다. 언제나 미완성이고 미진하고 부족한 나를 깨닫게 해 준다. 꿈속에서는 그것들이 고통으로 느껴진다. 꿈이 내게 말해주려는 것이 무엇일까.      


놓아라


하나의 생각이 중요해질 때 그 생각은 프레임이 된다. 여러 상황들 속에서 관점, 즉 보는 점이 생기는 것이다. 관점은 다양한 사실들 중에서 바라보고 점을 찍는 것이다. 그 점은 나의 생각의 근거들로 자리 잡는다. 관점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견고한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더 탄탄한 근거들이 생기게 된다. 신념은 강화되는 특성이 있다.


나에게 잘해야 한다는 것, 책임져야 한다는 것,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은 관점이자 신념이었다. 잘하는 것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꼭 해야 하는 당위적 신념이 되었고 나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원동력이 되었지만 갈등의 씨앗이기도 했다.      


처음엔 나에게 말했던 어른들의 입에서 나왔지만 나는 그 말을 듣고 내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잘해야 하는 사람’, ‘나는 책임져야 하는 사람, 책임감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이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으로 나를 구속시켜 왔다.     


하루도 아니도 여러 날, 몇 달을 지속하며 이 신념들이 만들어낸 꿈은 라인업이 화려하다. 인간부터 신화 속 신들까지, 건물부터 땅속까지, 개미부터 용가리까지.. 나를 밀고 떨어뜨리고 쫓아온다. 그것은 모두 나의 생각들에서 이제 떨어져 나가라는 것 같다. 이제 그냥 존재로 살아가라는 것 같다.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로.     


새벽에 눈을 뜨니 그 자체로 새벽이었다. 동서향의 우리 집 베란다 창문 밖에 동이 트고 있었다. 매일매일 이런 해가 떠오르고 저녁이면 지었단 말인가... 긴 여행을 다녀온 듯했다. 이제 우리 집에서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봐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10월에 적어둔 글을 브런치에 올리는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이다. 우리 집 아이들은 딱 때를 맞춰 감기와 독감에 걸려 새삼스런 파티 없이 소소한 하루를 보낼 것 같다. 


지난 10월 초, 둘째가 코로나에 걸려 입원을 하게 되었고 어린이병원이 언제나처럼 병실이 없었다. 이제 코로나는 분리병실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4인실 병실을 우선 배정받았다. ㄱ자 방에는 냉장고 옆 자리 하나가 비어있었고 나는 아이를 누이고 잠이 들었다. 큰 방이 아니라 빈구석 없는 냉장고 옆에 보호자용 매트를 깔면 딱 맞는 공간이었다. 다음날 나는 일어나지 못했다. 밤새 열이 나는 아이를 간호하느라 긴장했던 탓도 있고 내 몸에 맞는 공간이 오히려 포근하게 느껴졌기도 했을 테고... 나도 몰랐던 더 큰 이유는 약이 이제야 효과를 발휘했다. 


나는 복용량이 넘는 약을 먹을 때에도 몸에 이상이 없었다. 선생님은 약의 용량을 높여달라는 말에 증상이 없냐고 매번 확인했었다. 나는 이상이 없었고 약에 도움으로라도 잘 적응하고 싶었다. 2학기라도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학교에서의 긴장은 약의 효과를 넘어섰다. 


긴장이 풀어진 병원에서 나는 잠에서 깨지 못했다. 아니 약에서 깨지 못했다. 오전 11시까지. 아이는 진료하러 오라는 간호사의 전화를 받고 나를 깨웠다. 나는 비몽사몽간에 진료실이 2층이 아닌 5층 간호사 실에서 '병실을 바꾸라는 전화를 받았다'라고 말했다. 아이도 간호사도 어리둥절 해했다. 꿈에서 나온 말이 현실과 분간이 어려웠다. 그렇게 내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할 때 아이는 스스로 간호를 했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한번 기능하지 못하는 나를 느끼고 나니 학교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몸이 너무 무거웠다. 손하나 움직이는 것도 두 배의 무게가 느껴졌고 껌이 손에 붙어 바닥으로 당기는 것 같았다. 볼펜 하나 잡는 것도 무거웠다.


며칠 후 병원에 가서 상황을 얘기했다. 

나: 지난주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제가 긴장이 풀어졌던 것 같아요. 다음날 일어나질 못했어요.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이 감각을 느끼고 나니 학교에서의 일상에서 몸이 무겁고 속도가 느리게 더 자각이 돼요.

의사 선생님: 어떤 사람은 천천히 약으로 인해 느려지거나 불편함이 나타나는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한 번에 나타나기도 해요

 

나: 약 먹는 게 이제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학교가 아닌 곳에서는 특히 집에서 긴장이 풀어질 때 제 기능을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의사 선생님: 더 불편한 것을 선택하는 거예요. 불안으로 가슴이 뛰는 것이 더 불편한지, 약을 먹고 원활히 움직여지지 않는 것이 더 불편한지.. 


나는 약을 끊기로 했다. 그리고 나의 오랜 친구인 불안은 내가 잘 돌보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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