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왜 거기 누워 계세요?
2024. 12월 복도에 누워 보았다.
가끔 별똥별이 부러웠던 적이 있다. 내가 보기엔 마음대로 소리 지르고, 고집피고, 하고 싶은 걸 그냥 해버리는 게...
별똥별이 외현화 문제행동이라면 나는 내현화 문제행동을 가지고 있다. 눈치를 보며 더 칭찬받을 수 있는 것, 더 옳은 것, 더 잘해서 사람들의, 그때의 어른들의 인정을 받는 게 중요했다. 습관은 결과적으로 큰 힘을 발휘해 준다. 그 덕에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덕에 지금의 (우울한) 마음도 자리 잡게 되었다.
교실에서는 외현화 문제행동이 문제가 되긴 하지만 이미 무기력해 진 채 앉아 있는 내현화 된 문제행동이 사실은 더 심각하다. 그래서였는지 별똥별이 처음에는 소리 지르거나, 자신의 욕구를 말하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처럼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려서 지레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소리도 지르지 않았던 것 보다는..
내 마음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것에 관심이 많았다.
미스터 션샤인의 김희성이 "나는 무용한 것을 사랑하오"라고 했을 때 좀 충격적이었다. 나는 드라마의 많은 장면 중에 그 장면이 종종 떠올랐다. 무용한 것. 마음에만 담고 있던 무용한 것들을 해보기로 했다.
그중 첫 번째는 교실 바닥, 복도 바닥에 누워 보는 것이다. 별똥별도 그렇지만 많은 애들이 발버둥 치고 난리를 칠 때 그렇게 바닥에 눕는다. 몸은 그렇게 작지 않은 중학생인데 발버둥을 친다. 그게 교감, 교장선생님이 계신 복도이든 많은 사람들이 있는 현관이든 상관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도 몸은 어른이니 조신하게 사람 드문 본관과 후관을 이어주는 통로에 누워 보았다.
눈을 감고 복도에 누워 보았다. 무기력이 공간으로 표현된다면 그곳이다. 터널같은 통로. 그 곳은 늘 나를 바닥으로 당겼고 나는 그 무게를 느끼며 발을 떼어 교실로 갔었다. 그때 차라리 누워버릴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나의 생각들은 참 현실과 거리가 멀어보여 나는 이내 머리를 흔들며 현실적인. 정상적인 방법을 써보려 노력했다. 심호흡을 하는 정도로..
세상 안되는 것 어딨어! 나는 누워 팔다리를 흔들어 보았다. 마치 이곳이 눈밭이라도 되는냥.. 생각보다 편하고 좋았다. 나중에 상담실에 가서 얘기를 하니까 '중력을 받지 않는 자세예요. 잘하셨어요'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더 깊은 이유들이 있었고 상담실안에서는 많은 이야기들이 시공간을 넘나들며 나누어졌다.
무엇이든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을 하나씩 해 볼 참이다.
아이들이 모두 급식을 먹으러 간 사이 누워 보았을 때, 점심을 일찍 먹고 올라오는 주 00에게 발각이 되었다. 나는 더 누워있고 싶었지만 반사적으로 몸이 일어났다.
주 00: 선생님 뭐 하신 거예요?왜 거기 누워계세요?
나: 어 000가 아까 현관에 누워서 발버둥 치던데 그게 어떤 기분인지 궁금해서 누워봤어. 너도 누워볼래?
주 00: 아니요!(쌩~)
버킷리스트... 아닌 별짓리스트 10개를 만들어 방학 전까지 해 봐야겠다..
그것이 지난 유년시절... 아니 지금의 나에게 자유의 숨을 좀 불어넣어 주면 좋겠다. 다 지난 일이라고 무거운 마음을 바람에 날려주면 좋겠다.
나의 별짓리스트 10
1. 복도에 누워 발버둥 치기(0)
2. 상담사에게 때 써보기(싫어요. 안 해요. 안 할 거예요 말해보기)
3. 하루 동안 웃지 않고 생활하기
4. 무뚝뚝하게 대응해 보기
5. 하루종일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기
6. 교무실에서 의자 빙빙 돌리며 앉아있기
7. 애들이 소리 지르면 나도 같이 지르기
8. 귀찮을 때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하기
9. 제출기한 넘기기
10. 친한 샘들과 조찬모임 갖기(출근전 커피한잔)
(생각나면 더 적기로....)
내 기준에 그냥 막살아도 내 삶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해보고 싶다..
상담사가 '선생님은 환경이 선생님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시죠? 아니에요. 지금의 모습은 선생님이 만든 거예요. 같은 환경이어도 다 다르게 살아가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심장을 진정시키려 노력하거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거나, 잘해야 한다는 나의 생각들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고 결국 내 선택이었고 내 몫이라는 말로 들렸다. 어린 시절에 엄마가 없어서라거나 따뜻한 가정을 느껴보지 못한 것의 결과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화가 났지만 참았다. 말 같지 않아서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오히려 더 오래 생각이 난다. 계속 생각이 난다. 그렇다면 내가 더 열심히 살지 않고 사회적 가치에 더 맞춰 살고자 노력하지 않았어도 내 책임을 다하려 하지 않았어도 나는 그냥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여전히 안전한 관계를 맺고 살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억울해 해야 할지.. 반가워 해야 할지 모르겠다 ...
방학 전까지 별짓리스트를 우선 해보자... 뭐가 나오든 경험으로 알아지겠지... 우선 적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