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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롬 Dec 19. 2024

별똥별이 사실은 나였어

2024. 9월  악!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아니잖아..

그 정도는 아니잖아...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평화로워 보이는 학교 담벼락 안에는 다양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럼에도 웬만해서 일어나지 않는 마지노선은 담임교체이다. 많은 민원들로 담임을 교체하라는 압박을 받을 때에도 웬만해서 반영하기 어려운 것은 담임교체이다. 그것은 많은 아이들의 안정성과 학습권, 교권이 결부된 일이다. 누구 하나로 인해 변경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관리자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담임교체를 요구했다.


6월 심리평가를 받을 때에도 상담사의 첫마디는 '병가를 쓸 수 있으신가요?'라는 말이었듯 나는 정상의 범주를 넘어선 지 오래된 듯했다. 더 이상 내가 교실에서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논리적인 근거들로 아는 것이 아니었고 그냥 한순간에 알게 되는 것이었다. 모든 화면이 정지된 듯 보였다. 그때는 그런 격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지금에서 보면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고 나의 상태는 MMPI(다면인성평가)에서도 PTSD 심각 수준이었다.


9월.

2학기 학사일정과 함께 나는 교과교사로 업무가 변경되었다. 다시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는 다짐을 하며 평소 먹던 약을 두배로 먹고 있었다. 절대 쓰러지면 안 된다고 굳은 다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더 피해를 준다는 것은 내가 허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느 날은 저녁약까지 낮에 먹으며 버티고 있었다. 말 그대로 약을 털어 넣는다는 것 또한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여러모로 처음 겪는 일들이 이 나이에도 이렇게 많다니..


복도를 오고 가며, 급식을 먹으며 나는 별똥별을 종종 마주해야 했다. 굳은 표정으로 지나는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아이가 보이면 길을 돌아갔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별똥별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가 있는 거야? 이제 내가 맡은 아이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싫었다.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내가 왜 그런지 잘 몰랐다. 그리고 더 생각할 힘도 없었다. 그저 이 시간이 지나길 바랄 뿐이었다.


그러다 문뜩 누군가를 싫어하는 마음은 수용하지 못한 자기 자신이라는 말이 스쳤다.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그럴 리가 없다. 그날부터 머리 위에 말풍선이 그려졌다. 나는 굳이 더 생각하지 않으려 했으나 나의 무의식은 언제나처럼 열심히 공장을 돌렸다. 과거의 스크린을 돌려 별똥별이 한 행동과 비슷한 나의 행동을 끝내 찾아냈다. 사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악을 쓰며 소리 지르기

울고 불고 억울해 하기

끝까지 자기 뜻대로 하기...


별똥별의 모습들과 나의 장면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잘 맞춰지지 않았지만 점점 그 결이 들어맞았다. 내가 바라보고 싶지 않아 묻어 두었던 흑백영화에 대사와 컬러가 입혀지는 것 같았다. 서서히 하나둘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1.

우리 마을에서 시내로 가는 하나의 비포장길을 엄마가 뛰어가고 있다. 그 한참 뒤를 아빠가 따라가고 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소리가 들린다. '애들 엄마가 왔다가 지 아빠가 있는 거 모르고 있다가 마주쳐서 도망가고 있어..'

나는 저 멀리 도망가는 엄마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비참해 보일까 봐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2.

방학마다 엄마와 같이 있다가 개학이 되어 할머니에게 갈 때 심장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나의 상처들은 외상이 없어서 내 상태를 누구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나는 죽을 것 같았다. 매번 개학이면 벌어지는 일이었지만 한 번은 절대 떨어지지 못할 것 같을 때가 있었다. 택시에 태워 보내려고 하는 엄마의 팔을 놓을 수 없었다. 결국 엄마는 택시를 같이 타고 할머니집으로 왔다. 더 이상 엄마를 잡을 수 없었다. 마당에 내려 나는 주저앉았고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했다.


#3.

할머니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나는 혼자 남았다. 이제 많이 컸고 너희 집 때문에 할머니가 더 이상 희생할 수 없으니 너희 집은 너희 끼지 잘 살라고 선교사인 큰아버지는 말했다. 이렇게 할머니까지 가면 엄마가 집에 돌아올 거라고 했지만 돌대가리가 아닌데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나는 놀라웠다. 큰아버지도 아닌 걸 알면서 효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그 뒤 모든 장면이 흑백으로 변했다.




몇 장 되지 않는 기억 속의 어린 시절은 무채색이었다. 대체로 생명력은 없었고 동영상이 아닌 사진처럼 박제되어 있다. 몇 장면 속에서 나는 울고 불고 소리 지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인간은 세 가지 행동을 한다. 공격하거나, 회피하거나, 얼어붙거나.. 나는 대부분을 얼어붙어 있다. 겉으로는 가만히 있어 보이지만 속에서는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낀다. 울화통이 터지거나 그 화가 나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대체로 내가 사라지길 기도 했다. 이 생각들은 깊은 무력감을 나에게 새겨 넣었다.


공격행동을 하는 별똥별과 얼어붙는 나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행동을 한 것이다. 나는 나에게 피해를 줬고, 별똥별은 상대에게 피해를 줬다.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갔을 뿐이다. 나의 상처들이 그 순간순간 들추어졌다는 걸 몰랐다. 나도 들여다보지 않는 무의식에 넣어 둔 일들이라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싫어하는 건 바로 내 모습이기 때문이야


이 생각을 머리에서 떨쳐내지 못했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잖아"


저항해 보고 거부해 보고 변명해 보고 달래 보기도 했고 나중에는 애원하는 마음이었다. 내 빈 마음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무엇을 위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있었다.


통찰이 모양이 있다면 비스듬한 언덕길처럼 생긴 것이 아니라 계단처럼 생겼다. 머물러 있는 어느 순간 다음 단계에 가 있다. '내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별똥별의 모습은 악성곱슬머리를 풀어헤치고 손가락 구석구석에 똥을 묻히고 교실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나는 계속 그 정도는 아니잖아라고 말했지만


"너는 알잖아, 모습은 달라도 우리 마음엔 절박함이 있었잖아!'라고 말했다.


절박함. 그랬지. 속으로 혼자 중얼거렸다.

'행동을 보지 말고 그 마음을 봐. 뭐가 그렇게 문제야. 절박하고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을 텐데 뭘 그렇게 부정하려고 해. 그럴 수 있는 거잖아. 그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게 뭐겠어.'


나는 제 풀에 꺾여 몸에 힘이 빠졌다. 이 생각에 벗어나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다. 모든 건 괜찮아. 그때 필요한 행동이었어. 이제 그렇지 않고 수용할 수 있는 행동을 배워 가면 돼. 별똥별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그럼에도 할 수만 있다면 외면하고 싶었다.


체험학습을 간 날 별똥별은 1학년, 나는 2학년. 학년이 달랐음에도 동선은 여러 번 겹쳤다. 마지막 코스인 박물관에서 1층 로비에 앉아 쉬고 있었다. 로비에 전시된 작품이며 상품들을 별똥별은 보고 있는 듯했지만 틈틈이 나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 느껴졌다. 그냥 모른척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가 이렇게 모른 척하는 게 더 신경 쓰이는 일이다 싶어 인사를 할까 하다가 속으로 망설이고 있었다.


이런 순간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할까 말까 할 때는 그냥 하는 것을 선택해 왔었다. 나는 별똥별에게 '오늘 재밌었어?'라는 상투적인 인사를 건넸다. 눈치라곤 밥 말아먹은 줄 알았던 별똥별이 수줍게, 조심스럽게 그럼에도 반갑게 얘기를 했다 "선생님 오늘 이거 샀어요." 손에 있는 작은 기념품을 보여주었다.


'그래, 예쁘네. 오늘 재밌게 보내~'


이 말이 이렇게 몇 번을 망설이게 하다니.. 좀 목이 메는 것 같았다. 뭔가 가슴에 막혔던 물꼬가 트이는 것 같이 시원했다. 엉켜버린 마음속 질서가 제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잘했다. 참 잘했다. 지지의 말이 내 안에서 들렸다. 나를 살리는 방향으로 용기를 낸 선택이었다. 그 뒤로 생각보다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의 곁에서 눈치를 보며 맴돌던 별똥별도 그 순간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을 받아준 것도 고마웠다.


이로서 별똥별이라는 나, 또는 그 아이에게서 벗어나게 되었다. 별똥별과 평범한 사제지간처럼 보이는 사이가 되었다. 복도에서나 현관에서나 급식실에서 유난히 더 많이 부딪히는 것 같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짧은 인사도 가볍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평범한 10월을 맞게 되었다. 평범한 그런 가을...




다시없을 올해 봄부터 여름까지의 글을 썼던 한 주, 특히 어제는 몸이 아팠다. 그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는 것이 몸이 아플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모든 것은 지나갔어'라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몸은 기억한다'는 말은 계속 계속 나를 더 솔직하게 만들어준다. 괜찮은 척하지 말고 몸의 신호에 귀 기울이게 한다. 온몸에 힘을 주며 참았던 탓인지 글을 쓰며 뼈마디마디가 아팠다. 팔을 쓰러 내리고 손을 주물러 보며 '몸은 기억하고 있구나. 힘들었지'라고 나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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