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월 적당히 하지
적당히 하지
그 기간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적당히 하지’였다. 방학까지 얼마남지 않은 시점에서 병가를 쓰겠다고 말하며 나는 애써 담담한 척 했다.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나도 내가 어떤지 분명하지 않았다.
아침이면 다부진 각오를 하며 ‘나는 견딜수 있다. 얼마남지 않았어.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할수 있다’를 속으로 되내었다. 굳은 다짐이 무너지는 것은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떤 말도 설명도 생각도 들지 않고 그저 눈물만 나왔다.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렇게 눈물이 나올 수 있는지 나조차 놀라웠다.
나는 수업에 없는 반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내가 눈물이 나서 지금 아이들 앞에 있을 수가 없어서 수업 좀 대신 해 줘”라고 평소 친분이 있던 샘에게 부탁했다. 두말없이 일어서며 걱정말라며 빈교실을 내어 주었다. 불이 꺼진 교실에 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애쓴 마음이 땀방울로 라도 나왔더라면 좋았을텐데 모두 고여 눈물로 나오는 것 같았다. 눈물을 참을 힘도 없던 터라 그저 울며 ‘나는 괜찮아.., 그럴만하니 그렇겠지’라고 속으로 말했다.
보통 출퇴근 거리는 30분이 걸렸다. 한산한 집을 나와 10분 정도 운전을 하면 우리 동네를 벗어나는 외곽도로와 만나는 육교를 지나게 된다. 복잡해진 교차로가 가까워지면 어김없이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차사고가 나면 깔끔한데...’. 알 수 없는 버거운 마음이 밀려올때면 긴 숨에 내려 보냈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도 언제부터 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괜찮지가 않은 나를 설명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깔끔하게 접촉사고라도 나서 자연스럽게 학교를 가지 않게 되길 바랐다. 나는 이미 중심을 잃고 기울어져 있었다.
방학을 2주 남기고 병가에 들어가면서 최대한 적은 인원과 마주하려고 노력했지만 인수인계를 위해서는 평소 하던 대로 만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만난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적당히 하지, 샘이 너무 열심히 해서 그래요’라고 안타까워했다. 위로의 마음이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씁쓸하기도 한, 또는 함께 아프기도한 마음을 굳이 말하자니 ‘적당히 하지’라는 탄식같은 말로 나온 것 같다.
나는 위로의 마음은 느껴졌지만 그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적당히 하라는 말이지?’ 의문이 들었지만 생각을 잡을 힘도 없었다. 그제야 신청하고도 가지 못했던 상담을 가게 되었다.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상담을 신청한지 한달이 지났을 쯤이었다.
나는 상담사에게 사람들이 나에게 적당히 하라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왜 사람들은 적당히 하라고 할 수 있나요?” 라고 되물었다.
상담사는 나에게 천천히 "그 말이 어떻게 들리시나요?”라고 질문하였다.
“나는 대충해, 포기해라는 말로 들려요. 나는 대충하고 싶지 않고 적당히 하고 싶지 않고 포기할 수 없는 일인데”라고 말했다. 나는 그말을 하면서도 더 다짐을 하는 듯했지만 한편 망망대해에 떠있는 듯한 막막함도 들었다.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해법같은 상담은 아니였지만 그저 내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좀 마음이 가벼워졌다. 일상을 보내며 그 말이 문뜩 문뜩 떠올랐다.
나는 왜 적당히 하지 못했을까?
이렇게 퍼저버린 자동차보다야 적당히 해서 끝까지 책임질 수 있으면 더 나은 것 아닌가?’ 나는 왜 그렇게 못했을까? 나를 왜 조절하지 못했을까? 라는 질문이 꼬리를 물었다. 나는 더 유능해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없지야 않았겠지만 그것이 중요하지는 않았고 딱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러다 어느날 떠오른 생각은 초등학교 때의 내 모습이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에서처럼 우리반에 천덕꾸러기인 별똥별이 초등학교때 나처럼 느꼈던 것 같다. 사람구실 하려면 저렇게 자기 고집만 내세우면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것이고 막무가내 행동하는 그 모습을 보며 내가 고쳐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중학교에 입학했으니 이 시기도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이런 생각들이 나의 행동을 단호하게 만들었지만 그보다 더 깊은 무의식에는 '포기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좋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에는 내가 어리고 힘없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나를 도와주길 간절히 바랐던 적이 있었다. 나는 어른이 되면 힘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이제 나는 어른이고 힘이 있고 어른이니 잘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적당히 하는 것은 옳지 않았다. 힘없고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순간 포기하면 안된다고도 생각했다.
무의식은 나를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는 그런 어른이 되어서 어린시절 나의 아픔을 돌보고 싶었던 것일까. 하루 하루가 절실했다. 내가 적당히 하지 못했던 이유를 알고 나니 눈물이 났다. 그제서야 몸에서 힘이 빠지고 온전히 내가 있는 듯했다.
과거의 나도, 미래의 나도, 내 인식으로 만든 도움이 절실한 별똥별도 없으니 지금여기가 온전하게 느껴졌다. 껍질을 벗고 날아가는 나비처럼 내가 지고 있던 무게를 그대로 땅에 놓고 날아가는 것 같이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