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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롬 Dec 17. 2024

나는 언제나 내가 미웠다.

2024. 7월  가장 쉬운 사람

한학기가 마칠쯤, 3월의 초록이 어느새 점점 뜨거운 햇볕으로 바뀌어 있었고 나 점점 속이 뜨거워졌고 이내 다 타고 재가 되어 있었다. 내 마음은 여전히 불씨를 남기고 있었지만 겉모습은 차분한 회색이었다. 그 와중에 한달에 한번 글쓰기 모임을 이어오던 중이라 몇 개의 글을 적게 되었다. 그 중에 "나는 언제나 내가 미웠다"라는 글이 있다.


지금에서 보면 그 고통의 한복판을 살아갔던 시간의 기록이다. 어렸을 때도 어른을 미워할 수 없었듯 지금도 나는 아이들을 탓할 수 없었다. 내가 다시 글을 읽으며 찾고 싶었던 것은 단지 내가 버틴 힘이다. 어디서 왔는지 찾기 위해 더 미화하지 않은 아픔을 그대로 적어 본다.


변화하고 싶다면 그것을 바라봐야 한다
칼 융  





나에게 성장은 나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미웠다.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다.

엄마가 나를 두고 집을 나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을까? 나는 엄마가 밉기보다 내가 미웠다.      

'오죽 사랑받을 만하지 못하면 엄마가 버리고 나갔겠어'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나쁜 사람이어서 그랬다거나 피치못할 상황이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저 잊으려 노력했다. 생각을 이어가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 더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어차피 길게 생각한다 해도 답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내 감정을 철저히 회피하고 묻어두었다. 그것이 10살 언저리를 살고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엄마 마저 그냥 주어지지 않는 나에게 어느 것 하나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노력 뿐이었다. 어떤 일은 노력해도 안되는 일이 있고 적당히 해도 될 일이 있을텐데 그것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노력이라 하기엔 매사가 죽고 사는 문제 같았다.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일에도 치밀하게 준비하기도 하고 뭘해도 안 될 일을 간절히 매달리기도 했다.


뭔가 단단히 고장이 난 것을 젊은 시절엔 몰랐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니 성과도 있었고 사회적 인정도 따라왔다. 그 모든 결과의 끝은 공허함이었다해도 나는 달리 선택할 방도를 몰랐다. 공허함은 그때 그때 사회적 인정으로 무마해가고 있었다.      


'성실하다. 열심히 한다. 잘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나는 그말을 들을 때면 잠시 안심이 되었고 이내 외로워졌다. 깊이 공허했다. 살고자 발버둥 치는 일일 뿐인 몸부림 정도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깊은 속내를 말할 수 없으니 웃어 넘겼지만 누구도 모를 우울의 그늘이 마음속 깊이 드리워졌다.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것은 해도 해도 끝도 없는 허망한 것이었다.     

(중략)


어디서부터 고칠질 수 있을지 견적도 나오지 않는 마음이었다. 무엇이 문제라고 말하기도 어려울 마음이었다. 그래서 40년 동안 몸에 익힌 것이니 의지를 갖고 바꾸려 하면 20년이면 되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익힌 것이 습관이라면 습관을 고쳐보자는 마음으로 방향을 잡고 살아보자고 맘을 먹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났다. 그동안 배운 여러 심리학분야가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하나로 통하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었다.

너무 추상적이고 막연하지만 방법은 어이없을 만큼 가벼운 것들이다.     


심호흡을 하며 들숨에 '나는' 날숨에 '충분하다'라고 말해 보았다.


괜찮아. 나로서 충분하다.



책임감이 전부인 줄 알았고, 신념과 가치로 굳게 다짐하며 여러 일들도 추진해 보았다. 박사가 되면 내 삶이 더 안전해질 거라고도 생각했고 책을 내면 더 자유로운 내가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단지 내가 애써서 바라보고 집중해야 할 것은 내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내 책임으로 전가해버린 나를 미워하는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차분히 바라보는 것이 어려워 다른 일들에 매달렸던 것이다.


그런 내가 병가를 냈다. 사회적 인정이 목숨과 같던 내가 무책임과 무능력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럼에도 신기한 것은 나의 최선을 내가 믿었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나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니 포기가 되었다. 내가 노력했지만 안되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만신창이가 된 것 같지만 후회는 없다.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잘해서가 아니라 이것이 나의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용서하=한다.      


그런 나에게 '이것 밖에 못해'라고 말하지 않는 내가 있다.

그동안 긴시간 애썼고 최선을 다했고, 그게 비록 부족했을지라도 나의 최선을 믿는다.

이제 괜찮아. 라고 말해주었다.     


나의 성장은 나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과 기준들에서 내가 나를 보호하고 싶어졌다. 그 기준들에 맞추느라 여태 힘들었을 나를 이제 놓아준다. 내가 만든 안전하고 단단한 울타리에서 이제 편히 쉬게 해주고 싶다.




한해를 돌아보는 12월.. 천천히 일상을 걷고 있다.

별똥별과 나.

우리 모두 자신의 삶에서 그럴수 밖에 없는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이해한 지금도.. 

때때로 아프고 슬프지만 

삶이 그러하다는 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긴 심호흡을 깊게 한다. 



나의 첫번째 목적은
내담자가 자신 안에서 사랑할 수 있고,
영감을 주는 영웅적인 무언가를,
인생 그 자체가 짐이자 선물로 인식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발견하도록 하고,
삶에서 조우하는 모든 것이 고통이자 축복임을 알게 하는 것이다.
Ron Kurtz(1934-2011) 하코미(Hakomi) 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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