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월 우울의 깊은 곳에서 만난 것
별똥별과 3일째 대치를 했다. 오늘은 책상을 발로 차고 책과 필통을 손으로 밀쳐내며 던졌다. 나는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듣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왔다. 나는 심장이 뛰고 손이 떨렸는데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도 나를 그렇게 쳐다보았다.
별똥별은 나를 보며 가슴을 부여잡기도 하고 가슴을 치기도 하며 울부짖었다. "선생님 때문이 내가 이렇게 되었잖아요. 왜 나한테만 그래요. 왜 나한테 그러냐고요. 내가 잘한다고 했는데 왜 계속 그래요. 내가 한다고 했잖아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다. 너무 간절하고 원망이 담겨진 눈빛에 내가 정말 잘못했나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 순간이 정신 차리려 노력했지만 손이 떨렸다.
우리 학교에는 이를 대비한 '긍정적 행동지원팀'이 있지만 그런 순간은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다른 이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곧 아이 앞에서 나의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교실의 주도권을 잃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버텼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눈물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참았다. 표시 나지 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같아. 네가 해야 할 것은 노트에 3번 쓰는 거야.
그건 10줄의 내용을 옮겨 적는 거야, 10분이면 할 수 있는 과제야.
마치면 교과 수업에 갈 수 있어"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순간 나의 감정을 담지 않는 것이 아이의 촉발을 막는 중요한 태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에 별똥별도 이내 체념한 듯했다. 정적이 흐른 몇 분이 지나고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고 눈물을 닦고 연필을 집어 들었다. 바닥에 나뒹굴던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책상을 원래 위치대로 놓고 나에게 이 모든 전쟁이 언제 있었냐는 듯 말했다.
"선생님, 이거 3번 쓰면 저도 체육수업 갈 수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래, 맞아."라고 말했다. 짧은 말에도 떨리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내 몸과 마음은 다 흩어진 듯 어느 것 하나 수습되지 않았지만 별똥별은 한순간에 세 시간 동안의 난장판을 싹 정리한 듯 했다. 나는 별똥별이 집중하며 글씨를 쓰는 모습에 오히려 어리둥절하고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어금니를 더 꽉 물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장면을 잊지 못했다.
퇴근시간이 지났어도 일어날 힘이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집으로 갈 수는 없다. 교실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그렇다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그저 앉아 있었다. 코끝도 빨개지지 않았고 가슴의 동요도 없는데 눈에서는 눈물이 흘렀다.
...
우연히도 그날 상담사를 하는 친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했다~
나: 그랬구나. 어떻게 전화를 했을까? 나는 잘 못 지내고 있다...
눈물이 나왔다. 이야기를 듣던 언니는...
언니: 그냥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너무 반갑다. 우울은 반가운 거야. 그냥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머물러 봐. 칼 융은 무의식이 알려주는 거라고 했어. 아주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거라고 했거든. 벗어나려고 하면 힘든 거야. 그냥 그대로 있어봐. 견딘다기보다 그대로 우울을 느껴봐. 그럼. 보석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 그럴까?
나는 언니의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언니를 신뢰하는 만큼 그대로 머물러 보기로 했다. 벗어나려 애써 다른 생각을 하거나 자책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울은 그저 우울일 뿐인데 다양한 해결책을 만들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기쁠 때 기쁜 것처럼 그저 우울을 그대로 ‘그렇구나’라고 받아주었다. ‘우울하구나. 오늘은 많이 우울하구나, 땅끝으로 꺼지는 것 같이...’
우울을 그대로 느껴보았다. 어느 날은 바람처럼 없어지다가 어느 날은 우박처럼 내리치기도 했다. 어느 날 마이클 싱어의 책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읽고 있었다. 문뜩 내 영혼도 상처받지 않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좌절감과 무기력이 가져온 우울감은 무엇인 걸까. 어디에서 온 걸까? 마이클 싱어가 말하는 것처럼 그저 착각이라면 나는 어떤 착각을 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깊은 생각은 어느 순간 알아차림을 선물로 준다. 우울은 나에게 ‘이제 너는 할 만큼 했으니 자유로워져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 너무 큰 포부나 무거운 책임감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우울은 ‘내게 이제 자유로워져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곱씹어 보았다.
이제 할 만큼 했다.
이제 애쓸 만큼 애썼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
너를 허용해 줘라..
그만 용서해라..
내 안에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처음 해 보는 말이지만 나는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나의 착각에서 벗어날 준비가 된 것처럼..
지금껏 나를 체벌하듯 살아온 삶이다.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나는 더 노력해야 하고 나는 더 책임져야 하고 나는 더더더 해야 했다. 나는 다른 사람만큼 일하고 다른 사람만큼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했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남들처럼 사랑받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노력해야만 한다. 그게 나의 출발선이었다.
노력해도 노력해도 안 되는 벽을 만난 올해 나의 교실과 아이들은 나를 깊은 우울과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안 느끼고 도망치려 해도 한결같은 모습에 나는 무너져 버렸다. 지금까지 적당한 성과와 적당한 정화작용으로 살아온 내가 막다른 골목을 만난 것이다.
깊고 무거운 우울감은 나에게 “할만큼 했어. 이만하면 됐다”라고 알려준다.
나는 비로소 긴 숨이 내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