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과 3일째 대치를 했다. 오늘은 책상을 발로 차고 책과 필통을 손으로 밀쳐내며 던졌다. 나는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듣고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왔다. 나는 심장이 뛰고 손이 떨렸는데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도 나를 그렇게 쳐다보았다.
별똥별은 나를 보며 가슴을 부여잡기도 하고 가슴을 치기도 하며 울부짖었다. "선생님 때문이 내가 이렇게 되었잖아요. 왜 나한테만 그래요. 왜 나한테 그러냐고요. 내가 잘한다고 했는데 왜 계속 그래요. 내가 한다고 했잖아요."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울며 소리쳤다. 너무 간절하고 원망이 담겨진 말에 짧은 순간이지만 내가 정말 잘못했나 두려워지기도 했다. 정신 차리려 노력했지만 손이 떨렸다.
우리 학교에는 이를 대비한 '긍정적 행동지원'팀이 있지만 그런 순간은 아무 소용이 없다. 내가 다른 이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곧 아이 앞에서 나의 한계를 보이는 것이다. 이 교실의 주도권을 잃으면 끝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버텼다.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표시 나지 않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같아. 네가 해야 할 것은 노트에 3번 쓰는 거야!
그건 10줄의 내용을 옮겨 적는 거야, 10분이면 할 수 있는 과제야.
마치면 교과 수업에 갈 수 있어"라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의 차분하고 단호한 목소리에 별똥별도 이내 체념한 듯했다. 정적이 흐른 몇 분이 지나고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고 눈물을 닦고 연필을 집어 들었다. 바닥에 나뒹굴던 자신의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책상을 원래 위치대로 놓고 나에게 이 모든 전쟁이 언제 있었냐는 듯 말했다.
"선생님, 제가 잘못했어요. 이거 3번 쓰면 저도 체육수업 갈 수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래, 맞아."라고 말했다. 짧은 말에도 떨리는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내 몸과 마음은 다 흩어진 듯 어느 것 하나 수습되지 않았지만 별똥별은 한순간에 세 시간 동안의 난장판을 잊고 싹 정리한 듯 했다. 나는 별똥별이 집중하며 글씨를 쓰는 모습에 오히려 어리둥절하고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어금니를 더 꽉 물었다. 별똥별과 달리 나는 오래도록 그 장면을 잊지 못했다.
퇴근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아직 일어날 힘이 없었다. 이런 마음으로 집으로 가서 아이들을 만날 수는 없다. 교실에 앉아 있었다. 시간이 지난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그렇다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그저 앉아 있었다. 코끝도 빨개지지 않았고 가슴의 동요도 없는데 눈에서 눈물이 나왔다.
우연히도 그날 상담사를 하는 친한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했다~
나: 그랬구나. 어떻게 전화를 했을까? 나는 잘 못 지내고 있다...
눈물이 나왔다. 이야기를 듣던 언니는...
언니: 그냥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나는 너무 반갑다. 우주야(상담연수에서 사용하는 별칭), 우울은 반가운 거야. 그냥 벗어나려고 하지 말고 머물러 봐. 칼 융은 무의식이 알려주는 거라고 했어. 아주 중요한 것을 알려주는 거라고 했거든. 벗어나려고 하면 힘든 거야. 그냥 그대로 있어봐. 견딘다기보다 그대로 우울을 느껴봐. 그럼. 보석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나: 그럴까?
나는 언니의 말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언니를 신뢰하는 만큼 그대로 머물러 보기로 했다. 벗어나려 애써 다른 생각을 하거나 자책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우울은 그저 우울일 뿐인데 다양한 해결책을 만들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기쁠 때 기쁜 것처럼 그저 우울을 그대로 ‘그렇구나’라고 받아주었다. ‘우울하구나. 오늘은 많이 우울하구나, 땅끝으로 꺼지는 것 같이...’
우울을 그대로 느껴보았다. 어느 날은 바람처럼 없어지다가 어느 날은 우박처럼 내리치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마이클 싱어의 책 '상처받지 않는 영혼'을 읽고 있었다.문뜩 내 영혼도 상처받지 않은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의 좌절감과 무기력이 가져온 우울감은 무엇인 걸까. 어디에서 온 걸까? 마이클 싱어가 말하는 것처럼 그저 착각이라면 나는 어떤 착각을 하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통찰이 일어나는 순간은 한순간이다. 그렇다고 한순간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깊은 사색과 몰입은 어느 순간 알아차림을 선물로 준다. 우울은 나에게 ‘이제 너는 할 만큼 했으니 자유로워져도 된다’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제 너무 큰 포부나 무거운 책임감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우울은 ‘내게 이제 자유로워져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곱씹어 보았다.
이제 할 만큼 했다.
이제 애쓸 만큼 애썼다.
이제 그만해도 된다.
너를 허용해 줘라..
그만 용서해라..
내 안에서 ‘나’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처음 해 보는 말이지만 나는 마치 준비하고 있었던 것처럼 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 나의 착각에서 벗어날 준비가 된 것처럼..
지금껏 나를 체벌하듯 살아온 삶이다. 나는 더 열심히 해야 하고 나는 더 노력해야 하고 나는 더 책임져야 하고 나는 더더더 해야 했다. 나는 다른 사람만큼 일하고 다른 사람만큼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했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남들처럼 사랑받을 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노력해야만 한다. 그게 나의 출발선이었다.
노력해도 노력해도 안 되는 벽을 만난 올해 나의 교실과 아이들은 나를 깊은 우울과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안 느끼고 도망치려 해도 한결같은 모습에 나는 무너져 버렸다. 지금까지 적당한 성과와 적당한 정화작용으로 살아온 내가 막다른 골목을 만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