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나온 말에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MMPI(다면인성검사) 검사를 했던 2주 전 상담사의 첫마디는 '안녕하세요'가 아니었다.
'병가를 쓰실 수 있나요?'였다.
나는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말했다. 상담사는 검사결과지를 보며 한참을 보다가 분노, 외상 후스트레스, 우울... 의 항목이 평균치에서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이 정도면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셔야 한다는 말을 듣고 알아듣는 척을 했지만 현실처럼 느끼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이 대부분 그럴 거예요'라고 말했다. 진심이었고 다들 힘든데 나만 뭐 특별할 게 있나 싶었다. 평범하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월급은 스트레스값이니 이 고생으로 돈을 버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잠을 못 잤고 교통사고라도 나길 바랐지만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서부터가 비정상인 줄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냥 그렇게 운전대를 놓친 채 달려가고 있었다.
이런 나를 멈추게 해 준 건 별똥별이었다.
별똥별이 화장실에서 손에 똥을 묻혀 구석구석 바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은 무감각했던 것 같다. 나와 별똥별 사이에 뭐 정상적인 일이 있었나 싶고 그런 연장선으로 덤덤했던 것 같다. 다음날 출근해서 교실에 앉았을 때 겨울 한파에 얼어터진 수도처럼 눈물이 터져 나왔다. 주체가 안되었다. 좌절감과 무력함에 주저앉아 울었다. 조절이 되지 않았다.
수요일이었기에 나도 그렇게 이틀 쉬면 툴툴 털어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우울이 덮어버린 나는 그 뒤로 별똥별이 화장실에 숨어 손에 똥칠하는 걸 노심초사 찾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도 그걸 막지 못할까 두려워하고 자책하고 있었다.
그 시기 써 놓은 글이다.
“제가 아파요”라는 말을 하는 게 참 어려웠다. 직장에서 아프다고 병가를 쓴다는 것이 나는 무책임하다고 생각했다. 첫째 아이를 임신했던 그 겨울을 지내며 7번이나 열이 39도까지 올랐다. 해가 들지 않았던 교실이어서 그랬는지 면역이 약해졌던 탓인지 자주 아팠다. 그럼에도 단 하루 병가를 쓰지 못했다.
하늘이 도왔는지 건강하게 출산하고 나도 건강을 회복했지만 그 기억만큼은 나를 건강하게 만들어주지 못했다. 나 자신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책임을 나에게 묻고 있었다. 어쩜 그럴 수 있느냐고 계속 타박해 댔다. 아프면 쉬고 힘들면 힘들다 말할 수 없었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보다 한심할 수 있을까 싶었다. 아이의 건강이 달렸던 문제였음에도 나는 그보다 무엇이 더 중요했던 걸까?
둘째 아이를 갖고 나는 다시는 그런 미련한 짓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거듭했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질 일이 아니었다. 다짐하고 다짐했던 일이지만 쉽지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올해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한번 앓고 나면 나아지는 그런 감기 같은 것이 아니었다. 출근하는 길에 작은 사고가 나서 이 일상의 짐들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사고가 내 삶을 정지시킬 수 있는 심플한 방법 같았다. 내가 우울증으로 힘들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더 어려운 일 같았다. 도리스 레싱의 소설 ‘19호실로 가다’처럼 이유를 설명하는 말은 하느니 더 큰 오해를 만들어도 좋았다. 나는 소설 속 주인공 수전처럼 나와의 관계에서도 서툴렀다.
6월 심장이 조여오기 시작했다. 교실이 좁혀져 오고 나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이제 혼자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상담을 신청했다. 신청하고 얼마 남지 않은 방학기간을 잘 버티자 다짐하던 때에 큰일이 벌어졌다. 나에게 이건 큰 일이었다. 나의 일상과 바꾸며 노력했던 일들이 그래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이 지금의 삶을 버텨 갈 수 있는 버팀목이었다. 영화 부산행의 마동석처럼한 명 한 명의 교사가 그 문을 막아서고 견디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쯤 부장님과 식사 자리에서 "올해는 사는 게 부산행에 나오는 마동석 같아요. 하루하루가 열차칸을 막아서서 좀비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듯 그런 것 같아요.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해 교실문을 몸으로 막아서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웃었지만 솔직한 심정이었다.
나의 일상은 이미 평범한 하루하루가 아니었지만 그 말을 하는 순간도 그냥 한말이었다. 나는 스스로 멈출줄을 몰랐다. 내가 멈출 수 있었던 건 별똥별 덕분이었다. 내 앞에서는 순응했지만 화장실에서 손에 똥을 묻히며 해소하고 있었다는 것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얼어붙는 것같았고 이내 얼음조각이 된 나는 툭하고 산산조각이 나는 듯했다.
그 아이가 그렇게 까지 행동해야 했다는 것이 내가 가해자 같았고, 나의 무능감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고 나아진 부분이 있다는 선생님들의 위로는 마음에 닿지 않았다.나는 무너졌다. 교실에 앉으면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렇게 눈물만 나던 3일째 병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담임교체를 요구했다. 나의 무기력과 죄책감이 분노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 아이 때문인 것 같고 나를 도와주지 않았던 주변 선생님들 탓인 것 같고 애초에 원하지 않던 일을 맡긴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번져갔다. 더 이상 학교에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원망은 고통을 만든다.
나는 우선 주인 없는 원망의 마음을 거둬들이고 싶었다. 고통과 허망할 수밖에 없는 원망의 씨앗들을... 그리고 알게 되었다.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는 굳이 애쓰지 않아도 아프다는 말이든,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말이든 뭐든 나온다는 것이다. 병가를 들어가게 된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아프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나를 보호하는 말을 했다는 것이 회복으로 미세하게 방향을 전환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전환점이 시작되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수치심을 요구하는 사회]의 책 제목처럼 나는 수치심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겨우 내 삶을 살아내고자 해도 사회적으로 나에게 잘못했다고 질책을 하는 것 같다. 견디는 것이 힘이 들었다. 수많은 사회적 가치들이 내면화되어 절벽 앞에 서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어떠한 순간에도 책임감이 있어야 해"라는 말에서
"힘들 때 책임지지 않아도 돼. 먼저 나를 살펴도 돼"라는 말로 바꾸려 노력했다.
더 이상 나를 방치하고 그냥 두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병가를 쓰고 싶다고 했고 담임교체도 요구했다. 이 모든 것에 중심은 '나의 선택에 책임지자'는 마음이었다. 그것이 불편한 시선, 미묘한 어려움들, 많은 설명, 보이지 않는 비난이나 원망들... 이 있을지라도 나는 지금의 선택에 책임을 지자고 다짐을 했다. 그 선택에 중심에는 내 진심과 노력이라는 근거가 있었다.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현실적 감각이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글을 쓰며 토로하고 위로하고 숨을 쉬던 때였다. 길을 잃은 내가 땅에 주저앉아 끄적이듯 적은 말들이었다. 지금도 마음 한편 쓰라린다. 치유적 글쓰기의 여러 형태 중에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하는 방법에는 그 상황과 상황에서 느낀 감정을 기술하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똥칠사건 :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 일"로 정리된 그 사건을 돌아본다. 지금의 나는 그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생겼다. 기억은 언제나 현재시점에서 재구성된다. 나의 지금 관점에서 그 시기의 일을 다시 정리해 본다.
별똥별은 나의 말에 동의는 되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아이였다. 여태 살아온 삶이 그렇다. 그럼에도 나의 말에 반응하고 애써 침착하게 과제를 완성하고 산만하게 참견하기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그리기나 스티커 붙이기에 노력한다. 자신을 변명하려고 노력하거나 내 말을 꺾어보려 노력은 더 이상 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수업이 가능해졌고 아이들이 피해 보는 일도 적어졌다. 별똥별이 이만큼이라도 적응적 행동을 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별똥별도 해소가 필요했나 보다. 내 앞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을 알고 스트레스를 받았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소하고 있었다. 화장실 벽과 변기 아래, 수도꼭지 등에 똥칠하는 것이다. 그것이 방법이었다. 나는 이해하기 어려워 감각운동심리치료를 번역한 이승호 선생님에게 물어보았지만 정확한 상황을 모르니, '의례적' 행동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신만의 의식 같은 거라고 볼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별똥별에게 장애인 화장실 사용을 금지했다. 일반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다른 행동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넓고 조용한 곳이 필요했던 별똥별은 교장실 앞 화장실에서 벽에 큼직한 똥칠을 했다. 교감선생님은 교실로 올라와 창문으로 나에게 손짓을 했다. '선생님 1교시에 별똥별이 화장실 간 적이 있나요?' 우리 별똥별 덕분에 똥칠사건의 전말이 생각보다 참혹하다는 것을 교감선생님도 느끼게 되었다. 그 똥칠을 교감선생님이 닦고 올라오는 길이었다.
그렇게 딱 별똥별은 나에게 더 위험해지기 전에 '똥칠'을 하며 나를 멈추게 해 주었고, 교감선생님이 이용할 시간에 '똥칠'로 실체를 알려주었다. 별똥별 덕분에 나는 멈출 수 있었다. 그 시점에 멈추지 않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치유적 글쓰기이다. 첫 번째 글쓰기에서 사건이 나에게 준 영향, 좌절감의 크기와 깊이를 적어보았다면 시간이 지난 지금의 글은 별똥별과 나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탓하는 시선이 거두어지고 우리는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했고, 그 결과는 서로에게 해가 되기도 했고 또한 도움이 되기도 했다.
P.S 또다시 이 시기를 돌이켜 보며 다른 글을 쓸 수도 있다. 적어도 점점 더 이해와 수용의 글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힘듦에서 멈추려 하기보다 치유로 성장하고 싶기 때문에 글을 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진 누군가가 위로받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글솜씨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