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한 달간의 적응이 끝나고 4월이 되었다. 우리 교실은 익숙한 공간이 되었고 이제 서로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남자친구에서 남편이 된다는 건 서로의 본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별똥별이 어느 순간 본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참았지만 나의 본성도 스멀스멀 삐져나오고 있었다.
우리들의 본성이란 관계안에서 이해받고 싶은 것이다.
별똥별과 나는 서로의 삶에서 주인공이지만 우리 교실에서도 주인공이 되고 싶어했다. 나는 내가 주인공이고 싶었고 주인공에게는 자신의 뜻에 따라 교실을 이끌어갈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셈이었다. 나는 별똥별이 원하는 대로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별똥별이 원하는 자유 안에는 타인에게 해가 되는 것이 있었고 자신에게도 해가 되는 것이 많이 있어 보였다. 나는 자유보다 질서와 규칙을 원했고 전체의 안전에 필요하다는 생각도 했다. 질서를 해치는 것들은 이렇것이다.
- 자기가 하고 싶은 보드게임을 하자고 조르거나, 규칙을 중간에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꾸기
- 요청하지 않았는데 다른 친구를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참견하기, 산만하게 움직이기
- 정작 자신의 책상 위는 가위로 자른 종이에 지우개가루, 온갖 물건이 올려 놓고 치우지 않기
이런 일들은 어쩌다 한번이 아니고 매시간, 매순간 반복된 다는 것이다. 우리는 점점 대립했다.
갈등은 기회라는 말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했을 때이다. 보통의 갈등은 우선 피하고 싶다. '내가 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갈등을 만들었고, 내가 옳다는 신념이 기름을 부었다.
갈등이 배움이 되기 위해서 알아차림이 가능해야 한다. 이성의 영역인 전두엽이 활성화되어 자기객관화가 되어야 알아차림을 할 수 있다. 알아차림을 하기 위해 심호흡을 배웠지만 그때는 숨쉬는 것도 가끔 잊어버리고 얕은 호흡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 만큼이나 별똥별도 알아차림을 하기 어려웠다. 선천적인 지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했고 너무 산만해서 알아차림은 켜녕 가끔은 지구에 사는 것 같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말을 하고 자기주장을 너무 잘해서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나조차 헷갈릴 때가 있었다.
가끔 그런 별똥별을 보면서 고대나 중세에 태어나서 들판을 뛰어다녔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농사를 짓던 시대였으면 적응이 더 쉬웠을까 싶었다. 어쩌면 벼를 가지고 놀려고 여름에 이미 벼들을 다 뽑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다음 해를 위해 논에 불을 내어 해충을 없애다가 집까지 다 태웠을지도 모를일이다. 어디서나 적응이 쉽지 않았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같은 시대는 별똥별이 살기 가장 어려운 시대라는 것 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별똥별과 나는, 또 우리 교실은 집중해서 이해하고 알아차림으로 가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점점 더 치닫게 될지도 그때는 몰랐다. 그렇게 4월을 보내고 있었다.
(지난 4월 적어 놓은 글이다.)
다시 나에게 시험에 들게 하는 순간들이 온다. 매 순간들이 그러하듯이. 작은 동네에서 잔치가 열리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밥을 먹었다. 잔칫집에는 맛있는 게 많았다. 다른 아이들은 엄마가 더 챙겨주기도 하고 먹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놀기만 하는 아이들도 있긴 했다. 내 관심은 온통 내가 좋아하는 음식에 있었다. 부침개, 약과….
나는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 적당히 눈치 보며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움받지 않고 괜찮은 아이로 평가받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서 음식에 관심 없는 아이인 척했다. 안쓰러우니 이것저것 먹어보라는 아주머니들의 권유에도 별 관심이 없는 척했다. 그냥 밥만 꾸역꾸역 먹었다. 너무 맛있게 먹으면 없어 보일까 봐 씹지도 않고 꿀꺽꿀꺽 넘겼다. 나의 연기 덕에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큰아이'로 평가를 받았다. 그것이 그때는 중요했다.
그 아이가 30년도 더 지난 지금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을 줄은 몰랐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8살, 또는 10살의 어린아이가 말을 한다. "더 먹고 싶어, 더 먹고 싶어, 더 먹고 싶어!" 지금이라도 더 먹으라고 말하면 좋으련만 여전히 나는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괜찮은 사람으로 평가받고 싶고 예의범절을 지키고 싶은 나는 어린 나를 타박하며 "그만 좀 해"라고 한다. 남보다 못하다. 어찌 이리 야박할까.
나의 타박에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지만 나는 영 못마땅하고 싫다. 끈질기게 좋은 순간마다 나타나 부족했던 것, 더 갖고 싶었던 것을 말한다. 지금이라도 달라고 한다. 실컷 먹고 싶고, 실컷 갖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가지면 얼마를 갖겠어!, 내가 먹으면 얼마를 먹겠어!'라고 소리를 지른다. 나도 알고 있는데 그래도 꼴 보기가 싫다.
지금 나는 어른이 되었고 교사를 하고 있다. 욕심내는 내면아이가 없는 척 살아가고 있다. 적당한 사회적 역할을 하며 괜찮은 교사라는 말도 듣고 있고 적당한 예의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나에게 타인의 평가는 중요하다. 하지만 적당한 역할놀이가 균열을 보일 때가 있다.
욕심내고, 주변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학생을 만날때이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내 마음속의 아이들이 솟구쳐 오른다. '어디서 이기적으로 굴어!, 욕심내고 너만 생각해!, 다른 사람들은 생각안 해!, 어디 해주나 봐라, 참아'라고.
내 안에서는 전쟁아닌 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다.나에게 했던 그 말은 그대로 학생들에게 적용된다. 없는 척 못들 척 안간 힘을 쓰고 참고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사회적 역할이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고 있지만 과거와 함께 살고 있는 내 몫이라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버텨내야 하루를 보낼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런 날은 집에 돌아오면 땅끝이 꺼져 있는 것 같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 못지않게 별똥별도 힘이 세다. 적당히 좀 넘어가주면 좋으련만 별똥별에게는 어렵다. 나에게도 어렵다. 팽팽한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나는 이 싸움에서 절대 지지 않으리라 결심하였다. 이 싸움의 목적은 책임감을 가르치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무엇이었는지 모르겠다. 막무가내 고집으로 이뤄내는 것이 아니라 책임감 행동으로 성취하길 바랐다.
내 앞에서 지시 따르기가 되어간다고 생각하며 나는 별똥별을 지도하는데 에너지를 썼다. 한정된 에너지에서 이미 교실에서 많은 것을 소진했기 때문에 집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파트 1층 벤치에 1-2시간 앉아 있었다. 한 2달간 날씨가 좋을 때는 눈을 감고 그냥 있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며 정리하거나 다짐하거나 하는 것 없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광합성으로 뭔가 채워지길 바란 것도 같고 어지럽혀진 마음을 바람결에 정리되길 바란 것도 같다. 무엇보다 이 상태로 집에 들어가 아이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매일 1~2시간 동안 밖에 앉아 있었다. 하루하루 햇볕과 바람과 나뭇잎들로 지친 에너지를 위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