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을 질투하는 마흔 일곱 살 손님
마흔이 불혹이라는 말은 예순이 평균 수명일 때의 말일 것이다. 마흔이 되어서야 유혹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 유혹에 흔들렸었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이제야 그것을 감추느라 힘들었다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첫째 아이의 유치원 동기 모임은 없어졌지만 그때 만난 하준(가명)이 엄마와는 인연은 계속되었다. 가끔 만나 또래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하소연하기도 하고 공부하는 방향 등도 같이 나누곤 했다. 하준이 엄마를 따라 교회에 같이 가서 놀기도 하고 아이들도 친하게 지냈었다.
우리는 교회에 있는 놀이방을 이용하려고 종종 만났다. 하준이 엄마는 예배시간에 반주를 해서 내가 아이들을 잠시 돌보기도 했다. 하준이는 여동생이 있었다. 첫째보다 두 살 어린 7살이었다. 하준이 엄마는 차분한 전형적인 선생님이었다.
나는 하준이 엄마가 우리 아이 선생님이었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차분하고 성실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하준이 동생인 하영이(가명)는 7살로 그런 엄마와 달리 내가 보기엔 욕심이 있는 아이였다. 7살이니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어느 날부터 그게 눈에 거슬렸다.
엄마를 닮아 예쁘고 통통한 볼이 귀여운 7살 여자아이. 언제부턴가 그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이 이상했다. 전혀 어른스럽지 않아 말하기도 민망하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넉넉한 내 마음이 하영이에게는 얌체같이 굴었다. 마음이 닫히고 별것 아닌 것도 주고 싶지 않았다. 하루는 하영이가 하나씩 먹고 남은 사탕을 자기가 가져가는 것이다. 나는 '너도 하나 가졌잖아!'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훅 나왔다.
나도 당황했고 하영이는 놀랬다. 그 뒤로 하영이는 내 눈치를 보게 되었고 나는 그게 흡족했다. 그 아이가 마냥 행복한 게 싫었다. 좋은 엄마 아빠에게 기댈 수 있고 안길 수 있는 하영이가 부럽다 못해 질투가 났다. 기가 막히게도. 나는 일곱 살을 질투하는 마흔 일곱 살이 되어 있었다.
질투하는 아이: 뭐 어떡하라고요!!
운전사: 뭐... 왜 먼저 화를 내... 화내지 않아도 돼. 이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가지고 화내지는 말자고 했잖아. 보라돌이의 말을 받아들이고 있잖아. 우린 그런 경험을 했는데 어쩌겠어... 좀 민망하고 거부감 들고 아닌 척하고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걸 알잖아.
질투하는 아이: 아.. 짜증 나!! 정말!!
운전사: 짜증날만 해... 그 짜증 나는 건 또 다른 파트겠지.. 어른스럽게 행동하라고 말하는 파트 말이야. 우리는 하나씩 하나씩 만나고 있어. 지금은 질투하는 파트에게 집중해 보자.. 본인이 제일 힘든 거 아니겠어.
질투하는 아이: 나도 드러 내기도 힘들고 삐집고 나가지 않게 얼마나 조심하는데.. 근데 그날은 나도 모르게 훅 나가버렸지 뭐예요.
운전사: 그래, 우리 모두 방심했지.. 짐작은 했었지만 정말 하영이를 그렇게 질투하고 있는 줄은 잘 몰랐어. 그런데 그 마음이 올라와서 내가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 꽁꽁 숨겼었잖아. 너도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을 이해 받고 싶은 거잖아.
질투하는 아이:... 맞아요...
운전사: 화가 나고,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걸 알아. 많이 힘들었을 테니까. 7살에도 너는 엄마가 옆에 없었고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옆에 있었지. 그래서 편하게 이거 먹고 싶어, 저거 먹고 싶어.. 이거 줘, 저거 줘... 이런 평범한 요구들을 하는 게 부러웠잖아. 그런데 모른 척했지. 원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래서 이제라도 그 시간에 못 받을 거, 원하는 걸 해달라는 거잖아. 그게 뭐가 잘못이야.. 그동안 참고 기다린 게 대단한 거지..
질투하는 아이:... 쫌 맘이 풀리는 데... 나한테 철없다.. 이제와 왜 그러냐... 비난하지 않는 거예요? 맨날 내가 올라오려고 하면 싫어했잖아요... 머리를 흔들며 진처리를 쳤잖아요.
운전사: 나 좀 달라졌어~^^..
질투하는 아이: 그러게요. 좀 그런 것 같네요...
운전사: 정말 감정이라는 건 수용받지 못하면 없어지지 않는 건기봐. 수많은 심리학자들의 결론이라니.. 우리라고 별 수 있겠어? 그 감정들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 같아?
질투하는 아이: 글쎄요, 뭐.. 기억나는 장면은 아랫집 정미가 너무 부러웠어요. 유난히 엄마가 다정했잖아요. 학교 가려고 들르면 엄마가 신발을 꺼내주며 잘 다녀오라고 하더라고요. 매일 그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초라하고 힘이 빠졌어요. 하지만 괜찮은 척했죠. 그런 일은 너무도 많이 벌어지니까. 괜찮은 척하느라.. 진이 다 빠졌어요.. 아무것도 안해도 하루 하루가 힘들었어요.
운전사: 그래, 알지... 슬퍼하는 것조차 쓸 에너지가 없었잖아. 그런 마음이 일곱 살의 그 어린 몸에도 남겨졌으니 참 오래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마흔일곱에 일곱 살을 질투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그나마 쉰일곱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이야....ㅋ
질투하는 아이: 그날따라 너무 예뻐 보이는 하영이가 너무 질투가 나는 거예요. 그런데 딱히 뭐라고 할 수가 없는데 욕심을 내서 사탕을 2개 먹으려고 하잖아요. 딱 걸렸죠. 나도 모르게 어른의 목소리가 아니라 딱 그 또래 아이처럼 '야! 너 하나 가졌잖아'라고 말이 나왔지 뭐예요. 그 말이 나도 엄마가 있어..라는 듯이 자신 있게 나왔으니... 하영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한번은 말해보고 싶었어요..
운전사: 그랬구나.. 이해해. 하지만 나는 그 일로 인해 내 감정을 수용하지 않은 결과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 상황에 안 맞고, 대상도 안 맞고.. 내 상처가 오히려 상관없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질투하는 아이: 오히려 그날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군요..
운전사: 그랬어. 그 뒤로 저절로 해결되는 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질투하는 아이, 배고픈 아이... 더 사랑받고 싶어 하는 아이... 나만 챙김 받길 원하는 아이.... 줄을 서 있다. 한 번은 채워지길 바라는 아이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그 아이가 생존하기 위해서였죠. 그래서 정당합니다. 타당합니다
보라돌이는 말했었다. 나는 싫다고 다 꼴 보기 싫고 없어졌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보라돌이는 그 상황에서 아이는 생존을 위해 욕구를 감추었고 눌렀던 것이죠. 정당합니다. 타당합니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런 유치하고 쪼잔한 방법 말고 더 여유 있고 유능하지 못했던 나를 자책하느라 그 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나의 질투는 타당하다. 나의 질투는 정당하다. 지금의 나는 나 자신에게 더 잘하라고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전인권의 노래 '제발'을 듣고 듣고 또 들으며.. 울고 울고 수없이 눈물을 흘리고 말했다. '나도 인형이 아니야. 그저 사람일 뿐이야'
모두 솔직하게 말하진 못했지만 다시 만난 하영이에게 '너도 하나 먹었잖아라고 말해서 하영이 기분을 상하게 한건 미안해. 다음에는 하영이 두 개 줄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