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두려움을 느끼는 순간이 언제야?"
며칠 전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질문을 받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말은
"잊혀지는 것"이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한 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눈에 보이게 된 일기장을 펼쳐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았다. 매년 12월 말 즈음에 꼭 하는 것이 있다. 새로운 일기장을 사는 것. 하루에 연필을 잡기도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직도 하루에 매일 일기를 쓴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난 일기를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불안하다. 내가 무엇을 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적어놓지 않으면 불안하다. 왜일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문득 든 생각이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서 이다. 내가 겪은 하루도 며칠, 아니 그다음 날이 되면 당사자도 잊어버리게 되는 순간들이 무섭다. 왜 이렇게 잊혀지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을까?
안정적이고 나의 삶을 살다 보면 보고 싶은 사람이 없어진다. 사실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 조금씩 잊히는 것에 대한 불안함을 놓으니 보고 싶은 사람도 없어졌다. 어떻게 사나 궁금한 사람은 있지만 이제 더 이상 내가 물어볼 수 없는 사람이기에 놓아주게 되었다.
가을이 왔다. 요 근래 아침 새벽과 늦은 밤은 따듯한 겉옷을 챙겨 입지 않으면 춥다. 10월의 밤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쓸어낼수록 쌓여가는 그리움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밤에 나를 찾아오곤 한다. 어렸던 작년의 가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가끔 궁금하다. 사람은 예비되어있는 인생을 살아나가는 것인지 남아있는 인생을 만들며 살아가는 것인지. 나에게 예비되어있고 정해져 있는 삶이 있을지, 그럼 우연은 왜 있는 것이며 우연도 하나의 만들어져 있는 일인지. 인생은 서서히 자살하는 삶을 사는 샘이다.
나에게도 그립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추신, 나도 니 꿈을 꿔.
-영화 '윤희에게' 중-
글 이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