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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 작은 마음 Oct 23. 2021

기억과 추억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언제야?”


너무 흔한 질문, 가끔은 물어보는 사람이 야속하기도 한 질문. 뻔하디 뻔한 이 질문은 문득 생각해보면 매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질문이다. 사실 나의 기억에는 행복했던 순간들은 그다지 많이 없다. 나의 행복했던 순간들은 ‘추억’으로 자리 잡았고 ‘기억’ 은 보통 생각하고 떠올리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거나 기억 한 편의 상자에 넣어놓고 꺼내보지 않았던 시간들이다.


 ‘기억’과 ‘추억’ 은 엄연히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기억은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 그냥 그때의 시간,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가끔은 너무 생생히 기억나 나를 아프거나 힘들게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추억’ 은 지나온 순간들을 기억할 때 세세하고 작은 감정들까지도 담아두는 것이 ‘추억’이다. 그때의 시간, 장소, 계절, 옷, 향기 등등 그때의 모든 것을 방금 일처럼 상상할 수 있는 것. 


어제 일을 기억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 년 전, 이 년 전의 일들도 기억할 수 있다. 이제는 핸드폰에 있는 사진으로도 무엇을 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 누구와 함께했는지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추억은 그 누구도 모르게 내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세세한 모든 것 하나까지도 와닿는 것이 추억이다. 사실 난 그렇게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진 않다.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에게 “어렸을 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난 “살아온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죽을 수 없어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추억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것이 조금은 허무하기도 하다. 추억보다는 기억이 많은 삶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도, 다시 추억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다. 아무것도 몰랐었던 어렸던 나는 그게 추억이라고 생각했지만 조금 성장하고 보니 추억이 아닌 그냥 기억이었다. 부모님에겐 추억이고 기쁨이었어도 나에겐 그저 그런 기억들 뿐이었다. 


물론 행복한 기억만이 '추억' 이 된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경험에서 놓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 싶은 것이 추억이 될 수 있다. 모두들 마음 한 구석에는 행복했던 순간들, 내일이 없을 것처럼 울었던 순간들, 마음이 없어져 버릴 것 같이 아팠던 순간들, 내일이 오지 않을 것만 같이 예뻤던 순간들, 절대 잊어버리고 싶지 않은 모든 순간들이 있을 테니까. 


공허하고 행복이 공존하는 나의 삶은 작고 소중한 일상들의 기억으로 가득하다. 몇 년 후, 몇십 년 후 이 순간들이 예쁘고 소중한 추억으로 자라 집길 바라며 하루하루 나에게 되새기며 하는 말은

"행복할 수 있어"



글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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