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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군가의 작은 마음 Dec 28. 2021

나에게 지는 법

크리스마스. 살면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내본다. 겨울, 이맘때쯤이면 모든 아픈 상처들도 아름답게 미화되고 사소한 애정이 생겨난다. 난 왜 이 사소한 애정을 품고 있으며 누구를 향한 애정인 걸까. 나의 기억들은 어떻게 미화되었고 나의 기억 속에 어떻게 남아있는 것인가. 가장 우울하고 조용했던 크리스마스다. 이맘때쯤이면 교회에 가 성탄예배를 드리지만 이번에는 드리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누군가와 만나 행복한 저녁을 보낼 기분도 아니었다. 큰 절망감과 실망감에 휩싸여 며칠간 나를 짓눌렀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들에 혼자 지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왜 나의 모든 기억들은 좋게 미화되어 돌아가면 또 후회할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걸까? 난 현재에 만족하고 충분히 행복한데 왜 자꾸 과거의 나와 비교하는 것일까. 


- 20대의 처음 겪는 절망. 


허우적거리면서 나는 겨우겨우 슬픔을 건너가는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로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파인 고랑.


모든 것들이 줄어든다. 글 쓰는 일도, 말하는 일도. 그러나 이것만은 제외하고(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것).


-애도일기, 롤랑 바르트


몇 달간 열심히 달리고 준비해온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무너졌다. 나의 반년, 아니 일 년이 무너졌다. 예상하지도 못했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곳에서 절망을 느끼고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지만 타격이 크다. 1월 중순부터 말까지 기다려온 국제 콩쿠르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다. 싱가포르 정부에서 미국에서 들어오는 나는 갈 수 없다고 했다. 반년 간 열심히 해온, 기다려온 순간들인데 한 번에 무너져버렸고 그 누구에게도 변명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죄책감과 우울함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노력했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내가 미안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지만 괜히 주변인들에게 미안하고 특히 부모님께 미안하고. 며칠간은 아득바득 따지고 화내며 분해했지만 지금은 나도 이길 수 없는 나의 오기와 욕심에 내려놓고 져 버렸다. 


글 이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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