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수습기간 때 퇴사하겠어?"가 내가 되다(2)

입사하자마자 관둔 이야기

by 이나

사람들이 말하길 누굴 죽이고 싶은 회사면 계속 다니되

내가 죽고 싶거나 우울감이 올 때는 그만둬야 한다고 했다.


나는 후자의 경우였고 입사 한 달이 되자마자 지옥이 펼쳐졌다.

팀장이 내가 오자마자 장기휴가를 썼고 자리를 비운 동안에 중간에서 일을 쳐낼 상사는 없고

일은 계속 쌓여만 갔다.

나는 후반프로덕션에 해당되기 때문에 일정이 이미 밀린 채로 나에게 오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업무 적응도 안 됐는데 빨리 편집을 해야 했고, 완벽하게 실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번 회사를 잘 다니고 싶은 맘에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날 짓눌렀다.

게다가 나는 평소 작업 스타일이 프리미어와 에프터이펙트를 연동해서 사용해서 통편집하곤 했고 스킬로만 따지면 에펙을 좀 더 잘 다루는 편이다. 그러나 여기선 컷편집만 작업하여 프리미어를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뤄야 했기에 어떻게 보면 업무 스타일이 나한테 맞지 않았다.

프로젝트를 맡을 때마다 회사 임원진들과 실무진들이 잔뜩 포함된 단톡방에 초대되어 영상을 넘겨야 했다. 뒤로 갈수록 실수가 잦아짐에 따라 점점 더 고립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컨펌을 받으려 영상을 올리는 것 자체가 공포스러웠다.

이전 직장에선 내가 실수가 잦지 않았다. 물론 이번 직장이 더 높은 퀄리티가 요구되기도 했다. 내가 느끼기에 이곳은 나의 권한이 매우 작았다. 내 임의대로 편집하면 무조건 수정이 요구됐고 그렇다고 하나하나 물어보면 나는 이것 조차 혼자 처리 못하는 볼썽사나운 직원이 된다. 피드백도 매우 세세하고 주관적이었는데 그런 것들에 신경 쓰다 보면 다른 부분을 신경 쓰지 못해 실수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친구들에게 내가 매일 받는 피드백을 보여주었더니 "너 나가라고 일부러 괴롭히는 거 아니야?"라고 하기도 했다. 직원을 뽑아놓고 일부러 괴롭혀 나가게 하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고 했다. 우리 회사는 물론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영상을 사랑하기에 작은 부분도 넘어갈 수 없으셨던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이 직무자체에 대한 허탈함을 느꼈다. 나는 저 사람들만큼 영상을 사랑하지 않았고 저만큼 열심히 일할 수 없었다.

남편에게 고민을 말했더니 그래도 일주일은 더 고민해 보라고 했다. 그래서 힘을 쥐어짜서 출근했는데 그러자마자 일이 터졌다. 야근을 해도 절대로 할 수 없는 업무량을 주면서 오늘 해달라고 한 것이다. 용기 내서 조금만 미뤄달라고 했는데 회의하는 내내 혼이 났다. 팀장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오롯이 그 분위기를 견뎌야만 했다. 회의 분위기를 바꿔보겠다고 농담을 날리는 직원이 있었으나 나 혼자만 웃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퇴사했다. 퇴사한다고 말했는데도 밤을 새우고 야근을 했다. 장기휴가를 갔던 팀장이 돌아왔으나 업무를 조율해주진 않았다.

SE-08d87b30-6e13-4324-bf79-00883182a66f.png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작업이 끝나고 받은 메신저



마지막 출근 날 뭔가 마음이 이상했다. 이전에 나는 금방 그만두는 사람들을 보며 "뭐 그럴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공감하곤 했다. 그러나 저게 내 상황이 되어보니 그때의 나는 진실로 공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고작 30 가까이 살아놓곤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다 이해할 수 있는 척했던 것이다. 앞으로의 커리어와 부모님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당장 나가는 돈을 고사하고서라도 내가 이곳에서 나가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맡은 프로젝트들을 제대로 끝마침도 못하고 나가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고 남은 팀원들이 날 미워하는 것만 같았다.(실제로 그러진 않았다.) 퇴사 직후가 가장 내가 미웠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물론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고 또 다른 직장을 찾고 있다. 앞으로의 내가 어디서 일을 할지 나도 궁금하다.


아, 그리고 퇴사에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임금체불"이었다.

첫 월급부터 통보식의 메일이 왔고 10일 정도 늦게 월급을 지급하겠단 메시지가 왔다. 다른 직원들에게 물어물어 회사상황이 안 좋냐고 넌지시 운을 띄우니 "다른 곳에 돈이 묶여있을 뿐 돈이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근데 그러면 이 상황이 더 우스워진다. 어차피 돈이 있는데 왜 임금을 미루지?,.. 이 회사는 직원이 가장 우선순위 밑에 있구나 느껴졌고 혹시라도 재정상황이 나빠지면 신입사원에다가 적응도 못하고 있는 나를 가장 먼저 자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퇴사를 최종적으로 결심하게 됐다. 10시까지 야근을 할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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