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결혼이다!

길 끝에 남은 것들

by 이나

내 남자친구, 그러니까 지금의 남편은 원래 농구선수였다. 지금에는 만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와 '가비지타임'으로 한 때 농구열풍이 불었기에 제법 자랑스러운 이력으로 생각하지만 처음 그를 만났을 땐 그저 심드렁했다.

"농구선수라고? 키 차이 너무 나는 거 아니야?" 라던지 "운동출신들은 거르라던데..."와 같은 알량한 편견 또한 있었다.

앞으로 같이 살아가야 할 동반자를 고를 땐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번듯한 직업, 멋진 외모, 재력 등 여러 조건이 떠오르겠지만 난 가치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 말이다.

남편은 키가 큰 덕에 초등학교를 다닐 때 농구를 권유받았고 그 계기로 대학교까지 쭉 농구를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당시엔 20대 중후반이었으니 사실상 인생의 절반을 농구로 보낸 한우물 파기 장인이었던 것이다.


"난 진짜 머리도 나쁘고 몸치라 욕 많이 먹었어"


타고난 몸치 박치인 내가 오빠를 부러워하자 해주던 말이다. 그는 객관적으로 몸치는 아니지만 타고나는 것이 90% 이상인 혹독한 예체능 생태계에선 상대적인 몸치가 됐다. 남들은 코치 시범 한 번에 10을 한다면 본인은 고작 1도 따라잡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남들이 100번 슛을 던지면 본인은 새벽에 제일 먼저 나와서 말 그대로 천 번, 만 번 될 때까지 연습하고 제일 늦게 숙소에 들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평생 하던 농구를 그만둘 때도 오히려 후련했다는데, 이미 죽어라 노력했으니 미련도 후회도 없었다는 것이다. 난 오빠의 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그 사람의 인생을 들어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난 이 이야기를 아주 좋아한다.


나는 어렸을 때 영화 어바웃타임을 인생영화로 꼽곤 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주인공의 결혼장면이 인상적이어서 "난 결혼할 때 꼭 빨간 드레스를 입고 할 거야!"라고 말할 정도였다. 시간이 흘러 빨간 드레스보단 현실과 타협해 정석적인 실크 드레스를 입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영화의 프러포즈 장면이 로맨틱하단 말 한마디를 기억해 주고 b급영화처럼 어설프게 따라하지만 주인공보다 더 떨리는 손으로 반지를 끼워준 사람이 있었기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결혼식 당일에 보는 버진로드는 생각보다 길었다. 뭔가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 같았다. 작년에 흥했던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에드워드 리는 경연 중에 이런 말을 했다.


"심사위원에게 가는 길은 길었어요. 가끔은 ‘잠깐만 돌아가서 뭔가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한 번 걷기 시작하면 끝까지 걸어야 하죠."


나에겐 버진로드가 심사위원까지 가는 길이었다. 걷는 도중에 후회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 그 친구와 싸우지 않았더라면 걔는 지금 여기 와있을까?', ' 그 친구한테 모바일청첩장이라도 줄 걸...', '아무래도 다른 직업을 선택할 걸 그랬어.'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 그런 말 하지 말걸 그랬나.'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더라면 뭐가 달라졌을까?' 등등... 마치 주마등처럼 후회의 순간들이 지나갔다. 그렇지만 에드워드의 말처럼 가는 수밖에 없다. 도착하고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결혼식을 준비할 땐 나와 멀어진 인연들을 생각하며 우울해했다. 그러나 버진로드 끝에 도착하고 나서는 먼 거리를 달려 나와 함께해 주는 또 다른 인연들이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퇴사했는데도 와준 팀원들과 입사동기들, 오는데만 3시간이 넘었던 지방에 사는 친구들, 나와 초등학생 때부터 인생의 절반을 함께한 친구 등. 언제 봐도 즐거운 나의 친척들과 맨날 티격태격하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내 인생은 여전히 소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길 끝에서야 알았다. 내가 잃은 것보다 내 곁에 남아준 것들이 훨씬 더 크고 소중하다는 걸. 그래서 충분히 잘 살 수 있고 그럴 것이다. 그러니 당신도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고 가시길, 길 끝에 있는 당신의 행복에 더 귀 기울이고 행복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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