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권고사직, 믿었던 회사에서의 퇴사

by 이나

나는 모션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첫 직장은 4층짜리 건물 한 칸을 쓰던 소규모 대행사였다. 말이 회사지, 사실상 구멍가게 수준이었다. 직원은 내가 입사할 때 5명이었고, 퇴사할 때는 나를 포함해 1명뿐이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작은 회사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지만, 전공을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생초짜인 나를 받아줄 곳은 그곳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나는 원래 경영학과를 나왔다. 나름 꽤 이름 있는 4년제였으나, 성적에 맞춰 들어간 곳이라 졸업 후에도 하고 싶은 일이 없어 방황했다. 취업은 먼 이야기라 생각하고, 차일피일 결정을 미뤘던 것 같다. 남들은 하고 싶은 직무에 맞춰 자격증을 따고 대외활동을 쌓는데, 나는 아무것도 이루어놓은 게 없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가 영상 편집을 추천했는데, 그 말에 갑자기 혹해 전공과 전혀 관련 없는 디자인 업계에 뛰어들었다.

1년 6개월 동안 국비지원 학원에 다니며 공부했고, 학원을 수료한 후에는 6개월 동안 지자체 홍보 영상을 만들어주는 작은 업체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나 실무 능력은 전혀 없었기에 조그마한 회사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일이었다. 당시 내 편집 실력은 단축키 몇 개를 겨우 아는 수준이었다. ‘멍청하면 용감하다’ 더니, 그 실력으로 이력서를 몇십 장이나 냈다!

어쨌든 그렇게 들어간 첫 번째 회사는 많이 힘들었다. 정규 근무 시간이 9시부터 7시까지라는 사실도 입사 후에야 알게 되었고, 매주 월요일마다 직원들이 직접 사무실 청소를 해야 했다. 첫 출근 날, 걸레를 빨던 순간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처음 몇 달은 정규 근무 시간 내에 업무를 끝낼 실력이 안 되어 매일 새벽까지 야근했다.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9시에 퇴근했던 날, 대표가 축하해 줄 정도였다.

이처럼 꿈꿔왔던 회사 생활과는 다른 현실에 취직했기에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많이 힘들었다. (나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구내식당이 있는 회사에 입사할 줄 알았다!) 그래서 재직 기간 내내 ‘다음에는 사원 수 100명 이상인 회사에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 일하다니!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두 번째 회사는 정말로 규모가 100명 이상 되는 곳이었고, 꿈꾸던 으리으리한 빌딩에서 일하게 됐다. 그러나 1년도 채 안 되어 권고사직을 당했다. 이쯤 되니 내 직무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영상 업계는 야근이 당연시되고, 페이는 적은 악독한 업계였다. 주변 지인들과 비교하면 더 초라해졌다. 남들의 초봉이 이 업계의 2~3년 차 연봉과 맞먹을 때도 있었다. (사실 더 적게 주는 곳도 많다.)

인센티브 문제도 애매하다. 물론 인센티브를 주는 회사는 많지 않지만, 어떤 프로젝트를 성공시켰을 때 보상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포지션이다. 영상 편집은 후반 작업이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나에게 왔을 땐 이미 작가, 연출 PD, 촬영 PD, 조감독까지 얽혀 있는 상태였다. 이들 사이에서 나는 그저 외주 인력으로 취급받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나 혼자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다.)

또한, PD 업계는 주로 남초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젊은 여자인 내가 의견을 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내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확률도 높았다. 그래서 워라밸을 높이고 싶어 비교적 업무 강도가 적은 인하우스 업계로 이직했다. 처음 몇 달은 아주 쾌적했다. 평일에 약속을 잡아도 야근 때문에 취소할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회사 내에서는 영상의 퀄리티보다 자사 제품 매출을 중요시 여겼고, 영상 제작 인력을 외주로 돌려도 무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가 휘청거리자 바로 정리 대상이 되었다. 권고사직 과정을 통해 사회의 비정함을 배웠다. 회식 자리에서 아무리 설탕발린 말로 사람들을 꿰어내도 다음 날 권고사직을 통보할 만큼, 앞과 뒤가 다른 것이 사회였다.

또한, 비밀유지 서약서를 쓸 때 일이었다. 속상한 일을 타 부서 친한 동료에게도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래도 안 좋은 일을 굳이 입 밖에 낼 일이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타일렀다. 그런데 다음 날 출근했더니, 전사 직원들이 우리 팀의 해체 소식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말할까 말까 끙끙댔던 사실을 단순 이야깃거리라도 되는 양 단체 메신저에 떠벌린 직원도 있었다. 나만 바보였다.

“너 생각보다 순수하다.” 이 일을 친구에게 말했더니 돌아온 말이었다. “회사는 모르는 게 없어. 그래서 말조심해야 해.”라는 말도 덧붙였다. 회사에 비밀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두 번째 회사에서 근무를 마치고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나는 슬럼프에 빠졌다. 원래 엄마는 내가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들어가길 바라셨다. 여자는 그런 곳에 들어가야 편하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몇 년 동안 죽은 듯이 공부하는 삶이 싫었고, 나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내 직업에 대해 잘 모르셨다.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셨다. 첫 직장에 입사했다고 말씀드렸을 때도 엄마는 “넌 그런 게 재밌니?”라는 딱 한마디만 하셨다. 나는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었지만, 오히려 나를 창피해하시는 것 같아 속상했다. 취업을 축하받지 못했던 것이 서러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속상함 속에서, 내 진로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고 전공을 바꾼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모든 선택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엄마가 해주신 한마디가 나를 다시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너 원래 PD인가 뭔가 그쪽 하고 싶다고 했잖아.”

“내가?”

“그래. 남극의 눈물 보고 그런 프로그램 만드는 사람 되고 싶다고 했잖아.”

“… 그랬구나.”

사실, 나는 정확히 따지면 PD가 아니라 편집감독이고, 남극의 눈물 같은 교양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엄마의 이 말은 ‘나는 사실 꿈을 이룬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줬다. 나조차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이미 꿈을 이룬, 대단한 사람이란 걸!

꿈이란 도대체 뭘까? 무엇이기에 잠깐 마음속에 품어뒀던 것이 시간이 지나 나에게 돌아온 걸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내가 까맣게 잊고 있던, 꿈꾸던 조각들이 언젠가 다시 나에게 돌아올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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